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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내가 중증환자임을 인정하자

by 짱2 2019. 5. 14.

하나도 아닌 위암과 대장암이란걸 알고나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50년 조금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해외여행은 다른사람들보다 적게 했지만, 국내여행은 누구못지 않게 했기에

해외여행에 대한 미련은 크지 않았다.

내 인생 50년동안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님에게 사랑받으며 살았고, 남편을 만나 서로 사랑하며 살았고,

아들 하나를 낳아 사랑으로 키웠고, 그 아들이 잘 자라주었고,

좋아하는 공부를 평생 하며, 동아리모임, 지인들과의 즐거운 시간들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다면 100세 시대에 반밖에 살지 못했지만, 아쉬움없이 죽음을 받아들이자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내가 죽는건 받아들일 수 있을거 같은데.. 혼자남게 되는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는데.. 

나부터가 아니라 남편부터 걱정이 되고 안쓰러웠다.

혼자 남겨진 남편의 일상이 영화처럼 그려졌다.

매일 술마시며 살고 있을 그 모습.

친정엄마는 아픈 네가 우선이지, 남편걱정은 웬말이냐고, 남편을 정말 사랑하는가보다고 하셨다.

 

암이란걸 알고, 우리 두사람은 많이도 울었고,

수술을 거쳐 이제 항암을 하고 있는 중이다.

1월말에 수술을 해서 5월이니.. 이제 3개월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남편의 모임을 모두 참석하라고 말했다.

아픈 나때문에 모임에도 못나가고, 나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하는건 고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면서 스트레스도 풀라는 나의 깊은 배려심이었다.

 

남편은 참 단순한 사람이다.

그 단순함이 남편의 장점이고, 복잡한 사람이었다면, 더 복잡한 나와 맞지 않아 일찌감치 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배려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모임을 다 참석했다.

개인적인 술자리는 많이 절제하는듯 보여서 고마웠는데,

온갖 모임, 그것도 1박2일 여행가는 모임까지 모두 참석했다.

어떤때는 토요일, 일요일 모두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야 들어왔다.

 

이게 문제였던거 같다.

나의 참을성은 여기까지 였다.

 

나는 한끼를 먹기위해서 30분동안 고통스럽게 음식을 삼키고,

그 음식조차 제대로 소화가 되지 못해 늘 왕림하시는 설사대마왕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가끔은 한시간씩 계속되는 복통으로 살고싶지 않을만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데,

암환자가 되기 전이나 후나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남편의 모습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내가 몇년을 암환자로 집에 누워있던것도 아니고,

이제 고작 몇개월 됐을 뿐인데..

친구들에게 아픈 아내때문에 당분간은 자주 못나온다고 말해도 다 이해해주고, 오히려 그런 친구를 따스한 마음으로 바라보아 줄 친구들인데..

오히려 모든 모임에 나가서 술에 취해있으면 친구들이 한심해하지는 않을까?

 

역지사지라고.. 나는 남편이 나처럼 아프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다.

나는 하루 세끼, 남편의 입에 맞는 음식을 챙겨주며

빨리 건강해지길 기도하고, 옆에 항상 있어줄텐데..

모임도 중요한 몇군데만 나가고, 나머지는 다음에 보자고 얘기할텐데..

그렇게 나의 간병하는 모습이 그려지니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집에 오면 혼자 밥 챙겨먹고,

내가 좀 나아진듯 하면 설겆이도 그대로 두고,

TV와 핸드폰 게임만 하는 모습이 이젠 지겹다.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고, 무뚝뚝하고, 말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남편에게 한없이 서운하다.

 

물론 내가 부탁하는건 다 들어주고,

휴약기엔 휴가내서 같이 여행도 가고, 병원갈때마다 또 휴가내서 같이 가주는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 몸이 아프고, 하루종일 혼자 있다가 남편 퇴근만 기다리는 나를 생각한다면,

3개월동안의 그의 행동은 나를 실망시키고도 남았다.

 

그래서 어제는 결국 터져버렸다.

이유는 있었다.

어제 먹은것이 잘못됐는지, 한시간을 쩔쩔매며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했다.

전날 1박2일 여행한 남편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적 고통의 힘듦을 겪으면서,

'아파도 내가 아픈거고, 죽어도 내가 죽는건데.. 내가 너무 남편 생각만 했던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 비슷한 것이 밀려왔다.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한시간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한바탕 연설을 했다.

할말이 없다는 말없음표 남편에게 더욱 짜증이 치밀었지만,

앞으로 조금씩 달라지려 애쓸거라는걸 안다.

 

그리고 나도 달라져야 한다.

남편을 자꾸 챙기다보니, 그는 챙김 받음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내가 조금 나아지면 집안일을 스스로 찾아 하니, 그게 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것이겠지.

이제는 나 스스로가 암환자임을, 중증환자임을 인식하고,

주변의 도움도 자꾸 청하리라. 

자존심 강하고, 내가 아픈것을 자꾸 잊으려고, 아니 어쩌면 정말 잊고서 

빨리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 했던것이 이제는 내게 독으로 다가왔나보다.

 

네~ 난 암환자예요. 몸무게가 12kg이나 빠져서, 삐쩍 말라버린, 

매일매일 음식먹는것이 고역인 중증환자예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요. 용기를 주는 말도 필요해요. 

나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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