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 지내고 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고, 놀고 싶을 때 놀면서 그렇게... 자의적으로 백수가 되었고,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독서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만들어 먹든 사서 먹든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간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한다(물론 법적으로 걸리거나 너무 무모한 것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보고 싶은 것 보고, 읽고 싶은 것 읽고, 내 마음속에 어떤 욕망이나 욕구나 일어나면 바로 한다. 이렇게 나의 모든 욕구를 채울 수 있음은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음이고, 마음의 여유도 있음이고, 경제적 여유도 어느 정도 따라주니 가능한 것이리라. 또 이런 욕망이나 욕심을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애착도 한몫하리라. 그렇다고 내가 늘 긍정의 기운으로 이 삶을 살아내는 것은 아니다. 문득 스치는 외로움, 고독감, 두려움 등이 살아있음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죽음을 죽을 줄 모른다. 스스로 죽음을 실행할 용기도 없고, 그 방법도 애써 찾아보지 않았다. 언젠가 죽음의 순간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오히려 두려운 나인데, 나 스스로, 내 손으로 무언가를 행한다는 것은 어렵고 번거롭고 무섭다. 언젠가 찾아올 그 죽음을 아프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나에게 셀프죽음은 세상을 사는 고통보다 더 고통스럽게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스치고 지나가는 죽음의 아주 힘없는 유혹. 도대체 이건 뭐지? 스스로 놀란다. 그것은 나에게 말한다. 사는 게 힘들잖아. 매일 똑같잖아. 그냥 죽으면 끝이잖아. 그게 낫지 않을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다음은 또 다른 내가 말한다. 그런데 너는 셀프로 죽을 용기는 없잖아.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면 되잖아. 지금처럼. 그리고 너처럼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가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몰라. 나도 몰라. 그런데 자꾸 그런 옅은 생각이 떠올라. 음... 한 100대 1의 비율이랄까? 일주일에 한 번쯤? 횟수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난 용기가 없거든. 방법도 잘 몰라. 그리고 목매달고, 떨어지고, 물에 빠지고 그런 건 너무 무서워. 약 먹는 게 젤 쉬울 거 같은데 그런 약은 또 어떻게 구하는 지도 몰라. 그리고 그거 먹고도 안 죽으면 그 개고생은 어떡하라고. 속 다 버리고 고생만 죽어라 할 텐데. 그런데 왜 자꾸 그런 생각을 떠올려? 몰라. 자꾸 옅게 떠올라. 그런데 죽고 싶진 않아. 그저 떠오를 뿐이야. 그러곤 바로 죽는 거보다 사는 게 더 쉬운 거 같아서 살아지네. 나의 어릴 적 어딘가에 무슨 사고가 났었나? 내 내면에 무언가 생채기가 있나? 나의 신체적 결함? 나의 암? 정신병과도 같은 지독한 외로움? 그런데 다 극복하고 잘 살고 있잖아. 60년 가까이 살면서 신체적 결함은 많이 극복했잖아. 암은 벌써 6년이 지나 7년 차가 되었어. 외로움은 이제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어?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봤잖아. 부모님도 계시고, 친구도 있고, 네가 손만 뻗으면 너와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렸어. 네가 스스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서 그런 거지. 게다가 남들은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영화관람, 연극, 뮤지컬 관람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이나 즐기고 있어. 너만의 공간에서 너만의 시간을 즐기며 살고 있어. 부자는 아니어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으로 그럭저럭 노후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자꾸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 알아.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완전히 잊고 살 수는 없지. 언젠가 죽을 거라 생각하며 지금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 하지만 자꾸 죽음을 떠올리며 그것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다르잖아. 아무래도 어릴 적에 뭔가 잘못 형성된 거 같아.
그런데... 참 잘 살고 있거든. 그거면 된거 아닐까? 매일 이렇게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라고 뭐 다르겠어? 높은 곳에 올라가면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애벌레들이 다른 애벌레를 짓밟으며 기를 쓰고 올라갔던 곳엔 정작 아무것도 없었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거 다 알잖아. 평범한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하늘이 주신 이 삶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큰 복인지 알면서...
이건 어때? 내일부터 무조건 하루에 한 번은 밖으로 나가는 거야. 장보러 나가든, 운동하러 나가든 무조건 나가서 햇빛을 쏘이는 거야. 신선한 바람을 들이켜는 거야. 봄이 되면 밖에서 한 시간은 있는 거야. 기본이 한 시간이야. 운동과 야외에 있기를 한 번에 해결하는 거지. 일석이조.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했으면 해. 성당에 나가. 신앙의 힘이 필요한 거 같다. 조금은 시간을 줄게. 추우니까... 3월부터 나가는 걸로. 물론 춥지 않은 어느 겨울날, 마음이 당기면 3월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 운동과 신앙이 분명 도움이 될 거 같아. 그리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돼. 나의 늙음에 함께 가야 할 필요조건이지.
지금 읽고 있는 책들, 모두 명절동안에 정리하는건 어때? 너무 어수선하지 않아? 욕심내지 말고 하나씩 읽자. 도서관에서 대출 한 책 빨리 읽어버리고, 찝쩍거리던 책도 빨리 읽어버리던지 줄 세워두자. 한 번에 하나씩만 하자. 그리고 리뷰까지 끝내고 정리하자. 책장정리까지 하면 더욱 좋을 거 같아. 이번 설 명절엔 이것을 하자. 책정리!! 미니멀은 환갑쯤 가서 하자 했으니 그건 천천히.
옅은 죽음의 유혹이 스칠 때, 더 잘 살라고 부추기는거라 생각하자. 운동하라고, 하느님을 찾으라고, 친구를 만나라고, 밖으로 나가라고 등 떠미는 거라 생각하자. 그리고 바로 실천하자.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지금의 이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안다면 4년 후의 꿈을 이루고, 봉사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너의 감사함을 풀어내야지. 그럼, 당연하지. 꼭 그렇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