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수련, 정적, 승화11 심연 11 새벽 독서시간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책을 읽다가 자주 보던 유튜버의 같이 독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바람에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이라는 책으로 급히 넘어가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유행의 바람을 일으키는 쇼펜하우어를 나는 참 오래전에 읽었더랬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쇼펜하우어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책의 지면이 세월을 따라 연한 미색으로 변해갈 즈음, 다시 읽으니 제법 눈에 들어오던 즈음, 세상은 쇼펜하우어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밀리의 서재로 유행하는 책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의 글은 참 좋으나 그것을 풀어놓은 저자의 글은 '참 세속적이구나! 그저 남들이 하는 말잔치구나!' 싶었다. 저자는 여러 영상에 나와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의 말 또한 그 이상을 넘지는 못했다. 물론 나에게 '.. 2024. 12. 14. 심연 10 괴물나를 조정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묵상을 할 때도 달기를 할 때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순간순간 나를 주저앉히는 '괴물'이다. 이 괴물은 내게 패배의 쓰라림을 안겨준다. 이 괴물은 내 안에서 나를 조정하는 또 다른 '나'다.괴물을 뜻하는 영어 '몬스터(monster)'는 괴물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한다. 몬스터란 '(한쪽과 다른 한쪽을 구분하는 경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존재'를 뜻한다. 마음속 몬스터는 익숙하고 게으른 과거로 돌아가라고 끊임없이 나를 유혹한다. 사람들은 이 경계에서 쉽게 포기를 한다. 매일 묵상과 달리기를 생활화하는 저자에게도 자신을 주저앉히는 '괴물'이 순간순간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한 지경이니 운동을 싫어하는 나에게 '운동괴물'은 늘 상주한다. '비 오잖.. 2024. 10. 7. 심연 9 심연이제껏 발을 들인 적 없는 미지의 땅 평소의 언어로는 잘 쓰지 않는 '심연'이란 단어가 이 책으로 인해 자주 쓰는 단어가 되었다. 나의 '심연' 깊은 곳으로 들어가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나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었다. 심연의 존재를 알고 운명적인 여정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한다. 웅장하다. '영웅'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영웅이어서도 아니고, 영웅이 되고 싶어서도 아닌 그저 미물인 인간으로서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고, 왜 존재하는지 늘 궁금했다. 그냥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고 싶었다. 그래! 아직 나의 심연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그러하니 운명적인 여정조차 시도하지 못하니 영웅은 아닌 걸로. 몰입이란 자신을 새로운 시점, 높은 경지로 들.. 2024. 10. 4. 심연 8 사유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거룩한 선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의 가감 없는 표현이다. 나의 얼굴, 몸가짐, 내가 처한 환경은 내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내 생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 미래는 조각가 앞에 놓여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돌덩이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생각들을 어떻게 쪼아내고 갈고 다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조각품이 탄생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나의 오랜 사유의 대상이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현재 내 삶에 자신감이 없는 탓이었을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냥 사는 거지. 그냥 산다고? 그럼 안.. 2024. 8. 19. 심연 7 단절과거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 '창세기' 1장을 저술한 유대 지식인은 '바라(bara)'라는 히브리 단어로 '창조하다'를 표현했다. '바라'는 동사의 피상적이며 거친 의미는 '(빵이나 고기의 쓸데없는 부위를) 칼로 잘라내다'이다. '창조하다'라는 의미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요리사나 사제가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의 쓸데없는 것을 과감히 제거해 신이 원하는 제물을 만드는 것처럼, 창조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핵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삶의 깊은 관조를 통해 부수적인 것, 쓸데없는 것, 남의 눈치, 체면을 제거하는 거룩한 행위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작가는 이미 그의 책 '에디톨로지'에서 편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기존의 것의 편집으로부터.. 2024. 7. 25. 심연 6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제3의 눈 묵상 배우는 관객과 자신의 몰입을 돕기 위해 어떤 물건으로 목소리가 나오는 입과 얼굴을 가린다. 이 물건을 '가면'이라고 한다. 라틴어로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persona)'에서 인간이라는 영어 단어 'person'이 파생했다. 인간은 원래 가면을 쓴 존재다. 이는 '가식적인 존재'라는 말이 아니다. '우주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유일한 배역을 알고 있는지, 그것을 알았다면 최선을 다했는지를 묻는 존재'라는 뜻이다.... 관객은 무대 위의 배우나 극 중 인물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제3의 눈으로 관조한다. 감정 이입과 관조, 몰입과 성찰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극장'이라는 뜻의 영어 '시어터(theatre)'는 "무대에서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고민하는 자기 자신을 관조하.. 2024. 7. 18. 심연 5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가 실패 고통과 암흑의 시간 동안 그녀(조앤 로링)는 자신의 삶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이 아닌 척하기를 그만둔 것이다. 동시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일을 헤아려 그것에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인간이기를 그치고,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새롭고도 놀라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섰다. 심연을 만났다. 오래전이다. 심연에 이어 수련, 정적, 승화까지 모두 읽었다. 한 번 읽은 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철학적이고 지적이었다. 배철현 교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글을 다시 읽고, 필사하고, 사색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첫 단계가 나의.. 2024. 7. 9. 심연 4 진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장소 현관 우리나라 말 '문지방'이나 '현관'을 의미하는 라틴어 리멘(limen)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하고 막막한 기다림의 시간 또는 장소를 가리킨다고 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어떤 장소가 필수적이다. 넘어서야 할, 머물러야 할 장소. 그곳에서 우리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첫 번째 '분리' 단계과거로 상징되는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버리는 단계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와 단절하는 것을 '혁신'이라고 하며, 이때의 '혁'자는 갑골문에서 소의 가죽을 벗겨낸 모양이다.두 번째는 '전이' 단계오래된 자아를 소멸시키는 기나긴 투쟁의 시간이다. 전이란 과거에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소멸되어 새로운 자신으로 채워지는 .. 2024. 7. 3. 심연 3 내가 축하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유일한 임무를 찾아내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도 가장 알고 싶은 사람은 나 자신이고, 내가 가장 소중하구나. 심연의 첫 부분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나 자신의 심연 깊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고, 그것이 피아노로 이어졌고, 나를 신나게 해주고 싶어 운동과 역동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자전거로 이어졌고, 나에게 충만한 감성을 주고 싶어 책을 사고 음악을 듣는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어제, 서울대병원에 검사결과만 들으러 갔다 와도 되었는데, 굳이 아침 8시도 되기 전, 출근인파와 함께 어울려 북촌으로.. 2024. 5. 2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