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유튜브와 정토회쯤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고, 나의 지인 중 몇 사람은 정토회 소속이고, 친한 언니는 정토회에 관심도 많다. 그러나 나는 법륜스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나와는 맞지 않음을 느꼈을 뿐이다. 스님의 말씀은 모두 옳다. 그러나 사람들을 대하는 화법, 말씀의 시작 등이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중생이 던진 화두를 엉뚱한 방향에서 끌어와 해결책을 풀어감이 신선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수록 나와는 맞지 않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전자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내서재에 담아두었다. 그러나 스님의 책 또한 나의 마음을 끌어내지 못함은 뭘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의 나열에서 오는 식상함일까? 내 생각의 얕음일까? 스님의 깊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함일까? 읽는 내내 큰 감흥 없이 읽었으나 몇 군데 내 마음에 드는 글귀를 만났음에 흡족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뜨거운 줄 알면 그냥 놓아버려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이치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동안 살아온 습관이 남이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움켜쥐고 괴로워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괴로움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집착할 때만 잠시 괴로울 뿐 그 괴로움이 지속되지 않아요. 그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참 멋진 말이다. 그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 맞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따로 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내려놓지 못하는거다. 그러나 집착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괴롭지 않다. 그리고 지혜로움을 얻는다. 하나를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나'가 된다.
마음속에 원을 세운 날은 '동지'와 같고, 100일쯤 지나서 내 카르마를 아는 때는 '입춘'과 같고, 3년 정도 1,000일 기도를 하고 나면 꽃피고 움트는 '춘삼월'과 같아 주위에서 '변한 것 같다'고 얘기하기 시작해요. 꽃피는 춘삼월이 오기 전까지는 봄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봄이 왔다고 느끼지 못하듯이 아무리 수행해도 3년이 되기 전까지는 자기 생각에는 변한 것 같은데 주위에서는 인정을 잘 안 해줍니다.
작은 습관 하나가 내 생활에 옅게 자리 잡는데도 21일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뜻을 세우고 뭔가를 이루려면 100일 기도가 아니라 1000일 기도정도는기도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 나이 아직 54세, 이 나이에 뭘 시작하냐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100세 시대에 54세는 청소년기에 불과하고, 뭐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니, 망설임 없이 도전하고, 최소한 3년은 몰입,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본 후에, 1000일 기도 정도는 해본 후에 마음을 접어도 되리라.
스님은 사람이 변하는것, 과보가 결국은 돌아온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글을 쓰셨고, 이 부분에 대해 100퍼센트 공감하나, 나는 이 부분을 꿈과 도전의 방향이라는 내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풀이 한 포기 자라고, 토끼 한 마리가 나듯이 사람도 태어나서 자연의 일부로 살다 떠나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것도,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인생에 목표가 없다고 해서 불안해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자꾸 '인생에는 목표가 있어야 해'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겁니다. 인생에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운 거예요. 오늘 아침 한 끼 배부르게 먹었다면 불안해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오늘 저녁에 추위에 떨지 않고 잘 곳이 있다면 불안해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먹고사니즘만 해결된다고 불안이 전혀 없을수도 없지만, 죽는 날까지 먹고사니즘이 해결된다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힘들게 할까봐 노후를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돈 욕심을 부리게 된다. 오늘 한 끼가 문제가 아니라 내일의 한 끼를 손 놓고 하늘에서 떨어지길 바랄 수야 없지 않겠는가.
또한 인생의 목표가 없다고 불안해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꿈을 꾸는 것이 삶이지 않은가! 그런 것까지 다 내려놓아야 할 이유는 없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이니까. 꿈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으니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것,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것이 내가 살아있는 의미이고, 살아가야 할 의미이지 않을까? 오늘 하루 멋지게 살아낸 것이 나의 의미이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내는 것이 내 삶의 의미인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사람들이 나에게 뭘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대충 살라고 하면 내 안에서 '화'가 올라오는 이유는 이런 부분에서 나의 가치관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인가보다.
행복한 삶은 돈에 매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돈을 얼마 더 받고 안 받고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 쓰임새가 어디에 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으면 돈을 내고서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재미와 보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결국 내가 아닌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가보다. 나는 이만하면 됐으니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마인드를 갖게 되는가 보다. 아직 그런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함이 아쉽지만 나의 궁극의 목표도 그것이기를, 그것에 이르는 길로 내가 인도되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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