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잠이 부족한데도 늦게까지 책을 읽으며 잠이 오지 않아 고생하다가 결국엔 빗소리까지 듣게 됐다.
천둥소리도 들리고, 번개도 번쩍였지만 멀리서 벌어지는 일인지 천둥소리도 번개도 무섭지 않았다.
워낙 빗소리를 좋아해서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비 오는 소리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준비하는 소리에 깨었지만, 늦게 잠든 탓에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잠이 들어 조금 늦게 일어났다.
암이라는 놈때문에 수술을 하게 되면서 기약 없는 휴직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매일 집에 있어야하는 신세가 되면서 가장 편한 것은 아침에 눈뜨는 것이다.
되도록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하지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잘 수도 없는 노릇.
그럴 땐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침대에서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는다.
늦잠을 자도 아무 불편이 없기때문이다.
남편도 내가 아프니 혼자 알아서 밥 먹고 출근을 한다.
물론 아프지 않을 때도 그랬지만, 그때는 그게 미안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항암으로 음식 냄새도 맡지 못하고, 손발 저림으로 냉장고의 음식을 맨손으로 만질 수도 없으니......
그러고 보니 암환자가 되어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
집에 있다 보니 집을 더 예쁘게 꾸미게 되고,
맨날 말라비틀어져 죽어나가던 화초들이 새순을 마구마구 올려대며 무럭무럭 자라면서 베란다를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던 책들을 맘껏 읽고,
유익한 동영상을 보며 내게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실컷 저장하고,
읽은 책들과 얻은 정보를 잊지 않도록 나만의 노트에 정리해놓고,
내가 젤 좋아하는 영어공부 실컷 하고,
집에서 편안한 맘으로 편히 쉬고......
물론 암환자가 되지 않고, 예전처럼 건강한 몸으로 사는 것이 백배, 천배 좋겠지만, 나름대로 좋은 점을 찾아보니 이런 좋은 부분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죽음을 코앞에 두고 내 삶을 돌아보며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이대로 죽는다 해도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술을 하고, 내 몸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죽음이라는 두 글자는 어쩌다 생각날 뿐이다.
앞으로 잘 살아낼 거라는 믿음이 점점 커지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나에게 암이라는 시련이 찾아온 것은 그동안 내 몸을 고단하게 했던 나 자신을 깨닫게 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려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100세 시대의 반을 내 맘껏 살았으니, 나머지 반은 주변도 둘러보고, 내 삶과 지인들과 이웃도 더욱더 사랑하고, 아낌없이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멋진 삶을 누릴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내 안에서 크게 크게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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