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핑계였다. 내가 성당에 가지 않은 이유를 둘러대기에 정말 적절한 핑계였다. 정부시책은 4인 이상 집합 금지, 교회나 집단 모임 자제를 요구하고, 평소에도 잘 가지 않던 성당에 암환자인 내가 굳이 꾸역꾸역 나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몇 번 나간 적도 없고, 올해가 되어서는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특징까지 얹혀져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1월과 2월이 흐르고, 3월이 되었다. 3월의 첫 주일이 다가오면서 내 안에서 또 무언가 꿈틀거리며 성당에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새벽에 늦잠을 잤다면, 성당에 다녀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거다. 하지만 새벽 3시 반쯤 눈을 떴고, 여느 때처럼 눈과 입을 씻어내고, 침대를 정리하고, 물을 따뜻하게 데워 책상 앞에 앉아 감사일기, 확언을 쓰고, 하루 계획을 세웠다. 영어공부까지 모두 끝내고 나니 성당에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귀찮은 마음이 드는 것을 살짝 옆으로 제쳐두고 무조건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시간에 맞춰 갈 생각에 집에서 책을 읽다가 나가려고 하면 또 가기 싫은 마음이 들 수도 있어, '차라리 책을 들고나가서 성당 주차장에서 읽자'라고 마음먹었다.
성당에 도착해보니 그리 빠른 시간도 아니어서 성전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미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처음보는 신부님. 하도 오래도록 나가지 않으니, 부주임 신부님이 바뀐 것인지, 협력 사목 신부님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미사를 시작하는데, 처음 보는 이 신부님의 갑작스러운 말씀.
'눈을 떠라, 고개를 숙이지 마라. 주님이 제대에, 독서대에 계시는데 왜 눈을 감느냐? 복을 내려주시는데 왜 눈을 감느냐? 두 눈을 뜨고 주님을 쳐다보고 영접해라. 눈 감을때는 단 한번뿐이다. 영성체를 내 안에 모셨을 때뿐.'
그렇다. 성당에 가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그러다 보면 졸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비몽사몽 미사를 마치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고, 허전함만 맴돈다. 내가 미사를 드린 건지, 잠자러 나온 건지. 성스러움, 충만함, 복됨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것은 잘못된 관습이란다. 모든 신자들이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바른 자세로 미사를 드려야 한단다. 자신이 전문가이니,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하고, 자신이 그렇게 복을 받았던 경험이 있으니, 우리도 그 복을 받도록 하란다.
또한 매일 미사 책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한다. 매일미사 책은 성당에 오기 전에 충분히 읽어서 그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서 봉독 하는 사람의 말과 신부님의 말씀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한다. 준비된 자에게 은총이 충만하다고. 신부님은 성경을 읽지 않으셨다. 신부님은 우리를 쳐다보며 외운 것을 입밖으로 내뱉고 계셨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외운것을 말씀으로 전하다가 잊어버린 부분에서만 잠시 고개를 숙여 참고만 할 뿐이었다. 신부님은 성경을 충분히 읽고 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외워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을 미리 준비하시면서 주님의 은총을 한없이 받고 계셨다.
나는 소름이 끼쳤고, 늘 감기던 나의 눈은 놀란 토끼눈이 되었고, 잠으로, 또는 잡념으로 빠져들던 나의 정신줄은 오롯이 신부님을 향해 있었다. 진정한 전문가를 만났고, 현인을 만났다. 2002년, 그러니까 20년 전,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20년 동안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은 미사는 처음이었다. 나에게 이렇게 깊은 성찰과 인사이트를 던져준 미사 말씀은 처음이었다. 오늘, 내가 그토록 성당에 나가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것은, 이런 깨달음을 얻도록 하시기 위한 주님의 준비된 선물이 아니었을까? 다음 주, 그다음 주, 계속 빠지지 않고 성당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시려는, 그래서 내가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시려는 큰 그림이었지 않을까?
추운 겨울이 가고, 3월이 되면서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학원에서는 원장쌤이나 정쌤에 대해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나의 마음을 고쳐먹으니 내 마음도 편해지고,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부드러워지면서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즐거워졌다. 나의 일상도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가져갈 것은 가져간다는 마음으로 정리를 하고 나니, 참 편안해졌다. 커피관장을 내려놓고, 몸무게에 대한 나의 예민함을 내려놓았고,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 즐거운 산책의 시간을 가져가기로 했다. 또한 새로 시작한 공부와 그로 인한 모임은 즐겁게 맞이했다.
큰 그림, 그리고 그에 맞는 적절한 작은 그림을 그려본다.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지만, 따뜻한 봄을 맞이하면서 적당히 내려놓고, 적당히 얹어가는 삶을 통해 더 멋진 삶을 살아가리라 확신한다. 오늘 우연히, 아니 어쩌면 준비된 새로운 신부님의 말씀과의 만남이 내게 준 커다란 울림을 통해 사랑과 행복이, 복되고 성스러운 은총의 삶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 그리스도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