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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

by 짱2 2021. 9. 7.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은 '기록하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이다. 기록하는 것이 기적이라면 나는 이미 기적을 이룬 사람이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시절, 억지로 쥐어짜내며 일기를 시작한지 이후로 50년 가까이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원해서 글을 쓰게 된 지 40년이다. 사춘기가 된 이후, 내 안으로부터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떤 감정들을 풀어낼 방법을 찾아내었고, 그것은 바로 '글' 즉 '일기'였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내 마음의 이야기를 일기로 풀어내고, 시도 지어보고, 소설도 써보고, 매일매일 다이어리도 쓰며 살아온 세월이 벌써 40년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의 똑같은 일상을 매일 다이어리에 적는다는 것은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다이어리를 채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왜냐하면 '쓸꺼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친구가 오면 'ㅇㅇ 옴', 'ㅇㅇ 감'... 이라고 적는 것이 이벤트였다. 이 책을 그때 읽었더라면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을 거고, 더 풍성한 삶을 살았겠구나 싶지만 이 책을 지금이라도 만나서 나에게 많은 동기부여를 해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참 많은 것에서 '글감'을 찾아낸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 그런 시선이 어느 것 하나 소홀할 것이 없었으리라. 어쩌면 나도 같은 마음, 그런 시선이었을 텐데, 무심히 흘려버렸고, '내까짓게 뭐' 이런 맘으로 나의 일기장에 소박하게 몇 줄 끄적이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내가 좀 더 자존감이 높았고, 좀 더 일찍 깨달음을 얻었다면'하는 아쉬움은 한 켠으로 물리고, 몇 살까지 살런지는 몰라도,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만족도가 크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가장 큰 수확은 5년 다이어리를 알게 되었고, 바로 책을 구입해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1년짜리 다이어를 장만해서 한 해를 쓰고 나면 다른 다이어리로 패스. 그런데 5년 다이어리는 1년 후, 2년 후... 그리고 5년 후 같은 날에 그 공간을 채움으로써 나의 지난날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얼마나 멋진가! 이 노트가 두권, 세권 늘어갈수록 10년, 15년의 내 삶이 한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더불어 쓰는 것을 좋아하는 벗이 있다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선물하고 싶은 첫 번째 목록이 되었다. 

 

저자는 여행지마다 한 권의 노트 쓰기, 매달 나만의 베스트를 가려보기, 하루에 하나씩 좋은 순간 줍기, 나만의 반복되는 역사 기록하기, 같은 장소에서 사계절 모아보기, 언젠가 그리워질 공간 기록하기, 좋은 말 적어두기, 좋은 문장 적어두기,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담아두기 등 많은 팁을 넘겨준다. 모든 것이 좋은 콘텐츠가 될 좋은 소스이다. 나는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것들을 내 것으로 풀어갈지는 나의 몫일 테지만... 

 

지난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기록에는 '차박 기록'이 있습니다. 차박을 떠날 때 늘 가지고 다니는 캠핑 의자가 어떤 풍경을 배경으로 놓여 있었는지 두 사람만 보는 비공개 계정에 쌓아가는 거예요. 다른 멋진 풍경도 많을 테지만 의자의 뒷모습을 택한 건, 우리 두 사람이 그때 그곳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었는지 기억해주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그것은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일 때도, 해 지는 바닷가일 때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의 강가일 때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몇 장 되지 않지만, 이 기록 역시 꾸준히 쌓인다면 두 사람만의 캠핑 역사가 되겠죠.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이럴 때도 있었지' '이때 참 좋았지' 얘기하는 추억이 될 거예요.

 

이 책을 읽다가 '5년 다이어리'에 처음 꽂혔고, 두 번째로 '차박 기록'에 꽂혔다. 그 이유는 우리 부부의 취미가 '차박'이니 그럴 수밖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어느 장소에 가서 먹고, 풍경 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저자가 하는 것처럼 캠핑의자를 배경으로 한 장, 나 혼자 앉아서 한 장, 남편 혼자 앉아서 한 장,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둘이 같이 앉아서 한 장 찍어 볼 생각이다. 장소의 변화와 더불어 나와 남편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두 사람의 몇 장면도 비디오로 남겨두려 한다. 세월이 흘러, 나이 든 우리 부부가 나눌 멋진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할 거다. 그리고 이 임무는 남편에게 맡겨볼 생각이다. 나의 일의 업무 분담이기도 하거니와 이 일을 하며 즐거워할 꺼리가 생긴 남편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효용성이나 효과보다는 '기록'이라는 결과물 자체가 기록의 가장 큰 쓸모가 아닐까 싶습니다.(이승희의 기록의 쓸모)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항상 무얼 시작하기 전, 허튼 데 낭비할 시간 같은 건 없다는 듯 이유와 쓸모를 찾지만, 사실 기록의 쓸모란 기록 그 자체에 있는 걸요. 그러니 시작 전엔 알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기록을 시작한 사람만이, 그리하여 눈앞에 자신만의 기록을 쌓아가는 사람만이 기록의 쓸모는, 또 아름다움은 기록 자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나만의 반복되는 역사'를 쌓아보세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기록의 시작은 '적을 것'과 '적을 곳'을 분명히 하는 데 있거든요. '적을 것'은 나만의 테마를 찾는 일입니다. 내가 좋아해서 자주 하는 행동이 있는지(제 경우 맥주 마시기, 한강 가기, 차박 떠나기, 동네 산책 등이 있습니다), 혹은 나도 모르게 자주 찍고 있는 특정한 풍경이 있는지(저는 동네 골목길에 누군가 키우고 있는 화분을 자주 찍어요), 매일 빠짐없이 반복하는 일과가 있는지(요가일기, 수영일기, 점심일기 같은 기록이 될 수 있겠죠) 가만히 살펴보세요. 좋아서 하는 기록이어야 꾸준할 수 있으므로 '이런 기록이 쌓인다면 정말 좋을 거 같아'하는 마음에 드는 소재를 찾아보세요. '적을 것'을 정했다면 다음은 '적을 곳'을 생각해봅니다. 노트가 좋을지,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올리는 편이 적합할지, 영상을 찍는 것이 나을지에 따라 '기록할 장소'가 정해지겠죠. 그럼 모든 준비는 끝난 셈입니다.

이 세상이, 내가 사는 일상이 모두 기록의 소재가 된다는 것을 왜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을까? 그리고 내 삶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또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얼마나 더 아름답게 승화되는지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3년 전부터 '티스토리'를 시작한 것이고, 무심히 쓴 것이지만 40년 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써왔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의 일기장을 혹여 남편이 볼까 두려워 버렸다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걸(남친 이야기) 본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말이다. 

 

글을 쓰면서 가장 잘한 일은 1년간 꾸준히 쓴 육아일기와 드문드문 쓰긴 했지만 아들의 한 살부터 서너 살까지 쓴 일기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준 육아일기 노트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썼었는데, 내가 암 수술하러 병원에 가기 전에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서른이 다 된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일기장을 받았고, 그 이후로 아들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엄마가 자신의 어린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기록이 아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은 내가 죽은 후에도 그 일기장을 보면서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리라. 

 

'쉬운 일은 아니지만'을 쓰고 그린 홍화정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쯤 근처 카페에 가서 그동안 주워둔 좋은 문장들 -노랫말이나 책에서 밑줄 친 구절, 타인의 생각들-을 노트에 쭉 적어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책에서 언급해요.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 좋은 기운이 차오른다고요. 좋은 문장은 기록해두는 것만큼이나 곱씹어 마음에 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동안 좋은 글들을 옮겨적곤 했는데,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적어놓아도 다시 보게 되지도 않아 시간낭비로 생각되어 멈춘 상태다. 다만 이렇게 책을 읽은 후 마음에 담고 싶은 부분을 글로 적고 나의 느낌을 적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기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물론 이런 기록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들입니다. 사실 모든 기록이 그럴지 모르죠. 하지만 시시때때로 마음이 메말라갈 때, 열어볼 기록이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은 아주 나빠지지는 않을 거예요. 사는 게 다 그렇지 않고, 사람이 다 그런게 아니라고 계속 손을 들어 가리키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맞다. 이런 기록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자기 맘이다. 하지만 나중에 기록을 보게 될 때의 맘은 참 예뻐진다. 글로 남길 때의 내 마음도 떠오르고, 현재 그 글을 읽고 있는 내 맘도 정리가 되고, 앞으로의 마음도 다지게 된다.

 

다음은 실전 편입니다. 글감을 모을 땐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면 좋아요. 1. 바로 메모하기 2. 메모한 것을 알맞은 서랍에 넣기 3. 주워둔 글감으로 뭐라도 쓰기
무엇을 기록해야 하냐고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세요.

지금까지 해 온 것에 좀 더해서 서랍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어 뭐라도 써야겠다. 내 주변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만의 콘텐츠로 풀어내야겠다. 생각해보니 쓸거리는 참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