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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by 짱2 2020. 3. 23.

 

 

이 책의 저자인 정현채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소화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어느 방송을 보니 제주도에서 요양을 하고 계시던데..), 부모님과 친척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논문 등을 살펴보며 죽음에 대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한 2018년 초, 암 진단을 받았고, 두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 죽음을 직접 실감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에겐 먼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저자와 비슷한 시기인 2018년 말,
건강검진으로 위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자세한 검사를 하기 위해 서울대병원 위암센터를 찾아 다시 검사를 했다.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나의 뱃속 풍경(?)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젊은 사람이(그분 보시기에 51세는 젊은가 보다) 뭐가 이렇게 많아. 대장, 식도, 자궁... 다시 더 검사해봅시다. 부인과도 가보고...'

그렇게 시작된 검사의 끝은 위암 초기, 대장암 3기...
식도와 자궁은 괜찮다(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

 

문제는 대장암이었다. 4기에 가까운 3기.

그때 나는 죽음을 가까이 느꼈다.

죽는구나. 51세를 끝으로 나는 이 생을 마치는구나.

허무한데. 억울한데. 하고 싶은거 많은데. 아직 안 해본 거 많은데. 가족을 두고 어떻게...

내 머릿속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 머문 채, 병원에서 이끄는 대로 이끌려 죽을 듯 힘든 수술과 항암을 겪어냈다.

그냥 남들이 하던대로,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났다.

가까이 느껴지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공부하고 싶었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믿거나 말거나와 같은 것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 세계가 아닌 저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한다.

체외 이탈, 환생과 같은 것의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내 경우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죽음이 그렇게 무섭고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공포스러운 길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커버도 문 뒤의 세상을 밝은 노란색으로 표현했고, 문을 열고 그 밝은 세상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으로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죽지 말라고 울며불며 매달리지 말고, 좋은 곳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말해주면 환자는 편안히 이승을 떠난다고 한다.

 

다만 자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누구든 죽으면 죽기 직전의 정신적, 정서적 상태에 일정 기간 머물게 되는데, 자살한 영혼은 자살할 때의 극심한 심적 고통에 한동안 머무르면서 마치 지옥과 다름없는 이미지를 스스로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다른 영과 만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죽음은 이 아니다. 따라서 자살을 한다고 해서 고통스러운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서구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윤회론적 세계관에 비춰봐도 자살을 하는 것은 결코 문제의 해결이 되지 못한다. 오랫동안 윤회를 연구해 온 서구의 여러 학자들에 따르면, 이번 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 생으로 고스란히 넘겨져 그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자신의 과제로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은 능력과 인격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따라서 자살을 한다면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것과 같아서 다음 생에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고달파 죽음을 선택했는데, 저세상에 가서도 그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다시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니... 자살의 의미가 없는 것이지 않은가!

결국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수밖에. 그리고 그것이 최선의 삶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글이다.

 

죽음은 조선시대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두려운 신랑의 얼굴 같은 것이 아닐까?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바로 죽음과 마주치게 될지, 아니면 내일일지 혹은 10년 후일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을 꽉 막힌 벽으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열린 문으로 대할 것인지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죽음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 이를 통해 각자 죽음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면 세상을 떠나는 사람에 대하여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친지로서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지지를 하며 배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도 그 길을 가보지 않았기에 몰라서 두려울 뿐, 삶과 죽음이 따로이 떨어진 것이 아니니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거나, 죽음은 재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할 이유가 없다.

얼마 전, 내가 죽으면 너무나 많은 나의 사진을 아들이 정리하려면 힘들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세 식구가 모여 사진을 보며 옛일을 회상하고, 대부분의 사진을 처분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지인 중에 두 사람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

죽음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 죽음이 바로 찾아올 거 같다고. 무섭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듯 죽음은 재수 없는 것, 나쁜 것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죽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영국 전역에 걸쳐 있는 다잉 매터스(dying matters)는 사람들이 죽음에 관해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하고 삶의 마지막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 연합 단체이다. 이 단체는 죽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설립했는데 5년 전 창립 이후 죽음에 대한 금기를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달 5월이면 죽음 알림 주간을 운영하여 죽음이 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삶의 변화를 꾀하려고 한다. ‘당신은 한 번 죽습니다라는 기치 아래 잘 살고 잘 죽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유언장 작성하기, 장례 계획 세우기, 노후 요양 계획 세우기, 장기기증서 작성하기, 아이들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서 좀 더 활성화된 것 같고, 작가는 지금도 이런 강의를 하러 전국을 다닌다고 한다.

이런 강의를 찾아가며 들을 순 없더라도, 한 해가 가는 즈음에 유서도 작성해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도 생각해본다면, 내가 언제 죽을지 몰라도 남은 생을 좀 더 멋지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죽음을 위해 준비하는 삶의 태도를 보자.

 

미국의 완화의료 전문의 아이라 바이오크는 임종 환자를 많이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을 펴냈다. 필자는 이 책에 나오는 네 가지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라고 말하고, ‘용서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고맙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미처 말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분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또 잘못했던 일에 대해서도 미안했다고 용서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만나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는 마음속에서라도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할 일에 대해서는 되도록 빨리 용서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불과 15개월 전,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또 눈물이 날 만큼 쉽지 않다.

환생을 한다고 해도, 더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해도, 저 다른 세상에서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보장이 있다고 해도 나는 지금 이곳을 떠나는 것이고,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가슴이 저려온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은, 언제 가는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하고, 성찰하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는 사람보다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지 않을까?

가족에게, 지인들에게 사랑하는 마음, 미안한 마음 모두 표현하고, 내 주변도 늘 정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날이 왔을 때 그래도 잘 살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하며 떠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