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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수련 10 - 일치( 一致)

by 짱2 2025. 3. 18.

일치( 一致) : 행동은 곧 생각이다.

 

 

 

유대인들은 장막절에 네 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한다. 룰라브(대추야자나무), 하닷사(도금량나무), 아라바(버드나무), 그리고 에트록(레몬)이다. 이 네 가지 식물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유대인들의 네 가지 인간 유형을 나타내기도 한다. 

<디아스포라 : ‘흩어짐’의 뜻으로,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는 말>

 

우선 룰라브는 맛은 있으나 향기가 없는 식물이다. 룰라브는 경전 연구와 오랜 묵상을 통해 박식함을 갖추었지만 그 지식을 선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입으로만 좋은 말을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이다... 룰라브는 선행이 없는 말이나 믿음은 공허하며 거짓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번째 하닷사는 향기는 있으나 맛이 없는 식물이다. 하닷사는 천성적으로 착하기는 하나 '토라'를 공부하지 못해 그 선행을 지속할 방법을 모르는 사람을 상징한다. 이들은 경전을 깊이 연구하지도, 마음을 수련하지도 않아서 자신의 선행을 지속적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아라바는 맛도 없고 향기도 없는 식물이다.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 유형은 하루하루를 닥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위한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주위 환경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이 요동치는 인간이다. 

 

네 번재 에트록은 향기도 좋고 맛도 좋은 식물이다. 자신을 위한 최선을 찾기 위해 항상 근신하고 '토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하루라는 결정적인 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아침에 한 결심을 반드시 그날에 행동으로 옮긴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어떤 사진에 담아낼 것인가? 오늘 당신은 응시할 만한 대상을 찾았는가? 그 대상은 남들이 제시한 나와는 상관없는 물건인가, 아니면 온전한 나를 발견하기 위한 대상인가? 그 대상을 찾았다면 자신의 눈과 마음 그리고 머리를 정렬해 그 대상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그리고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인내했는가?

오늘 하루를 위한 간절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은, 무아의 상태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검지의 힘에서 나온다. 당신의 고귀한 생각을 실천할 지금이 바로 당신의 결정적 순간이다.

 

 

이번 '일치'편은 두 페이지에 걸친 내용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어느 유형에 속하는 사람일지...

 

저자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 "말은 행동으로 옮겨질 때 완성된다. 그러나 말이 말로 그치고 행동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면 거짓이 된다. 고대 히브리어로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마르(amar)'의 원래 의미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다'이다."라고 썼다. 

 

이런 맥락에서 나를 돌아보면, 나는 적어도 거짓말장이는 아니다. 내 언어의 끝은 언제나 실천이기를 바라며 살아왔으니까. 다만 그것이 어떤 이유로든 일치되지 않을 때, 나는 늘 죄의식을 느꼈다. 이런 감정이 지나쳐 어쩌면 나를 갉아먹는 요인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것들도 나에겐 꼭 끝내야 하는 숙제처럼 남아 스스로를 닦달하니 말이다. 또 어쩌면 그런 성향이 나를 실천하는 인간으로 키워냈을테니 모든 것에는 선과 악이 있고, 장단점이 있는가보다. 

 

이렇듯 '일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그렇다'에 매우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향도 좋고 맛도 좋은 '레몬'인가? 이 부분에서 스스로 동의되지 못함은 항상 근신하고 '토라'를 연구한다는것 때문이다. 

 

암환우가 된 이후에 근신하는 삶으로 발전해 왔음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적인 부분에서 아직 내공이 약하다. 그렇다면 나는 두 번째인 '하닷사'에 해당되리라.

 

작년 말쯤에 어느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이렇게 공부하면 어느 경지에 이를거 같다." 그런데 그로부터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지금,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나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늘 공부하고, 독서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막상 내 입으로 꺼내려면 언어의 한계에 부딪히고, 기억도 가물거린다.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음을 깨달으며 나의 잘난척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깨달아야 그래도 좀 안다고, 그래도 좀 말로 꺼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다음 모임에서 그들에게 나의 잘난척을 이해하고 용서해달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실천은 쉽지 않다. 제법 무거워진 엉덩이로 책상앞에 앉아 인내하며 공부하는 힘을 계속 키워가는 중이다. 물론 가끔 꾀가 나고 또 자주 힘들다. 방법도 바꿔보고, 마인드를 다스린다. 그러나 또 흔들린다. 그리고 또 다시 mind setting. 끝없는 반복속에서 나는 매일 성장하는 거겠지. 모든 요리에 맛과 향을 더해주는 새콤한 레몬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끝없는 무한 반복의 실천속에서 언젠가 변화하고 성장해 있을 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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