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50이 되던 해,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죽음의 강을 한 번 건넜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강도가 약했을지도 모르지만, 또 어쩌면 심한 강도의 것이라고 추측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에게 위암과 대장암이라는 선고가 내려졌고, 위도 대장도 크게 절제해내야 했고, 항암도 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항암 하는 6개월은 지옥과 같았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 심한 환자를 보며 이만하면 다행이구나 스스로를 위로했고, 그런 그들이 안타까웠다.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몸은 쇠약해지고 늙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성숙해지고 더 건강해졌음을 감사히 생각하며 살고 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고, 고통의 시간 뒤엔 쾌락의 시간도 오게 마련이다. 이런 시련의 시간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고 무척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암'은 나에게 단순히 '병'이 아니라 '화두'였을지도 모르겠다. '암'으로부터 출발한 화두는 지금 '죽음'이라는 화두로 넘어왔고, '죽음'은 현재의 삶의 충실함, 평온함을 의미한다. '잘' '죽기' 위해서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매일의 '화두'가 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감사한 일임을 감사한다.
잘 살고 있는데, 매일 예쁘고 곱게 살아가고 있는데, 못된 '비교'의 감정이 올라올때가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나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전화 한 통화, 지인의 말 한마디에 그런 내 삶이 흔들린다.
'친구 딸의 결혼 소식, 내 아들의 직장보다 더 좋은 직장을 다니는 사위, 내 며느리보다 훨씬 예쁜 친구 딸, 성당에서 조촐하게 올린 우리의 결혼식과 비교되는 그들의 화려한 호텔 예식, 물어보진 않았으나 확실시되는 그들의 멋진 신혼집에 비교되는 내 아이들의 작은 아파트, 심지어 나보다 예쁘고 주름도 없는 내 친구, 나보다 부자인 내 친구...'
잠시 흔들렸던 감정을 내려놓으며 부끄러웠다. 어디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내 아들의 직장, 환한 미소가 참 예쁜 내 며느리, 작은 결혼식으로 오히려 알차고 돈도 남았던 성당에서의 결혼식, 둘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올망졸망하게 꾸민 두 사람의 아담한 아파트, 이혼해서 외롭게 사는 그녀는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남편을 시기하는데... 그녀보다 돈이 더 많지는 않지만 노후의 커다란 걱정 없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음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갑작스러운 그녀의 출현(몇 년간 연락하지 앟았기에)으로 내가 가진 것의 숭고한 가치를 잠시 잊었다.
그녀가 이혼했기에, 홀로 쓸쓸할거라는 추측 따위로 나를 위안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입으로 직접 그러하다 말했었지만 그런 것으로 나에게 위로를 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가짐'과 '못 가짐', 나의 '가짐'과 '못 가짐'의 경중, 정도를 저울질해서가 아니다. 그 결과가 어느 쪽으로 더 기울었던지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흔들림 없는 단단함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루틴이 가끔 흔들리기 시작했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리도록 방치했다. 의미 없는 비교로 내 삶의 가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나의 무력감...
이 감정의 지속은 하루였다. 하루의 시간동안 내 속에서 소환된 귀한 내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친구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전했고, 그녀의 딸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원했다.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나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아직 인간적이라고 위로했고, 이로 인해 한번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을 거라 토닥였다. 흔들리는 나의 루틴도 예전보다 건강해진 나를 느끼고 싶은 잠시의 욕심일 뿐이라고 달래 본다. 곧장 가는 길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잠시의 우회로라고.
참... 아무것도 아닌것을... 멀리서 보면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이고, 그러나 모두 소중한 삶인 것을... 모두 제 잘난 맛에 살고, 또 그래서 모두 고귀한 생명인 것을... 너로 인해 나도 있고, 내 존재가 더 빛나는 것을... 왜 때때로 잊을까... 아직 성장이 멈추지 않은 때문이리라.
음악을 들어도 제목과 작곡가의 이름이 가물가물하고, 단어를 외워도 또 잊어버리고, 책을 읽어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떠오르지않으니, 그럼 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듣고, 또 외우고, 또 읽으며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묻으며 반복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 모두 내려놓으면 덧없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일 테니.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을 가치 있게 살아야지. 가끔 귀차니즘으로 루틴을 내려놓고, 가끔 어리석음으로 못난 행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루틴으로 내 삶을 물들이고, 더 현명해지려 애쓴다. 이렇게 사는 거겠지. 조금씩 성장하면서 우울감을 극복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내 이부자리에 온몸을 파묻고 행복하게 잠드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