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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무소유 - 그 여름에 읽은 책

by 짱2 2020. 4. 15.

예전에 읽고 감명을 받았던 책 '무소유'

법정스님의 그 아름다웠던 책을 잊고 살았다.

미니멀 라이프, 정리...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며 책을 정리하던 날이었다.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은 책들을 꺼내놓고, 나만의 베스트셀러 한 칸, 아직 읽지 않은 책 한 칸, 간직하고 싶은 책 한 칸, 이렇게 구분을 하다가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골라내다 법정스님의 책이 무심히 손에 잡혔다.

얇은 책... 그래 이 책은 시집과 함께 화장실에서 읽을 책으로 구분하자.

그때 나는 하루 세편의 시를 읽겠다고 마음먹었고, 그 공간과 시간을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시간으로 정했다.

그렇게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화장실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차례대로 시집을 읽다가 무소유의 차례가 되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었던가!

법정스님이 이토록 글을 잘 쓰시던 분이셨던가!

담백하면서도 수려한 글솜씨, 편안하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말씀, 어렵지않게 공감이 가는  내용...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무색할만큼 50년이 흐른 지금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언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법정스님을, 무소유를 이야기하는구나~

버리지 않고, 계속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엔 깨닫지 못했던 또 다른 깨달음이 법정스님을, 이 책을 사랑하게 만들어버렸다.

 

펀하게 읽어내려가던 중, '그 여름에 읽은 책'이라는 부분에서는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이부분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서까래가 내다뵈는 조그만 들창과 드나드는 문이 하나밖에 없는 방, 그러니 여름이 아니라도 답답했다. 그래도 저 디오게네스의 통 속보다는 넓다고 자족했었다. 또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앞산이 내다보이는 전망이었다. 그것은 3백 호쯤 되는 화폭이었다.

 

3백 호쯤 되는 화폭 같은 전망을 바라보며 한해 여름을 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일까?

내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득 20년전 무더웠던 여름이 떠오른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도봉동의 삼환아파트에서 살 때, 혼자 있는 낮 시간에 정말 무더웠다.

하지만 혼자라는 이유로 에어컨을 틀 수가 없었다.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무심히 여기며 돗자리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책을 읽던 나의 모습.

그때 입었던 빨간색 원피스까지 생각난다.

행복했었다.

그 여유로움. 그 더위. 

화폭같은 전망이 더해진다면...

도시인에겐 어려운 희망사항이겠지만,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 늘 들고 가던 책을 별로 읽지 못했음을 떠올리며,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여행에는 법정스님의 화폭이 부럽지 않을 만큼 나도 아름다운 전망을 바라보며 책을 읽어보리라 다짐해본다.

 

요즘은 한글대장경으로 번역이 나와 있지만 그때는 번역이 없었다. 한글 번역이 있다 하더라도 표의 문자가 주는 여운이며 목판본으로 읽는 그 유연한 맛은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더러는 목청을 돋구어 읽기도 하고 한 자 한 자 짚어 가며 목독을 하기도 했었다.

... 중략 ...

이렇게 해서 그해 여름 '십회향품'을 10여 회 독송했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절절했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그렇게 못 했을 것이다. 스스로 우러나서 한 일이라 환희로 충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내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10여 회를 독송했다 한다. 누가 시켜서 하라 했으면 못할 일이었을 터.

독서. 책을 읽는다는 것. 이 세상 최고의 지성의 행위 아닐까?

읽을수록 새롭고 절절한 그것, 내 자신의 근원적 음성을 듣는 그것,

아름다운 그것을 놓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손에서 책을 놓으면 안 될 일.

무심히 할 행위가 아니라 마음으로 해야 할, 확실히 내 것으로 끌어안아야 할 행위인 것이다.

 

큰 어른의 그 여름에 읽은 책은 나에게 독서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지금 내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극을 주는 작지만 큰 울림의 책.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내가 흔들릴 때, 무조건 이 책을 펼쳐 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