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沈默) : 넘볼 수 없는 권위
사람은 '그 사람이 말하는 그것'이다. 나는 누군가 말을 준비하는 모습과 말하는 태도를 통해 그 삶의 진면목을 본다. 말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생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다.
생각과 말은 또한 그 사람의 행동으로 자연스레 표출된다. 행동은 그 사람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한 사람의 생각과 말을 통해 표출된 행동이 반복되어 굳어진 것을 습관이라고 한다.
'언어의 한계가 그 사람의 한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심지가 굳고 속이 깊음에도 말이 어눌하거나 말을 잘 못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겐 너무 억울한 표현인 듯싶었다. 나의 지인 중 한 명도 속 깊은 사람인 반면 말을 그만큼 하지 못해 좀 아쉬웠었다. 또 어떤 사람은 말만 번지르르하지 조금 가까이 다가가면 속과 겉이 달라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표현이 그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의 유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말투가 어눌해도, 또 말의 속도가 느려도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의 결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은 깊지만 말은 아쉬운 그 지인도 말할 때의 표정이 참 보기 좋지 않았다.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상하게 감으며 말을 하는 표정이 많이 거슬려 한 번은 지인에게 고쳐보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그녀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이 바닥 끝까지 내려가 빡빡 긁어모아 나오려니 그렇게 힘들게 눈을 까뒤집으며 말을 하게 된것이라는 것을. 평소에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그녀였다.
또 한 지인은 자신이 많이 아는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말하려고 하면 지식의 한계가 드러난다. 본인도 그것을 알기에 전화통화를 할 때면 곁에 있는 책을 읽어주거나 미리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만났을 때 또 읽어주었다. 그리고는 또 자신이 이미 했었던 생각이라며 자신이 먼저 책을 썼어야 했다고 말하곤 했다. 난 그녀가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녀에 대한 실망감으로 더더욱 그녀를 무시하게 되었다.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그녀의 말이 오히려 그녀의 무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깨닫지 못했다.
또 다른 지인은 책도 많이 읽고 성품도 좋았다. 그러나 그 많은 지식이 자신안으로 흡수되지 않아 말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았다. 듣는 이도 덩달아 정신이 없고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그 요점을 찾기 어려웠다. 배울 것도 많고, 참 좋은 사람인데, 책을 많이 읽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색과 글쓰기 작업이 함께 동반된다면 빛나는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했더랬다.
세 명의 지인들 이야기를 했지만 어쩌면 그건 나의 모습이기도 할것이기에 그녀들을 흉볼 생각은 없다. 다만 내게서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나의 의식적 의지일 뿐이다.
저자는 또 말한다. 생각과 말을 통해 표출된 행동이 반복되어 굳어진 것이 '습관'이라고. 나는 습관은 행동의 반복이라고 생각했는데, 행동이 근원이 생각과 말이니 결국 생각과 말이 습관이 되겠구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말도 있으니, 근원이 되는 생각의 변화가 우선이겠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긍정확언을 쓰는데, 그 시간이 참 행복하다. 그리고 내 삶이 내가 쓰는 대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요즘, 특히 평화로운 이 삶이 참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평화롭고, 평안한 것은 내 생각이 내 삶을 운영하기 때문인 듯하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최고의 덕을 그리스어로 '아레테(arete)', 즉 '탁월함'이라고 불렀다. 그는 탁월함을 '훈련과 습관을 통해 성취한 최선'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자주 읽는 책은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 탁월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습관이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원망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살펴 매일매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처한 환경이 나의 습관이 지은 집이라니... 어쩜 이렇게 멋진 말을 표현해 낼까... 탁월함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단어가 아직 어색한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내게 처해진 환경을 멋지게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멋지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나의 말이 고운 꽃잎처럼, 고운 향기처럼 흘러나와 듣는 이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내가 하는 생각이 나를 갉아먹지 않고, 나를 성장하게 하기를, 그러다 흐트러져도 다시 깨달음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근사해지기를 바란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도 그러하기를, 또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저자는 결국 침묵을 말한다. 말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어떤 말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것은 침묵이구나!
침묵은 자기 훈련이자 자기 절제다. 자기를 광고하기 위해 안달이 난 사회에서 스스로 물 아래로 깊이 침잠하는 행위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성스럽게 담아 압도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말하기 위해 입을 다문다. 나는 오늘 어떤 감동적인 말로 입을 다물어야 할까?
말을 뱉어내기는 쉽다. 그에 반해 침묵은 저자의 말처럼 자기 훈련과 절제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스스로에게 참 잘했다고 생각될 때는 내가 어떤 근사한 말을 했을 때가 아니라 그야말로 침묵했을 때이다. 그때 내가 왜 그 말을 했을까... 후회한 적은 있어도, 그 당시에는 그때 내가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하면서 후회했어도,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후회로 남지 않았다. 두고두고 말하지 않고 스스로 침묵하며 견뎌낸 시간이 대견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갖추어야 할 소양이 바로 침묵임을 스스로가 잘 안다. 나의 입에 지퍼를 달아야 하리.. ㅎㅎ
아름다운 생각과 말로 만든 아름다운 습관의 집, 매일 개선해 가면서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할 나의 습관의 집. 침묵이라는 아름다운 언어로 다듬어가자. 그리고 내 언어의 한계가 무궁하도록 많이 읽고, 많이 쓰면서 언어의 능력을 키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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