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항암 후유증에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 손발 저린거.. 그랬었지..
혀도 저린거.. 그것도 3차부터 시작됐어. 며칠 지나면 곧 괜찮아질거야.
속 미식거려서 음식 못먹는거.. 그것도 알지.. 그냥 몸무게 몇킬로그램 빠질거야.
어지러운것도 앉았다 일어날때뿐이잖아. 잠시 멈추었다가 움직이면 되지.
갑자기 쓴물 넘어오는거... 그건 먹은지 얼마 안돼서 몸을 쭈그리고 앉아서그래. 얼른 몸을 펴고 움직여줘야해.
손과 발에 검버섯 생기는거.. 항암 끝나면 없어진다잖아. 기다리는수밖에..
손과 발의 피부가 벗겨지는거.. 그냥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벗겨내지뭐. 약간의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괜찮아.
그래, 그래.. 내 몸에 일어나는 증상들 다 알고있어.
그래도 여자에게 중요한 머리카락은 빠지지 않고 있어서,
어디 외출이라도 할땐 머리 감아 말려서 길게 풀어헤치고, 화장하고 나가면
모두들 예쁘다고 해주니 견딜만 하잖아.(난 미모 지상주의)
하느님은 다 뺏어가지는 않으시나봐.
물론 12킬로그램이나 빠져서 예전 옷들은 잘 못입고, 새로운 원피스들을 사들이고 있잖아.
집에 앉아서 크게 나갈 곳도 없는데.. 인터넷으로 원피스만 열개 사들이고 있잫아. 과소비를 하고 있잖아.
쇼핑도 너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데 한몫 하고 있으니 나쁜것도 아니지.
항암.. 쉽지않은 6개월의 과정중 반 이상을 지나왔다.
토하고, 먹지 못하고, 배의 통증, 과한 저체중까지 기록하며 3개월 이상을 버텨왔다.
위암쌤, 대장쌤, 항암쌤... 세분 쌤들이 모두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죽음을 생각했던 작년 12월과 올 1월을 떠올리면 아무리 지난날이라고 해도 눈물이 흐른다.
50이라는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한다는건 벌려놓기만 하고, 아무것도 처리못한채 누군가에게 떠미는 느낌이었다.
그걸 떠맡는 사람은 나의 남편이라는..
그래서 남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연치유를 생각했던 내가 의술의 발전으로 수술을 선택하고, 자연스럽게 항암까지 왔다.
벌려놓은 일들은 수습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졌다.
즉, 내가 살것이라는 희망이 무한히 커져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단기 저금도 소액으로 여기저기 들어놓고,
옷은 줄어들기는 커녕 원피스로 더욱 늘어나고,
항암중에 필요할 수 있는 물건들로 집안 살림은 더욱 늘고,
산림욕이 몸에 필요할것 같아, 주말이면 휴양림으로 나들이 가니 장비도 조금씩 늘고...
늘어가는 살림살이, 늘어가는 내 옷들, 늘어가는 장비들...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살아있음으로써 욕심도 내고, 갖고 싶은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피로한, 항암으로 자칫 우울함으로 갈수도 있는 삶의 짧은 부분들을 버틸수 있게 해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토록 두려웠던 항암의 고통을 5차까지 겪어낸 내가 대견스럽다.
남은 3회의 항암이 쉽지 않을거라는것도 안다.
아침, 저녁 식사후 먹어야 하는 젤로다의 역한 냄새를 참아야하는것도 내 몫이다.
젤로다 이외의 약도 함께 꾹 참고 삼켜야 하는것도 나의 몫이다.
그래서 더욱 힘내야 한다.
먹을것 잘 챙겨먹으며, 운동하며 나를 위해 내가 힘내야 한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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