나의 일상

선물 같은 사람이 왔으니 선물 같은 봉사도 오겠지

짱2 2024. 7. 8. 14:07

한국전쟁 때, 초소를 지키던 해병대 상병 케이시와 로빈슨 사이에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케이시는 피던 담배꽁초를 집어던지면서 로빈슨에게 눈짓을 찡끗한 다음 수류탄 위로 몸을 던졌다. 

그 후 사제가 된 로빈슨이 첫 서원을 하던 날, 그는 자신의 이름을 케이시 로빈슨으로 바꾸었다. 그는 벗을 위한 친구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희생적 죽음에 자신의 세속적 탐욕의 죽음으로 응답한 것이다.

 

 

 

 

 

 

월간독자 Reader의 글을 읽다가 허영민 신부님이 쓰신 이 글을 읽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슬픔이 아닌 감동이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던지다니...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눈앞에서 친구가 그렇게 죽는 것을 본 로빈슨은 또 얼마나 황망하고 충격적이었을까? 평생을 미안한 마음으로, 또 고마운 마음으로 살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그 마음이 그를 사제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이끌기 위해 주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을 케이시 로빈슨으로 바꿨다는 대목에서 목이 메이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는 세속적 탐욕을 버리고, 자신을 희생했던 친구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예수님처럼 살겠노라 마음먹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조카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결혼하지 않은 지인(물론 결혼을 했다면 그 대상은 자식이 되었겠지만), 나를 위해 목숨도 내어줄거 같은 나의 남편(남편도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증명해 왔고, 난 또 그걸 믿는다), 또 나를 위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나의 엄마,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내 목숨도 내어줄 수 있는 나, 신문과 뉴스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자기희생... 우리는 어쩌면 죽음보다 더 큰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보다.

 

지인이 내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난 당연히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사랑'이라는 말을 비웃듯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했다. 건강을 뛰어넘을 것은 없다고 했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무조건 '사랑'이다. 내가 그녀만큼 건강이 나쁘지 않아서라고? 어림없다. 나도 암환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이 우선순위다. 왜냐하면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내가 암환자는 판정을 받던 날,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죽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 남겨질 나의 남편이 너무나 가여워서 미칠 듯이 슬펐다. 나 없이 살아갈 그의 초라한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매일 술로 보낼 그가 안타까웠다. 지금도 혼자 남을 남편을 생각하면서 또 눈물이 흐른다. 이건 사랑이다. 나의 죽음이, 나의 건강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건강이 중요하다. 건강해서 오래오래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생명이 내 것이면서도 내것이 아니니, 그건 주님께 맡기고, 나는 살아있는 동안 남편과 많은 추억을 만들며 웃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은 나에게 인색했다. 아니 주님이 계시다는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가난했고, 무기력했고, 도피처를 찾아 남편과 결혼했다. 그때 내게 '그'가 아닌 다른 '그'가 있었다면 '그'와 결혼했을 정도로 나의 결혼은 무모했다. 그저 거지 같은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이 내 옆에서 결혼을 이야기했고, 너무나 촌스럽고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저 돈이 조금 있을 거 같은 그와 결혼했다. 

 

보통은 이렇게 결혼하면, 나중에 이상한 사람을 만났던 것이고, 결혼생활은 엉망이 되고, 이혼하거나 끔찍한 결혼생활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 텐데, '그'는 아니었다. 살면 살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언제 '그'가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하느님은 23년간의 불편하고 아픈 세월을 보낸 후에야 내게 '선물'을 주셨다. 그런 시간 없이 '그'가 내게로 왔다면 나는 그 선물을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물론 어리석은 나는 '선물'을 알면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더 많은 것을 주시지 않는 것에 원망했고, 부족한 남편의 단점들에 아쉬워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나이 50이 되던 해, 나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러 다시 기적을 일으키셨다. 바로 '암'이었다. 나에게 '암'은 또 다른 모양의 '선물'이었다. 방향을 잘 못 보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나머지 50년 인생을 죗값을 치르며 바르게 살라고 '선물'을 주셨다.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나의 엄마와 나의 남편, 아들과 남편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나(엄마 미안해)... 나는 이 세 사람과 함께 매일의 삶이 행복하다.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음악 들으며 책 읽으며 공부하며 사는 이 삶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게 그저 나 혼자만 행복하라고 나에게 이런 시간을 주시는 걸까? 케이시 로빈슨으로 이름을 바꾼 사제처럼 나도 주변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5년에 걸친 암과의 투병생활이 끝나고 이제 평온해졌으니 나만, 내 가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어려움도 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암환자가 되면서 일을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 일을 하게 되었고,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돈도 벌게 되었었다. 나는 그 돈이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인들에게 많이 베풀었다. 정말 행복했다. 베풂은 행복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5년간 번 돈은 내 노후를 위해 조금씩 저축했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밥과 선물로 나눔 했다. 이젠 그 이상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성당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걸까? 억지로 가진 않는다. 선물처럼 나의 남편이 주어졌듯이 성당도, 봉사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흘러올 것이다. 나는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