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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역시 난 환자였다.

by 짱2 2019. 5. 12.

어젠 무리한 계획을 세운거였다.

약속을 한개만 했어야했는데..

어쩌다보니 점심약속과 저녁약속을 모두 잡게 되었다.

 

점심에 만난 지인들과의 시작은 무난했다.

차를타고 양주의 멋진곳으로 이동해서 맛난 소고기에 냉면, 된장찌개를 조금씩 맛나게 먹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일까?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어느순간 가슴이 꽉 찬 느낌이다.

화장실로 달려가자마자 아직 위와 소장으로 내려가지 못한 음식물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스르륵 입으로 넘어왔다.

아침 식사부터 그러더니.. 오늘은 왜이럴까?

다시 자리에 돌아와 나는 이제 그만 먹겠다고 선언을 하고 조용히 소화가 되기만을 기다리는데..

다시 시작된 '설사마왕'의 횡포.

혹시나싶어 아침부터 지사제를 먹고 나갔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두번이나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나서야 진정된 나의 연약한 장기들.

 

우리는 더욱 경치가 좋은 카페로 이동해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오래된 친구들과의 대화.

영원히 오래오래 함께 하자고 다짐을 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이 우리의 다짐을 새겨 듣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저녁 약속시간이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뻘 친구와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준 언니와의 만남.

언니는 병원에 입원했을때 보고 계속 나를 보지 못했고,

항암시기만 되면 전화를 해서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좋은 언니인건 알았지만, 사람이 아프니.. 그사람의 진명목이 보였다.

진심으로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작은 화장품도 준비하고, 엽서에 감사의 글도 적어 화장품안에 끼어 넣었다.

 

셋이 만났고, 언니는 살아있음에, 건강해보임에 감사하며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고마운 친구들. 우리도 오래오래 함께 해요~~

 

점심은 소고기를 먹었으니,

저녁은 맛있는 조개찜을 먹기로 했다.

나는 워낙 해산물을 좋아해서 맛나게 먹었다.

다만 점심의 악몽을 기억하며 조심스럽게 먹었고,

'이제 됐다' 싶을때 숟가락을 놓았다.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두사람은 커피를 시켰고, 나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그걸로 주문했다.

아이스크림 탓이었을까?
또 다시 왕림하신 설사대마왕... 

계속된 화장실과의 인사..

낮 12시부터 10시까지의 강행군, 밖이라고 예외없는 설사대마왕의 횡포.

많이 지쳤나보다.

나를 보는 두사람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친한 동생이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간단다.

극구 사양했는데.. 결국 동생이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간다. 이런 고집쟁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그런데 몹시 지친건 사실이었다.

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고,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보일러는 가장 세게 틀어놓은채로,

나의 짐은 뜨거운 방바닥에서 사우나를 하도록 내버려둔채로 곯아떨어졌다.

 

잘 자고 일어났고, 몸과 마음은 개운했다.

그런데 아랫부분이 왠지 축축하다.

아뿔싸~ 

나의 장기가 설사대마왕의 횡포를 못이기고 항복을 했음을 아침에 눈을 뜨고서야 알다니..

밤새 그것도 모르고 꿀같은 단잠을 자다니..

갓난아기가 아니고선 이럴수가 없음을..

 

서글픔이 밀려왔다.

나이 50이 넘은, 이제 손주를 볼 성숙한 어른이,

밤새 자신의 장기가 어떤일을 벌인지도 모른채 잠을 자다니..

 

어제 아침..

당분간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제해야할것 같다는 나의 예상이 맞았다.

나의 체력은, 나의 장기는 아직 유아수준인것이다.

내 머리만 내가 성인이라고 인식하고, 지적인척 폼을 잡고 있었다.

 

아기가 엄마 젖을 먹고나면 엄마는 아이를 안고 등을 쓸어주며 트림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트림이 나오면 소화가 됐다고 생각하며 뉘어놓은다.

나도 그렇다.

무언가를 섭취하면 트림이 나와야 시원하다. 소화가 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구토가 밀려와 음식을 밀어낸다.

그래! 받아들일께! 

아가같은 나의 장기, 나의 몸..

 

역시 난 환자였고,

나의 뇌는 나를 완벽한 성인으로 착각했음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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