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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편지 두번째 이야기

by 짱2 2020. 3. 16.

이 책에서 결혼과 사랑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만 쓰고 싶은 것이 있었다.

스물셋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지겨운 집을 벗어나고픈 현실도피의 결혼이었기에 또, 남들이 말하는 뜨거운 사랑도 아니고, 준비된 결혼도 아닌 탓에 늘 어딘가 부족하고 빠진 듯 느껴졌었다.

나의 신체적 결함, 나의 부모님의 넉넉하지 못한 경제력... 어느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나에게 나타난 한 남자.

그 당시 혼기가 찼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결혼을 원했고, 난 그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했다.

나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그의 부족함이 맘에 들지 않았고, 다만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시기에 딱 맞춰 나타나 줬다는 이유와 나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인다는 이유, 이 두 가지만으로 그냥 결혼했다.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철학자 니체는 결혼할 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다 늙어서도 그와 대화를 잘할 수 있겠는가? 결혼에서 그 외의 것들은 다 일시적인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연애 초기 뜨거웠던 사랑이 식어 가는 자리를 부부 둘만의 재미와 의미로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콘텐츠를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둘 사이에 생기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모여 그들만의 콘텐츠가 된다는 건 확실하다.

 

철학자 니체의 말을 그때 알았더라면 난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현실도피의 목적이 컸다면 상관없이 결혼을 했을것이다. 

좀 더 철학적인 사고를 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난 지금 그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철없고 어린 나이의 무모한 나에게 하느님은 현재의 남편을 '내 인생 최고의 선물'로 주셨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는 사람, 참 착한 사람을 그때 내 앞에 보내주셨다.

만약, 그때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 지금의 남편과는 다른 나쁜 남자였다면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50을 훌쩍 넘어버린 지금... 내 옆에 있는 착하고 고운 남편과 아들.

위암과 대장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죽음보다 더 슬펐던 건 착한 두 사람을 두고 이 세상을 떠나는 거였다.

남겨질 사람의 슬픔에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았다.

그건 사랑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런 남편과의 대화에는 문제가 있다는 거다.

30년 동안 대화가 되지 않아 다툼도 많았고,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늘 실망으로 끝을 내며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마음까지 선을 긋고 벽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안 되는 부분은 조금이라도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여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해주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그 안에서 사랑을 느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을 하는, 내가 원하는 대화는 비록 아니었지만, 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고(실망하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어설프게 들으며 댓구해주었고, 또 싸우며, 그렇게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가 여기에 있다.

뜨거운 연애, 불타는 사랑의 시작은 아니었지만, 우리 두 사람의 맞지 않는 부분을 회피하려 하기보다 부딪치고 싸우며 해결하려 했고, 그 안에서 서로의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상대에게 맞춰가려 노력하다 보니 우리 둘만의 콘텐츠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이다음에 늙어서(지금도 늙어가고 있지만) 우린 할 얘기가 참 많을 거야. 함께 한 것들이 참 많잖아'

 

결혼이란 서로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상대에게 멋진 보석이 되고자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당장은 빛나지 않더라도 내게 헌신할 줄 아는 사람, 평생 내 곁에 있어 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배우자감이다. 그런 사람만이 훗날 배우자를 진정한 보석으로 만들어 준다.

 

스물셋의 꽃다운 하지만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고 있던 내 앞에 보석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했다. 흔한 돌멩이였는데, 마침 그냥 눈 앞에 있었을 뿐이었다.

당장 그 돌멩이가 필요해서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예쁘고 반짝이는 보석이 부러웠고, 자기가 들고 있는 못난 돌멩이가 싫었지만 필요해서 버리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그 돌멩이가 참 예쁘고, 2년이 지나자 더 예쁘고, 그렇게 몇년이 지날수록 그 돌맹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보석은 내 것이 아니기에 더 빛나 보일뿐, 막상 내 손에 들려지면 나에게 맞지 않는 초라한 돌멩이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어여쁘고 반짝이는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보석이라는 것을. 그래서 소중히 간직하며 잘 닦아주고 아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