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늘 시간에 쫓기다가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내가 대단하고, 멋지게 느껴진다. 편안하게 안빈낙도하는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으나, 나는 한번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많이 알고, 배우고, 느끼고, 깨달으며 살고 싶다. 누군가는 뭐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한다. 대충 하면 될 것을 사서 고생한다고도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십 년도 넘은 즈음에, 나는 접었던 공부의 꿈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특별히 정해진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꼭 뭐가 되겠다는 의욕이 넘치던 것도 아니었다. 막연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내려놓았던 공부가 하고 싶었고,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움켜쥐고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혼자서 하는 공부란 것이 녹록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어린 아들을 키워야 했고, 작은 가게도 꾸려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4,5시에 일어나 공부를 했고, 그때도 술을 마셨지만, 술에 취해있지 않을 때는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했다.
공부가 잘 될때는 정말 이 세상 모두를 다 가진 듯 행복에 취했고, 공부가 되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래도 공부를 내려놓지는 않았다. 그렇게 국문학 학위를 받았고, 좋아하는 영어공부도 시작을 했고, 곧 영문학 학위와 아동학 학위까지 받았다. 영문학과를 졸업하고서 영어회화를 잘하고 싶어,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고, 그곳에서 우연찮게 인연이 닿아 영어학원의 강사까지 되었다.
뭐하러 힘들게 공부하냐고 했던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이제 나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암환자가 된 내가 항암이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복귀를 하고, 독서를 계속 하고, 또 공부를 하자, 같은 소리를 한다. 뭐하고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 그럴 수도 있겠다. 중증환자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내 몸은 예전같지 않다. 10킬로그램 가까이 빠진 몸으로 살림하고, 직장에 다니고, 주말이면 독서클럽, 영어 리딩클럽, 여행 등으로 이미 분주한데, 영어공부를 계속하고, 또 다른 공부를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이런것들을 하지 않는다면 난 뭘 하고 있을까? 이런 것들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또 뭘 하고 있기에 나보고 다 내려놓으라고 하는 걸까? 그들은 건강을 위해 산에 다니고, 찜질방 다니고, 그리고 또 뭘 하는 걸까? 내가 오히려 궁금하다. 그들은 뭘 하길래 나보고 내려놓으라고 할까? 내려놓으면 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잘까? ㅎㅎ
어제 퇴근하는 길에 회룡역에 있는 스마트 라이브러리에서 '스틸니스'라는 책을 대출했다. 오가는 길에 편하게 책을 대출하고 반납할 수 있다니... 책을 꺼내어 손에 쥐는 순간 나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읽고 싶었던 책이었고, 쉽게 대출할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이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더 성숙한 사람이 될지 설레었던 마음이었다. 오늘 의정부 정보도서관 쪽으로 갈 일이 있어 또 대출할 책을 생각해두었다. 무거워진 가방으로 출근할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렇게 배움이 좋고, 소중한 '나'에게 뭘 내려놓으라는 것인가? 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내려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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