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할 때는 생각할 것들을 챙겨간다. 어려운 과제들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행을 두지 않는다. 산책의 동료는 고뇌로 족하다.
저녁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남편과 집 근처 둑방길을 산책한다. 아주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또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보폭을 맞추며 걷는다. 이 시간은 나에게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종일 입 다물고 있던 나의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시간이다. 남편이 나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아니어서 때론 더 외롭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체로 감사한다. 남편의 직장 이야기도 듣고 나의 의식의 흐름도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떠들어댄다. 남편은 그저 묵묵히 듣는다. 내 말이 그의 왼쪽 귀로 들어가 오른쪽 귀로 다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행복하다. 나는 지저귈 수 있고, 남편은 들어주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니... 이런 시간을 포기할 수 없어 나의 산책시간은 저녁이 되어버렸다. 쇼펜하우어처럼 고뇌가 산책의 동료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산책의 동료로 그 '고뇌'를 데리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방법은 있다. 점심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나가면 된다. 그때 그 '고뇌'를 소환하면 되는데, 그것이 참 귀찮다. 시간이 아깝고, 귀차니즘이 발동하고, 온갖 이유와 변명이 아우성치며 나를 집에 묶어둔다. 아! 안된다. 건강을 위해서도, 철학하는 삶을 위해서도 운동화 끈을 묶고 집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 시간을 집에 있다한들 더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지도 않으니 말이다. 공부는 오전 5시간, 독서와 취미는 오후 3시간으로 만족하자. 나도 이제는 고뇌를 불러내자. 같이 산책하지 않겠느냐고.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오래도록 관리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좋은 습관이 그 대가라고 할 수 있는데, 좋은 습관을 기르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다.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깨닫고 그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나쁜 습관으로 물들어있던 시간이 있었다. 내 인생의 거의 50년이 그러했고, 누구도 그런 나의 적절하지 못한 생활을 따끔하게 혼내주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내가 앙큼하게 숨기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위와 대장에 암덩이를 갖게 되었고, 수술로 10킬로그램의 몸무게도 잃었다. 말그대로 건강을 잃었다. 다시 시작하자는 다짐 따위도 없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좋은 습관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그냥 살아야 했다. 건강식을 먹어야 했고, 운동을 해야 했다. '암덩이'는 나를 바꾸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존재다. 나를 변화시켰으니...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내 몸은 좋은 습관들로 채워졌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없다. 좋은 습관 만들기에도 욕심이 생기니. '그릿',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등의 책을 읽으며 좋은 습관에 또 좋은 습관을 얹었다.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고 견디는 것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 몸이 받아들여야 한다. 완전히 내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습관, 이미 내 것이 된 습관에 내가 하고 싶은 습관을 얹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했다.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으로 차츰차츰 바꿔왔다. 5년을 지나 6년이 되어가는 시간, 나의 인내와 노력으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아직도 힘든 건 그래서 더 필요하고, 더 간절한 것은 운동이다.
좋은 습관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좋지 않은 습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들고 있었다. 유튜브의 과다 시청이다. 좋아하는 배우가 생기니 그의 영상을 챙겨보고, 그의 영상을 보다가 알고리즘으로 떠오르는 영상까지 나도 모르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고 있다. 이 시간만 아껴도 지금 나에게 가장 간절한 운동을 할텐데.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이미 몸에 굳어진 습관이 되어버린 이 것을 어떻게든 떼어내야 하는데, 하지 말자고 하면 더 생각나는 것이 사람인지라 내가 예전에 썼던 방법을 도입해보려 한다. 기존의 좋은 습관에 바꾸고 싶은 습관 얹어가기. 침대에서는 클래식 음악만 들으며 독서하기. 조명은 조금 어둡게 해두기. 조금이라도 졸리다고 느끼면 바로 저녁요가를 시작하고 불 꺼버리기. 이불 덮고 명상하기. 해보자!!!
규칙적이지 않은 위대한 생애는 없다. 그 모습이 타인의 눈엔 어떻게 비쳤을지 몰라도 그런 생활이 그에겐 적합했기에 그들의 삶은 위대해진 것이다. 시류에 따라 전염병처럼 유행하는 악습에 굴하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규칙을 정해놓고 인내라는 재능을 발휘하여 습관화한다. 그렇게 일생에 걸쳐 긴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남들과 비교되지 않는 자기만의 위대한 삶이 쌓여간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일상 속에서만 특별함이 갖춰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면 그들의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한다. 나는 그들의 평가가 아쉽다못해 화가 날 때도 있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평가된다는 것 자체도 싫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들의 일이지 나의 문제는 아닌데, 그것 때문에 화가 나는 나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 삶이다. 내 자유의지로 자유롭게, 즐겁게 살면 그뿐.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지 그들을 내버려 두면 된다.
맛집에 가고, 유행하는 카페에 가고, 핫한 장소에 여행가고, 몇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대로 전염병처럼 유행하는 시류에 휩쓸린 몹쓸 악습이다. 물론 나도 같이 휩쓸린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문득 돌아보니 맛집이라는 곳의 음식도 내가 만들어 먹는 건강한 음식만도 못하고, 다 거기서 거기인 맛이고, 유행하는 대형 카페도 막상 가보면 다 비슷비슷하다. 그저 남들이 다 가보았다니 나도 한번 가서 보자는 심리의 작용일 뿐. 몇 년에 걸쳐 그것을 해보니 이젠 식상해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장소는 내가 어떠하냐에 달려있는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한 마음으로 그곳에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추억이 되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이 조금 정리 된다. 참 다행이다. 요즘에 미친 듯이 공연을 보러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공부할 시간은 많지 않고, 유튜브는 계속 들여다보고, 책도 많이 읽어내지 못하는 현재의 삶에 아쉬움이 일고 있었다. 이사하려고 집의 모든 짐이 다 싸여서 뭘 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나 해야 할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느낌. 그렇다. 이제 하나씩 정리하며 나만의 규칙을 다시 찾아가자. 내가 만드는 건강한 식사를 하고, 고뇌라는 동료를 불러내 함께 산책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좋아하는 영어공부의 세계에 흠뻑 빠져서 4년 후의 나에게 졸업선물로 해외어학연수를 보내주고, 좋은 공연, 문화, 예술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충만한 삶을 살자. 남들이 뭐라 하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위대한 삶을 쌓아가자. 최소한 4년 후에 보자! 나의 삶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멋지지 않은가! 은밀하고 개인적인 일상 속에서 나만의 특별함이 갖춰진다니... 너무 멀리도 말고, 딱 4년 후의 내가 어떠할지 기대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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