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가족 여행 후..

짱2 2025. 5. 23. 21:21

지난 주말의 가족여행 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들이 결혼을 한 후 처음 가게 된 네 사람의 여행. 2년이 걸렸다. 신체적 결함이 있는 나로서는 남편과 아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암환우가 된 이후로 더 말라버린 그래서 앙상한 몸매를 드러내며 물놀이를 하고 싶지 않은 탓에 사실 며느리와의 여행을 꺼리고 있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우리 네 사람의 여행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고, 아들 또한 며느리에게 함께 가자고 몇 번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남자 둘은 별생각 없이 이제 한 가족이 되었으니 함께 하는 여행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듯했으나 며느리는 자기만의 어떤 생각으로 좀 더 친해지면 가자하며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2년이 흘러서야 드디어 1박 2일의 강원도 여행이 이루어졌다. 

 

 

 

 

남편은 내게 아이들이 모두 계획하도록 아무말도 하지 말라 했으나 나는 어느 정도 의견을 내놓아야 애들도 편하게 계획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내 의견이 옳았었다. 내가 남편말대로 너희가 알아서 하라 했더니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의견이 뭔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저녁식사를 숙소에서 먹을지, 외식할지, 또 무얼 먹을지 등등에 대해 우리가 시장에서 사다가 숙소에서 먹자고 했으면 좀 더 편하게 결정했을 듯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너무 지나쳤나 보다. 이런 사소한 알아감이 다음 여행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감이 되어가겠지.

 

내가 생각이 많았던것은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아들과 나의 대화이다. 아들은 술에 취했고, 그래서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나는 술을 어느 정도 마셨음에도 멀쩡한 상태였기에 아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의 장모님에 대한 애정이 무척 커졌음을 알게 되었고, 그런 말들을 며느리 앞에서 들으며 내 표정이 어떠했을지 나는 모르겠다. 평온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보였을까? 사실 평온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고, 아들의 그 말에 불편한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마음은 5%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내 마음의 95%는 안도와 감사였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나의 자식에 대한 철학은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는 것'이었다. '슬하'는 무릎 아래라는 의미인데, 나는 아들을 내 슬하에 두어 작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내가 큰 사람이 아닌데, 내 슬하에 두면 크게 성장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내게서 멀리 떠나보내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회가 되어 아들이 대학교 1학년 2학기가 될 때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었다. 내 생각은 옳았었다. 아들은 그 때 참 많이 성장했다. 

 

아들이 결혼할 무렵, 내가 알게된 것은 '부부중심'이었다. 자식도 내 것이 아닌데, 성인이 된 아들이 결혼을 해 하나의 온전한 가정을 이루면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정말 남이 된 거다. 내가 가정을 이루어 남편과 잘 살면 되듯이, 아들도 자기 가정에 충실하며 잘 살아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관여할 아무 권리도,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너희들끼리 잘 살면 되고, 나는 나 잘 살면 되는 거다. 아이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때, 그때 그 손을 잡으면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 며느리는 자신은 '시월드'가 없다며 좋아하는 눈치다. 그런데 아들은 좀 아쉬운 부분도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좀 더 자신에게 들어와 주었으면 하는 눈치인데, 이것도 정도의 문제일 테다. 아마 아들도 내가 좀 더 들어가면 싫어할 텐데.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기로 했던 30대의 내 마음, 부부중심의 삶의 중요성을 알게 된 50대의 내 마음에 보태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암경험자라는 것!!! 암경험자가 된지 8년 차이다. 병원에서 생각하는 관해라고 하는 시간인 5년을 지나 8년 차가 되었지만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홀로 남겨질 아들에 대해 생각한다. 형제도 없이 혼자인 아들이 안쓰럽다. 그런 그에게 또 외동딸인 며느리가 베필이 되었다. 아직 두 사람에게 하지 못한 말이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희 둘 다 외동이이니, 평생 부부로, 친구로, 그리고 남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고 신나게 살아~"

 

암경험자가 된 이후 나의 체력은 예전만 못하다. 만약 내 아이들이 근처에 살았다면 지금 아들의 장모가 하듯이 나는 하지 못할 거다. 내 살림, 나 먹을 거 챙기고 나면 기진맥진이다. 이런 체력으로 나는 아들 내외를 챙기지 못했을 거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그러하니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장모님이 챙겨주시는데, 나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내 자식을 이뻐해 주고 챙겨주는 것에 질투가 나고 서운할까? 오히려 안심이 되고 감사하다. 아들이 장모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아시는 장모님이 아들을 사랑해 준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사실 섬세하게 잘 베푸는 그분의 사랑 가득한 마음도 이해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 생각하면 그건 친정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하다. 시어머니인 내가 아들집에 들락거리며 뭔가를 한다면 며느리가 싫어할 거다. 아마 이 부분을 며느리도 알거라 생각한다. 며느리 입장에서도 친정 가까이 살면서 도움 받고, 엄마랑 예전처럼 지내면서 사는 지금이 훨씬 좋을 거다. 나도 내 친정엄마가 편하고 좋았었는걸. 

 

밝고, 긍정적이고, 마음의 표현이 많은 장모님에 비해 자신의 엄마, 아빠는 좀 표현하는것이 적다고 생각하는 아들의 말에  약간의 서운함이 있었다. 내가 5%의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이유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게 우리인 것을. 아마도 아들은 엄마, 아빠의 점수가 100점이기를 바랐을 테지만 100점 만점에 100점인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부모이기에 바람이 큰 것이지. 아들은 또 안다. 엄마가 생각이 깊다는 것을. 결혼한 후의 아들은 또 알아갈 거다.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좋은 부모이고 싶어 수줍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말했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그들에게 스며들었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았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겠지. 우린 아직 2년 차니까.

 

아들은 결혼의 만족도가 높고, 또 잘 살고 있다. 그것으로 됐다. 아들만큼이나 며느리도 예쁘다. 나에게 아들, 딸이 생긴 것과 다름없듯이, 아들의 장모님에게도 딸과 더불어 아들이 생긴 것이니 되었다. 두 사람의 공간에서 둘이 알콩달콩 잘 살면 되었고, 나와 남편도 여기 둘만의 공간에서 또 알콩달콩 살면 된다. 나는 지금의 내 삶, 미래의 나를 위해 신나게 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바쁘고 신나고 재미있다. 아들도 그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