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경,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원인은 얼마간 사용한 쌀뜨물 세안과 쌀뜨물 팩일 수도 있었고, 원장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는 나의 쌀뜨물 사건을 모르니 스트레스일 거라고 추측했고, 나도 원장으로부터의 스트레스가 많았었기에 그럴 것이라 예상했었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결국 원장에게 그만두겠노라 얘기하게 되었고, 많은 대화 끝에 우리는 합의를 봤다. 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줄이기로. 줄어든 시간에 비해 월급은 좀 더 줄었고, 나의 만족도는 높지 않았지만, 그녀의 불같은 말도 안 되는 화의 분출은 어느 정도 줄어들어 내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질적인 '참을 수 없는 화'는 불쑥불쑥 올라왔고, 그럴때마다 나는 나의 예민함을 탓하며 또다시 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녀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에게 그토록 짜증을 내고, 나는 왜 참고 있어야 하느냐 하는 것. 이유는 단 하나. 그녀에게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그 월급을 포기하고 아끼고 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내 나이 60이 되면 시작하려던 미니멀한 삶을 바로 시작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삶은 반전이 있어서 재미있는것. 그녀가 달라졌다. 갑자기 하트눈이 되어 나를 쳐다보고,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의 태도가 달라지니 학원에서의 내 마음이 편해지고, 일의 능률도 높아졌다. 이랬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이런 마음으로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줬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서두르고 닦달하며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좀 느긋한 마음으로 봐주며 기다려주었더라면... 서로 마음고생 안 하고 더 빨리 좋아졌을 수 있을 텐데... 멀리 돌아온 느낌이다. 미운정 고운정 든다지만, 그녀는 무엇이 더 큰지 모르겠지만, 나는 미운정이 더 크고, 그 마음은 미운정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미움으로 고착된 것도 있다. 서로에게 몹쓸 일이지...
(그렇게 나의 일은 안정이 되어간다. 물론 일에서 오는 피로감은 있다. 특히 금요일의 피로는 몹시 크다. 게다가 금요일만 나오는 알바샘도 이제 나오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신없는 금요일이 될터인데, 잘 극복해 보자.)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처음 이 학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부원장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쥐어주고, 이 학원을 위해, 그리고 학원장을 위해, 나의 남은 삶을 어느 정도는 불태우리라 마음먹었더랬다. 학원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 믿었다. 나를 더욱 발전시켜서, 점점 발전해 가는 학원에 맞춘 능력자로 성장하고 싶었더랬다. 그러나 그 마음은 원장의 욕심인지, 자질 부족인지, 아니면 나의 역량 부족인지 모를 그 무엇에 의해 바로 좌절되고 말았다. 더불어 정말 많이 마음이 아팠었다. 새로 구입한 차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리 해버린 자랑질 때문에, 셀프퇴장이라는 참을 수 없는 씁쓸함에 차마 그만두지 못한 마음마저 꺾어버릴 만큼 너무 힘들어서 세 번이나 그만두고자 했었더랬다. 그러다 마지막 세 번째엔 정말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더랬다. 내 눈이 빨간 토끼 눈이 되어버린 바로 그날... 그날, 원장은 결국 내 팔을 잡았다. 다시 한번 더 해보라고. 자신이 조금 부족했던 거 같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 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깎았다. 그녀의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파악한 그녀의 의도는 월급을 깎는 것. 월급이 줄어든 후, 그녀의 태도는 돌변했다. 친절한 그녀가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일의 역량은 점점 높아지고, 그로 인해 업무량도 점점 늘어갔으나 나의 월급은 올라갈 것 같지 않은 것이 또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나는 또 한 번 바닥으로 떨어진 내 자존심을 끌어올려야 했다. 내 가치가 그것밖에 안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 가치를 올리자고. 그런 다음 당당하게 학원을 나오자고.
시간이 또 흐르니 원장의 히스테리가 또 살짝 터지기 시작했고, 이젠 나도 더 이상 참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다시 그만둘까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월급도 적게 주는데, 뭐 하러 이렇게 일하고 있을까... 였다. 그런데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채워둔 족쇄가 있었으니... 2년만 참고 견딘 후, 남편과 2주간의 미국 또는 영국 여행을 가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잘 참고 견뎌서 남편과 여행 갈 경비 마련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학비를 스스로 마련하자고 스스로 족쇄를 채웠더랬다. 그것이 발목을 잡고 더 견뎌보라고 나를 부추겼다.
그러던 차에, 원장이 바뀐 것이다. 무슨 연유인지 나는 알 수 없으나, 그녀가 바뀌었다. 10개월 동안의 나의 진정성을 깨닫게 된 건가? 돈에 연연하지 않는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 걸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는 만족감일까? 그 무엇이든지 그녀는 달라졌고, 나는 편해졌고, 이제 일할만 하다. 일이 편해지니,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공연도, 영화도 다시 볼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내년의 계획도 하나씩 잡혀가고 있다. 학원을 그만두면 느린 걸음이었을 목표가 아주 잰걸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구체적이 되었다.
이렇게 나의 삶이 자리 잡아가는 모양이다. 또 언제 원장의 히스테릭한 기운이 뿜어져 나올지 모르지만 좀 더 단단해진 내 마음이 잘 견뎌주겠지. 미국여행과 대학원이 내 발목을 힘껏 잡아주겠지.
'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요병 치유, 그리고 열정은... (1) | 2023.12.12 |
---|---|
기대되는 내년 (0) | 2023.12.09 |
'나'라는 우주 (1) | 2023.11.25 |
왜 살까? (0) | 2023.11.11 |
퓨처셀프만 생각하자 (2) | 2023.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