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만의 책 읽기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4 (판단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라)

by 짱2 2024. 11. 17.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은 판단이다. 판단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타인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 정신의 정점이다.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만큼 개체로서 완성도와 독립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판단은 스스로 사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처럼 정신적 세계에 자기만의 영토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고, 알고리즘에 의해 이끌려 유튜브를 수십 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본다. 댓글창의 글들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댓글 몇 개에 모든 이가 나와 같다는 착각을 하고, 남들이 좋다는 곳, 맛집, 멋집에는 꼭 가봐야 할 성지로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나의 판단은 어디로 간 걸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판단과 권위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난제와 부딪혔을 때 권위를 따르면서도 의기양양하게 스스로 판단한 것처럼 착각에 빠지곤 한다. 권위를 갖춘 말을 인용했을 뿐이면서 마치 자신이 직접 고안해 낸 결론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지인 중의 한 명이 책에서 좋은 글귀를 읽거나 소설책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쓰려고 했던 내용이었다, 자신이 좀 더 일찍 깨달은 것인데 이 작가가 이미 책으로 출간했다는 말을 하곤 했다. 난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너무 많은 것이 발전한 시대에 더 이상의 발명은 어렵다고 한다. 이젠 발견을 하는 것이다. 재발견. 이미 있던 것의 편집이라고 김정운 작가가 '에디톨로지'에서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발명이건, 발견이건, 편집이건, 그것을 막연히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또는 생각하고 있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과 자기만의 언어로 직접 쓰고 책을 내는 것은 엄연한 큰 차이가 있다. 자기가 그만큼의 생각의 깊이가 있다고 떠벌리고 싶어 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말에 더 이상 그녀와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그녀를 사람취급조차 안 했던 시기가 그때부터였을 테다. 아마 그녀도 스스로에게 속은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또 그만큼 그녀의 어리석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녀만큼 어이없는 말을 지껄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훌륭한 작가의 멋진 말을 접하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이런 좋은 글이 잊혀질 것이 두려워서다. 손으로 필사하기에는 힘이 들기에 이렇듯 자판으로라도 두들겨서 조금이라도 내 머릿속에 저장하고 싶고,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크다. 그뿐이 아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이것들을 인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마음은 남들에게 잘난 척하고 싶은 어리석음이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이것들이 내 안에 배어들어 한걸음 더 성장하고 싶은 진심이다. 이런 마음을 권위와 혼동한다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배움이 부족한 스스로를 인식하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싶은 성장욕구일뿐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글로 돌아가서 나의 판단은 어떤 상태일까? 아직 더 많은 사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걸 알기에 내가 환갑이 되는 4년이라는 시간을 나에게 부여했다. 5월에 학원을 그만두면서 1, 2년의 시간 정도만 고려했었다. 그러다 그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과 2년의 시간을 더 추가하면 삶의 주기에서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환갑과 딱 맞아떨어졌다. '4년'이라는 시간의 적절성, '환갑'이라는 확실한 전환점이 한 곳에 좌표를 그리며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 동안 영어공부와 음악, 미술, 공연, 영화 등의 문화도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캘리그래피라는 취미활동도 좀 더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 그뿐이랴! 고전 읽기도 시작해야지. 절대로 한가할 수 없는 빡빡한 스케줄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해볼 만하고, 하고 싶고, 4년 후의 내 모습에 벌써 설렌다. 그때쯤이면 나의 정신적 영토의 주인이 되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4년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을 거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혹여 그렇다면 뭐 어떠랴! 정해진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다만 나에게 기준점이 필요한 것일 뿐. 그것이 나를 더 힘나게 할 걸 알기에 만든 이정표이니까. 내가 나에게 줄 환갑선물을 당당히 받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