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3 - 좌정(坐定)/방석(方席)
좌정(坐定) - 두 발로 걷는 특권을 포기할 용기
나는 미래(未來)라는 한자의 의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미래가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것'이라니! 미래는 지금 내가 만들어야 할 조각품이다. 미래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future'다.... '내가 미래에 될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미래는 지금-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부단히 수련할 때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레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저자는 미래의 의미가 지금의 자신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의 표현보다는 연결된 의미를 가진 영어의 future를 더 선호한다. 이런 저자의 생각에 완전 동의한다. 예전의 나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를 별개의 그 무엇으로 생각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이기에 너무 멀었고, 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었기에 현재의 나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암환우가 되었고, 건강을 잃었다. 지금 내가 먹는 이 음식들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건강을 생각하며 좋은 음식을 가려 먹는 사람들을 '건강염려증'이라 비웃었고, 유난 떤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그들이 현명했음을 뒤늦은 후회와 함께 깨달았다.
'future self'라는 책을 만나면서 지난 내 삶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미래의 나를 지금으로 끌고 오면 여기, 이곳에서 내가 뭘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허투루 살 것인지, 알차게 살아낼 것인지.
술 마시고, 흥청망청 살았던 내가 있었음을 후회한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늘 독서하고 공부하는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는 친구들이 부러워서였을까? 그 동기가 단순히 '질투'였다 해도 그런 나를 무한히 칭찬한다. 물론 그때의 내가 미래의 나를 끌어다 놓고 오늘을 어떻게 살지 계획하며 공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온 내 삶의 한 방향은 지금의 나를 '영어강사'로 만들었고, 매일 사색하고 명상하는 삶을 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어제와 오늘이 연결되어 있고, 오늘과 내일이 연결되어 있으니,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도 당연히 연결되어 있다. 그 거리가 멀다 해도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도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내가 열심히, 잘 살아야 할 이유다.
좌정(坐定)은 나를 매일 조금씩 변화시켜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나를 인도한다. 유대인들은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구별해 특별한 일을 한다. 인생의 7분의 1을 이것을 위해 온전히 바치는 것이다.
인생의 7분의 1일 쓴다는 것이 참 많은 시간으로 여겨진다. 좌정의 시간으로 인생의 7분의 1이라니.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 내 삶이 바른길로 간다면, 내 시간 모두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삶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삶보다 훨씬 값지리라. 아마도 유대인들은 이런 진리를 이미 깨달았으리라.
고등학생 때였다. 그 무렵 나온 수첩이었을 텐데, 5시간 수면, 4시간 수면에 맞춘 다이어리를 보았었다. 신세계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그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표는 나의 관심을 확 잡아끌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나의 계획적인 삶이... 비록 작심 3일로 그치고, 다시 작심 3일을 하긴 했지만... 그런 나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금은 눈을 뜨자마자 몇 가지 루틴을 실행한 후, 책상 앞에 앉는다. 그야말로 좌정한다. 하루의 7분의 1의 시간은 아니지만, 아마도 48분의 1의 시간(30분)이지만, 말 그래도 좌정하여 나의 하루를 계획한다. 나를 매일 조금씩 변화시켜 내가 가고자 하는 나의 목적지로 나를 인도해 가는 과정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요가를 신체 건강을 위한 운동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요가는 습관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려는 자신을 절제함으로써 자신의 최선을 발견하고 연마하는 훈련이다.
난 아침저녁으로 간단한 명상겸 요가를 한다. 발이 불편한 나는 요가를 하고 싶었으면서도 맨발로 하는 모든 활동을 할 수 없어 포기했던 운동이었다. 그러다 암환우가 된 후, 오히려 집에서 하기 좋은 운동이 요가라 생각하고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는 운동의 한계가 분명 있지만 큰 욕심 내지 않고, 몇 가지 동작을 취해보며 참 좋은 운동이라 여겨졌다. 아침에 간단히 몸 풀며 아침확언까지 마치면 온전히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고, 잠이 도무지 올 거 같지 않은 날에도 저녁 요가를 한 후 눈을 감으면 스르르 잠이 오는 미라클을 경험하면서 명상, 요가에 차츰 눈을 뜨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빼놓을 수 없는 나의 루틴이다. 저자의 말대로 나 또한 요가를 신체운동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몸풀기의 과정이 당연히 신체운동이지만, 느리면서도 깊은 스트레칭의 과정 동안 나도 모르는 생각의 흐름과 멈춤이 반복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은 아침, 저녁 요가만으로 만족하지만, 환갑이 되면 오전이나 오후에 한 시간 정도의 진짜 요가를 하고자 욕심을 내본다.
좌정은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한 고삐다. 좌정을 통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고,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제어한다. 좌정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좋은 습관이 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불필요한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매일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한다. 당신은 위대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그 하루 위에 좌정하고 있는가? 당신은 그 하루의 고삐를 부여잡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잘 살고 있구나, 잘하고 있구나, 감사한 마음이다. 아마도 '암'이라는 질병이 아니었다면 명상을, 요가를, 좌정을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나쁜 것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님을, 또 좋은 것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 시간. '암'이 나에게 새 생명과도 같은 삶을 주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더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 중이다.
방석(方席) - 잠을 깨워 새벽을 맞이하는 거룩한 공간
내가 좌정한 이 방석은 바빌론의 에테멘안키(수메르어로 '하늘과 땅이 만나 하나가 되는 단이 있는 장소'라는 의미) 보다 거룩하고, 델피 신전의 테메노스(신탁을 받는 델피 신전의 제단,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 받은 신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수련을 시작했다) 보다 신비롭다. 나의 방석은 곧 나의 천단이다. 갈 수 없고, 볼 수 없는 저 높은 하늘 위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내가 하루하루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다.
나는 이 단에 좌정해 나를 바라보며 내가 가고자 하는 위대한 여정 위에 있는지 점검한다. 당신은 그런 방석을 가지고 있는가? 잠을 깨워 새벽을 맞이하게 할 당신의 단은 무엇인가?
위의 좌정과 더불어 방석을 같이 묶어 일기를 쓰자고 마음먹었다. 좌정해 앉을 장소, 아마도 저자는 어느 방향의 벽을 향해 방석을 깔고 그 위에 좌선을 하는듯하다. 그 공간이 이 세상의 어느 신성한 공간보다 그에게 더 신성하고 고요한 공간이리라. 깊은 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으로 가다듬고, 하루를, 일 년을 맞이하는 거룩한 장소.
나에겐 바로 책상 앞, 나의 의자가 바로 그런 공간이겠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주부에게 부엌(주방)이라는 공간 말고, 다른 공간이 있을까?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빼앗긴 공간에서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가진 주부가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난 항상 나의 공간을 가졌구나. 어릴 적, 가난했어도 다락방을 나의 공간으로 가졌었고(부모님께 우겨서라도 공간분리를 원했었다), 결혼한 후엔 온전히 나만의 방을 가졌다.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남편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전에 나의 공간이 우선순위였으니 나도 어지간히 이기적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책 읽고 공부하면서 살아왔다.
공간은 중요하다. 온전한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내 손이 닿는 반경 안에 모든 필요한 것들이 필요한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참 감사하다. 평생 이런 공간을 갖고 살았으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었지. 아니 나는 내 공간을 원하지 않았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원함은 결핍이다. 영어 want에는 부족, 결핍이라는 의미가 있다. 내가 원한다는 것이 그것이 없다는 전제다. 나는 나의 공간을 원하지 않았다. 당연히 있어야 했기에 없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당연한 듯이 그걸 준비해 주셨고, 결혼하면서 당연히 주어졌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내 꿈을 키웠다. 이런 걸 보면 'seceret'은 진리인가?
감사한 삶이다. 내 삶을 돌아볼수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