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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암환자 역할

by 짱2 2021. 5. 19.

지난주, 정기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었고, 손등에 시퍼런 멍을 남기며 주삿바늘을 세 군데 꽂았어야 했고, 다행히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위내시경을 끝냈다. 그리고 CT 촬영도 무사히 마쳤다. 평소에는 내가 환자라는 것을 잊고 살다가, 배가 여느 때와 달리 심하게 아플 때, 그리고 이렇게 정기검사를 받을 때,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검사 후, 일주일... 덤덤한 듯, 긴장이 된 상태로 의사와 마주하고, 그의 첫말을 기대한다. '괜찮네요~' WOW~~ 그럼 끝~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아니면.. 그럼... ㅠㅠ 아니야 괜찮을 거야...' 맘으로 되뇌는 말... 앞으로도 몇 번을 반복할 상황이다. 5년이 지나면 병원에서는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할 테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병원에서 무슨 말을 해주겠지. 어쩌면 나의 이런 담담함이 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편하게 하고, 매일을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닥치지 않은 일을 걱정해서 무엇할 거며, 어떤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나가면 될 것이다. 그것이 암과 관련된 일이라고 할지라도. 

 

암환자가 되고, 수술을 한지 3년 차이다. 지나고 보니 참 빨리 지나갔다.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을 훌쩍 보냈구나. 그 고통을 모두 견디고, 지금도 가끔 그리고 약하지만 반복되는 고통, 불편함을 겪으며 이만큼 와 있구나. 대견하고, 고맙다. 

 

지인의 남편이 코론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하고, 무척 왜소했는데, 간암까지 생겨 수술을 하고, 거의 죽을 모양을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었다. 죽을 거라 생각했기에 병문안을 갔었고 무척 안타까웠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사람은 예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남의 일이라, 암에 걸리면 죽는 줄 알았고, 죽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될 만큼 굉장히 마른 몸이 되어서, 그의 죽음을 당연히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는 그 사람을 보며 참, 사람 목숨이 질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암환자가 되고, 뼈에 가죽만 남은 상태가 되고 보니, 죽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목숨은 때론 질기지만(물론 쉽게 죽을 수도 있지만),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 지인의 남편이 살아있음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고, 서로에게 공헌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도 남이 보기엔 질긴 목숨인지 모르겠으나, 장과 위를 잘라내고도 이렇게 살아가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의 관계를 계속 맺으며 살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런 생각도 한다. 여러 역할 중에 환자 역할 한 개 늘었다는 생각. 물론 제일 힘든 역할이기는 하다.

 

6개월 동안 내내 잊고 있다가, 다시 병원에 가게 되면, 내가 암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그래도 참 잘 해내고 있다고 칭찬하게 된다. 애초에 나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100세까지 살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엄마, 아빠를 보면, 80 전후의 나이임에도 꼬부라지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생각을 그닥 하지 않는 걸 보면 100세 시대라는 말이 실감이 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건강하신 부모님처럼 나도 암환자 역할을 할 뿐, 건강하게 살겠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쉰네 살이라는 지금의 내 나이는 그야말로 청춘이구나. 지금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니, 난 다시 20대인 건가? ㅎㅎ김미경 대학에서 말하는 'twenty again'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건가? 김미경 대학의 열정 대학생이기도 하니 말이다. 

 

암환자이면서도 무얼 그리 많이 시작했는지, 나도 내가 놀랍고, 심한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오늘 이 글을 쓰다 보니 100세 시대에 나는 이제 예전 세대의 20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잘 해내고 있는 것이고, 잘 살고 있는 것이고,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이렇게 활기찬  'twenty again'을 보내고 있는건, 50에 맞이한 '암' 덕분이기도 하고, 항상 긍정적인 나의 마인드 덕분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책 읽고, 사색한 덕분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멋진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고, 하나씩 목표를 성취해 나갈 것이고, 그 과정에 '암'은 그저 나의 한 가지 역할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파이팅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