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된 5년 전 어느 날, 생각보다 많이 슬퍼하지 않았다. 이제 갓 쉰 살이 된, 나 스스로에겐 참 젊은 나이에 죽음이 성큼 다가왔지만, 정작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이 세상에 내가 없는 것? 없으면 어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하는 것? 그럼 안 가지면 되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거? 아! 그거였다. '나없음'은 괜찮은데, 나 없이 살아갈 내 아들과 내 남편, 아니, 다 성장한 아들은 장가를 갈 테고(지금은 장가를 갔지만..ㅎ) 그러면 자기 아내와 잘 살아갈 테지만, 혼자 남은 내 남편은?? 털털하다 못해 지저분한 저 남자는 어쩔 거야? 술 좋아하는 저 인간은 어쩔 거냐고? 나 없다고 술독에 빠져서 살다가 나처럼 아파서 내 뒤를 따라오지는 않을까? 죽음을 앞둔 나는 슬프지 않았는데, 나 없이 살아갈 남편을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집안일도 두루두루 가르쳐둘걸... 하는 후회 같지도 않은 후회를 했다.
폭포수 같은 눈물은 딱 하루만 흘렸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라고 해서 수술을 했고, 항암을 해야 한다고 해서 항암을 했다. 힘들었다. 15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졌고, 나는 아프리카 난민이 되었다. 그 시간동안에도 내가 내려놓지 않은 것. 독서와 영어공부. 사람들이 전화를 해서 뭐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독서나 영어공부 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잠을 자거나, 쉬거나, 운동하거나, 고통에 시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으리라. 물론 그런 시간도 있었으나 그 외의 시간에 독서나 공부를 했다. 그리고 좋은 동영상과 독서를 통해 감사일기 쓰기도 시작했고, 자기 확언도 썼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리 정리부터 시작하는 습관도 들였다. 글쓰기는 지금처럼 일기와 다이어리 쓰는 정도였는데, 독서 리뷰도 쓰고, 다이어리도 그야말로 plan-do-see의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쓰는 일은 참 즐거웠고, 나를 성장시켰다.
몇 년이 흘러 루틴이 된 글쓰기도 있으나, 공연이나 여행, 독서리뷰는 전혀 하지 않았음을 왜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을까? 다시 시작한 일, 좀 더 열정을 더 하게 된 영어공부 등으로 등한시했던 것들이 올 한 해가 가는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네. 새해가 되면 배철현 교수의 심연, 수련, 정적, 승화의 네 권을 다시 읽으며 사색의 시간을 갖으리라 생각했었다. 올 해엔 '하루 한 장 고전수업'이라는 책을 매일 한 페이지씩 읽었다. 처음엔 좋았으나 시간이 가면서 고전이 말하는 것들이 식상하게 느껴지던 참에 문득 참 좋았었던 그 책들이 떠올랐고, 다시 깊이 읽으며 나를 성찰하고, 사색하고, 성장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이 책을 꺼내 들었고, 이곳, 티스토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이야기를 분류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내가 분류한 것들임에도 뭘 썼는지 기억조차 없으니, 글쓰기의 의미가 무색하다. 여행, 공연 등등의 카테고리 글들이 2019년이라니... 3~4년의 시간 동안 난 뭘 한 거지?
심연의 작은 소제목은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이다. 나는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싶다. 우울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옅은 감정의 일렁임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야말로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깨워야 하리라.
작가는 삶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실천해나가는 여정이란다. 나의 임무는 뭘까? 자신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이 임무를 발견한다고 하니, 그 과정을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이 열정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용기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심연이다. 작가는 달리기를 통해 육체의 한계를 확장하고, 묵상을 통해 정신의 한계를 고양시켰다고 하는데, 이 또한 내가 바라는 바다. 그런데 난 육체의 한계를 뭘로 확장할까? 난 이것이 가장 힘들다. 묵상은 배철현 교수가 책을 써놓은 순서대로 따라갈 생각이니 좀 편한 길이지 않을까?
올해는 새로 일하게 된 학원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도 했다. 이제 원장도 달라졌고, 나도 편해졌으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기록으로 남기고, 글쓰기로 풀어내리라. 시간은 많이 들겠지만, 무엇이든지 무심히 넘기지 않으리라. 사람들 만나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알찰 것이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저녁은 일주일의 모든 기록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볼 생각이다. 이런 시간을 갖지 않아서 오래도록 놓쳤던 것들이 있었던듯하다. 그리고 심연을 통해 나의 못난 부분도 과감히 끌어내고 다듬어낼 생각이다. 그래서 또 기대되고 설레는 한 해가 시작되리니...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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