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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한달 백수 적응기

by 짱2 2021. 8. 2.

 

 

디지털 관련 일을 준비하면서 설레임과 함께 막연함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그걸 두려움이라고 표현했으나 나에겐 그닥 적절하게 들리지 않았다. 두려움이라면 두려움일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전혀 가보지 못한 길에 들어서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어떤 신발을 신고 가야 하는지, 어떤 지도를 펼쳐 들고 가야 하는지 모르는데서 오는 막막함, 답답함, 그리고 조급함까지 섞인 감정이었다. 만약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건 아주 미미한 부분을 차지했을 거다. 

 

먼저 가본 선배가 있다면... 내 손 잡아 이끌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아무리 둘러봐도 나 혼자인... 아니... 오히려 나를 의지하고 뒤에 서서 내가 나아가기만 기다리는 남편만 있을뿐... 이런 남편이라도 의지가 되는 걸 보면 지금의 나에겐 어지간히도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다 내가 이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어쩌다가 내가 이 길에 희망이 있다고 믿음을 가졌는지... 어쩌다가 내가 남편을 앞서서 우리집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조차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스스로 나서서 이 길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을까? 

 

미래를 생각했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꿨고, 멋진 미래의 나를 확신했다. 아무도 그럴거라고 말해준 이가 없었는데, 나 스스로 그렇게 알아버렸다. 아니다. 사실은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제일 먼저 이지성 작가가 '에이트'라는 책에서 미래의 변화를 일깨워 주었고, 그다음은 김미경 강사가 구체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빨리 디지털 세상으로 뛰어들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그들의 책, 그들의 동영상을 통해 지금의 세계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스나 신문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는 나에게 그만큼의 힘을 실어주지 못했으나 내가 믿고 보는 작가, 강사, 유튜버의 이야기는 강력한 힘으로 나를 디지털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디지털 세상을 뛰어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 세상으로 뛰어들수 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7년쯤, 내가 환갑이 될 때쯤, 더 이상 영어쌤으로서 살아가기 힘들 거라고 예상을 했고, 1,2년 정도 준비해서 내후년 정도에 완벽한 수준의 유튜버가 돼있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쯤 원장쌤에게 난 이미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노라고 멋지게 이야기하고 학원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학원에 사건이 터졌고, 나는 그 학원을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시기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건 아니잖아. 너무 빠르잖아. 난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디지털 공부는 이제 시작이고, 차 할부금은 2년이나 남아있고, 매달 주식 투자하던 것은 또 어쩔 거냐고. 참 막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음은 참 대견하다. 그만큼 나의 마음은 이미 디지털 세상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암환자가 된 이후의 단련된 마음 단단함이기도 했다. 난 오히려 학원에 나가지 않음으로 인해 나에게 생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로 다짐을 했고, 지난 한달을 알차게 보내려 노력했고, 완벽하진 않지만 흡족한 시간을 보냈고, 한 달 동안의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다.

 

첫째, 백수 생활에 적응하며 마음 편안하게 지냈고, 남편과 맛있는 저녁 식사를 즐기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고, 적당히 쉬고, 적당히 공부하는 루틴을 익혀가고 있다. 암환자인 나에게 필요한 휴식,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어서 좋았다.

둘째, 디지털 공부를 많이 했고, 나에게 필요한 다른 강의도 알게 되었고, 그 강의를 통해 막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서서히 풀리면서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방향이 잡히니, 불안함, 초조함, 막연함이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재미까지 생겼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것에 대한 재미가 생겼다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결국 나의 도전정신은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고 나는 드디어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원래 내가 하고 있던 영어공부, 사회복지 공부, 독서, 운동을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스티븐 코비 박사의 시간관리 매트릭스를 보면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에 해당하는 것들을 참으로 편안하게 내 맘껏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영역의 일을 하는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긴급한 일에 쫓겨서 또는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마음을 뺏겨서 많이 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그런 일들을 즐기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넷째, 시간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사람이 보였다. 지인들을 만나는 시간이 아까워 바쁜 사업가가 시간을 쪼개 사람을 만나듯 지인들을 만나고, 엄마와 보내는 시간도 아까워했는데, 편안한 맘으로 그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잊고 있었던 지인들의 소중함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 온전히 그들에게 마음을 줄 수 있게 된 것이 참 행복하다.

 

한 달 동안의 가장 큰 결과 네 가지를 나열하고 보니... 학원을 그만둔 것이 참 잘 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런가? 결과가 말해주겠지만, 중요한 건 현재이고, 현재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으면 그런 것이겠지. 한 달 동안 초조했던 마음이 이젠 행복한 마음으로 거기다 재미까지 덤으로 얹었으니 완벽한 백수 적응기다. 

 

그럼 완벽한 한달을 보냈는가? 자문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간이 약간 엉키기도 했고, 계획한 대로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체력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고, 완벽함이란 이름으로 나를 옥죄고 싶지 않다. 편안하게, 여유롭게, 천천히 갈 거니까. 아무도 나에게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데, 나 스스로 나를 졸라맬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당장 내가 돈을 벌지 않는다고 남편과 내가 굶어 죽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니 이건 너무 극단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말이다. 당장 내가 돈을 벌지 않는다고 남편과 나의 노후가 엄청 힘들어질 거는 아니지 않은가! 1년 정도 준비하며 쉬어간다고 살림이 곤궁해질 것도 아니고, 지금의 이런 시간이 분명 경제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믿음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도전이 이제 행복하고 재미있기까지 하니, 난 이제 날개를 달았다.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면 된다. 매일이 새로울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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