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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나'라는 우주

by 짱2 2023. 11. 25.

마지막 일기를 쓴 지 참 여러 날이 지났다. 삶의 바쁨 정도는 늘 비슷한데, 하루의 정해진 시간 동안, 나의 초점이 어디로 향해 있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채워진다. 어느 때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어느 때는 독서로, 어느 때는 잠이나 휴식으로, 또 어느 때는 정신줄을 놓은 상태로 채워지는데, 요즘의 내 시간은 영어공부로 채워지고 있다. 'Day 100'으로 이루어진 교재이고, day 하나가 세 개의 영상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결국 300개의 동영상을 봐야 한다. 이것을 올 해가 가기 전에 끝내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악착같이 듣고 있다. 어떤 때는 내가 이것을 공부하고 있는 것인지, 다 듣는 것에 목숨을 걸고 그저 영상을 틀어놓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을 때도 있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내 머릿속에 남아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내년엔 좀 더 꼼꼼히 공부하며 암기까지 해버리리라 맘먹은 상태다. 이러하다 보니, 독서나 사색의 시간을 많이 내지 못했고, 그것은 결국 일기 쓸 시간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일기를 쓰면서 정리가 되고, 계단 한 개를 올라가는데, 그것을 못하니 그 자리에 머문 듯, 찜찜한 마음이었었다. 어릴 적부터 써온 일기는 나의 안식이고 위안이고 성장인데, 이 단계를 거치지 못하면 성장을 멈춘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게 벼르다 드디어 오늘 이렇게 일기를 쓰게 된 것이다. 물론 오늘도 일기를 쓰지 못할 뻔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일기는 지난 시간의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기에 일기가 쓰여지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돌이켜 생각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고, 내 안의 나를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짧게 쓰고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날도 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내 마음이 열리지 않거나 내 머리가 무엇을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들은 내 안의 것을 쏟아내는 글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언어로 써 내려갈지, 어떤 맥락으로 풀어낼지 고민하며, 또 나를 정리해 가며 써 내려가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렇게 내가 정리되는 시간이기에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도가 높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의 하나인가 보다. 

 

 

 

클래식 음악이 좋다. 작곡가와 그의 음악을 매치시켜 어느 작곡가의 어떤 곡이라고 콕 찝어서 말할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지식을 전혀 갖추지도 못했다. 다만 잔잔하게 background music으로 듣는 것이 좋고, 공부할 때, 독서할 때 들으면 참 행복하다. 클래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동영상을 여러 편 보며 노트에 적어보기도 했고, 해설이 있는 클래식이라는 제목의 CD를 구입해 지금도 가끔씩 듣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지만, 몇 년 후, 학원을 그만두면 다시 클래식 음악에 심취해 볼 생각이다. 아무튼 지금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이 내 마음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니, 주말이라는 여유로움과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하루인듯하다.

 

독서와 사색, 클래식 음악, 영어공부는 나의 정서를 채워주고, 나의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것들이다. 건강한 음식 섭취, 적절한 운동과 수면, 행복한 가정, 만족도 높은 일은 현실세계의 나라는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이 나다. 때로는 독서가 커지고, 때로는 사색이 없어졌다가, 때로는 원장이라는 사람의 못난 행동으로 일이 흔들렸다가, 때로는 건강하지 못한 음식으로 몸을 괴롭혔다가 미안한 마음에 다시 건강한 음식으로 보상을 해주었다가, 때로는 남편과 아들과 며느리의 예쁨으로 가득한 날들로 채워졌다가, 오늘처럼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고, 영어공부로 성취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삶이라는 것이 가까이에서 보면 아둥바둥거리는 작은 몸짓인 듯한데, 저 위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닐는지... 몸무게 겨우 40킬로그램이 넘는 중년의 작은 여인이 이 우주의 한 점으로 살아가며 자신만의 커다란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이 아름다운 삶을, 때로는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을 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의 것을 두려워하며 움츠러 들었었구나. 몇 살까지 내가 살아낼지, 그때까지 내게 다가올 것들이 그 무엇일지 전혀 알 수 없는데, 알 수 없음이 곧 두려움이라고 나 스스로 결론 내고, '멈춤' 버튼을 눌러버릴 생각을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죽음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환한 또 다른 세상이라는데,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가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여정이라면, 무엇을 두려워할까... 몸의 통증은 꼭 세트로 올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온 확신이란 말인가! 암수술과 항암의 과정도 잘 견뎌낸 '나'인데, 매일 복통으로 고생하고, 몇 개월에 한 번씩은 날카로운 주삿바늘의 찔림도 과감히 겪어내는 '나'인데, 그 어떤 고통이 나를 무너뜨릴 거라 지레 겁을 먹는가 말이다. 17살 어린 나이에 뼈를 깎는 수술도 했었고, 아이도 낳았던 '나'인데 말이다. 

 

어느 작가는 큰 수술을 끝낸 후에 말했다. 정말 살고 싶다고. 팔다리가 하나씩만 남은 삶이라도, 그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문지기가 되어 매일 교회 마당을 쓸고 싶을 만큼 살고 싶다고. 

 

아! 나는 어떠한가. 여전히 고통이 두려워 그 '멈춤' 버튼을 미리 눌러버리고 싶은가! 늙음이 두려워 진정 '멈춤' 버튼을 눌러버리고 싶은가! 고통은 인내할 수 있을만큼 너무나 많이 겪어보았고, 늙음은 '멋짐'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아들에게 뒷일은 부탁했고, 내가 나를 모르는 상태라면 나도 모를 일이니 그건 하늘의 뜻이리라. 결국 하느님인가... 내일 성당에 나가야겠다. 정말 오랜만에...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삶, 그리고 아름다운 나... 나는 존재 자체로 정말 아름답구나. 오늘,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술과 못난 행동들로 어두웠던 50년의 삶을 결국 암으로 종지부를 찍고, 지난 5년 세월 동안 잘 견뎌내었다. 새 삶을 살기 위해 5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고, 잘 견뎠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제 더 빛날 시간이다. 나는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음악과 독서와 사색과 영어공부와 가정과 식사와 운동과 수면과 일까지 아우르며 나만의 커다랗고 아름다운 우주를 채워갈 것이다. 환하게, 찬란하게...

 

* 음악, 사색, 영어공부, 독서, 건강한 식사, 운동, 수면, 일, 가정... 아홉 개.. 난 열을 만들고 싶어졌다. 뭘까...? 고민하다가 뒤늦게 생각난 것은 '봉사'... 아직까지 내게선 먼 그대 이름은 봉사... 이 열개의 카테고리가 '나'를 완성하도록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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