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그만두고(짤리고?) 실감할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남편과 차박을 다녀오고, 주말을 보냈으니 말이다. 이번 주도 모임에, 엄마와 배우는 캘리그래피 수업에, 병원에... 바쁘게 지나갈 것이고, 난 또 실감하지 못한 채로 한 주를 흘려보내게 될 것인가? 수술하고, 항암 하던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일을 했었더래서 그런 건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일을 했었는데... 30킬로그램대의 몸무게, 어지러움, 기운 없음, 설사, 구토, 복통이 여전했던 그때도 일을 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일을 하지 않게 된 지금... 나는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이다. 뭔가 해야 할 일은 많고, 하겠다고 계획도 세웠고, 하고는 있는데,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와 저만큼 위에서 내려다보아지는 나는 괴리가 느껴진다.
근무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출근하기 위해 준비하고, 출퇴근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직장에 나가기 위해 온전히 투자한 시간은 8시간이었다. 하루의 3분의 1을 투자했었다. 백수가 되며 이 시간을 벌게 된 지금, 정말 알차게 보내자고 계획을 세웠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디지털 공부의 양을 그만큼 늘려 분배를 했다. 성공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한 나의 욕심이 부른 과함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왜일까? 생각만큼 많이 해내지 못하고 있다.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시간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랬는데, 그 시간을 벌었는데, 그만큼 해내지 못할 뿐만아니라 신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성공을 빨리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만 커지고, 초조한 마음뿐이다. 왜 나만 미래를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는가 싶어, 세상 편안한 남편에 대한 미움마저 일어난다.
내려놓을까? 예전부터 생각했던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아껴 쓰면, 굳이 이렇게 애써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놓고,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살면 안 될까?
뭔가를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은 나에게 활력이 된다. 50년 넘는 내 삶을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삶속에서 나는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렇게 조여지는 느낌은 싫다. 이런 느낌이 드는 까닭은 '돈'때문이다. 이제는 받을 수 없는 나의 월급. 그만큼의 쫄림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쫄림을 벗어날지...
어제,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읽다가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신념을 가지고 살았더니, 나머지는 주님께서 마련해주셨다.' 띵~~~ 그래! 내가 아무리 아둥바둥해도 소용없는 거 아닐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거, 아끼며 살아야 하는 거... 맞아. 하지만 주님께서 마련해주실 텐데, 뭐 때문에 불안해하고 쫄려하는거지?
1~2년에 걸쳐서 준비하려고 했던 일들이 훅~하고 내 안으로 들어오며, 그 일들을 준비하는게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두려움이 느껴진 거다. '나중에'라고 생각했던, 현실적으로 부딪쳐야 하는 많은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니 더럭 겁이 난 거다.
그런데 사실 언젠가 부딪혀야 했고, 언젠가 나의 능력을 깨닫고, 진행형으로 만들어갈지, 포기라는 단어를 써야할지 결정해야 했었던 거다. 2022년 12월이었을지도 모를, 아니면 2022년 6월이었을지도 모를 그 단계를 빨리 끌어당긴 것뿐이다. 언젠가는 겪을 일이었던 건데, 직장을 그만둔 것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닌데, 다만 그것이 시기를 빨리 당겼을 뿐인데...
저 멀리,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물어본다. 앞당겨졌다고 안 할 거니? 아니... 두렵다고 포기할 거니? 해보지도 않고? 아니... 해볼 거지? 응 해보고 나서 결정할 거지? 응
다만, 12월 31일에 내가 생각한 그 단계에 가 있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기로 하자. 그런 부담이 첫 발걸음을 너무 무겁게 하고 있으니... 7월은 적응하는 기간으로 좀 느슨하게 가도 되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 암환자인 내가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잖아. 주님께서 마련해주실 거라 믿으며, 넌 너의 신념을 가지고 천천히 나아가는 거야. 원래 너가 하려고 했던 거 차근차근 하자. 2년 정도 생각했던 거, 직장 그만두었다고 6개월에 어떻게든 해보려고 욕심냈던 거... 중간 정도인 1년으로 좀 느슨하게 가자.
돈이 제일 걱정되지만, 적금 들듯이 주식에 투자했던 그 금액을 포기하면 된다. 앞으로 6개월동안은 주식에 한 푼도 넣지 않고, 힐링 여행자가 말하는 대로 얼마나 늘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그대로 놔두자. 주식에 투자하던 금액이 딱 내 월급이었으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껴 쓰는 거다. 돈 번다고 얼마나 풍요롭게 썼던가!
그동안 일하느라 긴 해외여행은 나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고(돈 때문이기도 했지만), 짧은 해외여행, 3박 정도의 국내여행도 가장 비싼 7말 8초에 다녀와야만 했다. 덥고 비싼 그때에 말이다. 이젠 덥지도 않고, 붐비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날 골라서 여유롭게, 싸게 여행 다니자. 알차게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직장 그만두었다고, 직장 다니던 때와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다 씹어먹어 버릴 듯 꽉 차게 세웠던 계획을 내려놓자. 최소한 저녁시간만큼은 내려놓자.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그 시간에 해보자. 편하게 쉬운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그림 그리고, 뒹구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그래야 한다.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일을 그만둔 게 지난 목요일. 금요일은 남편과 차박 여행을 떠났고, 주말은 친정에 다녀오고, 아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어제 월요일은 온전히 집에 있어 보았고, 오늘은 아침부터 엄마와 하는 수업을 다녀오느라 또 바쁘게 낮시간까지 보냈다.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실감을 할 시간도 없었지 않은가! 7월은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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