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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공부, 이래도 안되면 포기하세요 - 이지훈 -

by 짱2 2021. 11. 4.

내가 구독하고 있는 유튜버 아는 변호사의 이지훈이 공부에 관한 책을 썼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읽게 되었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그녀의 공부법이 제법 도움이 되어 하이라이트 표시하며 읽었는데, 정작 내 마음이 더 많이 옮아간 것은 공부방법이 아니라 일곱 가지 공부의 필수요소 중, 고독에 관한 부분이었다. 

 

 

 

나는 늘 외롭다고 느껴왔는데, 그 외로움이 사람때문이 아니라는 건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로움을 사람을 통해 풀어내려 했고,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더욱 외로웠다. 상대에 대한 나의 애정이 클수록 더 외로웠고, 허탈한 감정에 몸서리칠 정도였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일도 하고 있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있는데, 무엇이 나를 그토록 외롭게 만드는지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까지.  

 

몰입해 있는 사람은 혼자 있더라도 외롭지 않습니다. 공부는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혼자 있으니까 외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내가 외로운 것은 몰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어서가 아닙니다. 공부는 외로움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몰입을 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몰입하지 않는 순간 권태와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혼자 공부할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몰입해야 합니다. 외로운 이유를 사람에게서 찾지 마십시오. 

 

몰입이었구나. 맞다. 내가 무언가에 몰입해 있을때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내게 속해 있지 않았었다. 내가 집중하지 못할 때만 내 옆에 다가왔었구나. 그 외로움이란 놈이. 그렇다. 공부에 푹 빠져 지낼 때, 난 외롭지 않았다.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었다. 그러다 공부가 안되거나, 딴생각을 할 때, 외로움이 느껴졌었다. 

 

답을 찾았으니 이제 외로움이 느껴지면 더욱 몰입해야 할 때임을 깨닫고 나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 하리라. 덧없는 사람에게 손을 뻗으려 하지 않으리라. 

 

 

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 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 놓아야 했다.

우리는 우체국에서 만나는가 하면 친목회에서 만나며 매일 밤 난롯가에서 또 만난다. 우리는 너무 얽혀 살고 있어서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렸다. 조금 더 간격을 두고 만나더라도 중요하고 흉금을 터놓는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터인데도 말이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 여공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꿈속에서까지 혼자 있는 일이란 없다. 내가 사는 이곳처럼 1 제곱마일마다 한 사람이 살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사람의 가치는 피부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사람의 피부를 만져본다고 그의 가치를 아는 것은 아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소로우의 책을 원서로 군데군데 읽었는데, 이런 부분이 있었던가? 공부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었던지, 내 분량이 아니라 다른이의 분량이라 대충 넘어간 건지, 잊어버린 건지, 이렇게 좋은 부분이 있었던걸 몰랐다.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그렇다.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일뿐이다. 내 뼈를 때린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결국 아는 변호사의 말이 아니라 소로우의 말이 되는 건가? ㅎㅎ

아무튼, 내가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을 아주 간결하게 잘 표현한 말이다.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참 의미 없이 느껴졌다. 시간낭비 같았다. 왜 만나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남는 거지? 너와 나의 의미 없는 말. 서로에 대한 애정을 어느 정도 표현하고, 내가 살아온 며칠 동안의 일, 내 감정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뭐? 남의 일을 내가 알아서 뭐 할 거며, 내 일을 그들이 알아서 뭐 할 건가! 그리고 그들의 공감이란 것이 진정한 공감이기나 한 걸까? 내가 원하는 답변은 돌아오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로 둔갑해 가슴만 답답해지는데. 내 감정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어 열변을 토하며, 시간을 들여가며 열심히 이야기할수록 고구마 얹힌 듯 목이 막혀왔다. 

차라리 집에서 책을 읽으면 더욱 좋았을것을. 아니면 낮잠이라도 자던가, 산책을 했더라면 내 건강에 더 유익했을걸. 

 

 

 

시간은 한정된 자산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 한정된 시간 자원을 자기 자신을 계발하는 데 투자하십시오.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십시오. 쓰레기 같은 교제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A를 만났습니다. 다음번에 A를 만날 때 여러분은 그전보다 성장해 있어야 합니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말입니다. 그래야 그 만남이 의미가 있는 만남이며 상호 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발전해 나가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맨날 똑같은 상태에서 만나는 것은 서로를 침해하고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 뿐입니다. 

 

나는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만나왔다. 일종의 계모임도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주기적으로 만나야 된다는 이상한 룰을 스스로 만들어, 만난지 오래되면 뭔가 잘못한 듯 느껴져, 내가 먼저 연락해 만나곤 했다. 더 이상 그렇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면서 어우렁 더우렁 사는 거 아닌가 싶었다. 혼자만의 고립이 아니라 어울려 사는 것이 사회이고 사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계속 느낀 것이 바로 쓰레기 같은 교제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감정이 들었었다. 이 만남이 무슨 의미가 싶은 그런 만남. 발전이 전혀 없는 맨날 똑같은 이야기. 그건 나를 썩어 문드러지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답답하고 미쳐버릴 듯했던 것이다. 

 

 

....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람들, 그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입니다.

다시 이곳에 올 수는 있겠지만 이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고 실존하고 있는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그야말로 스쳐가는 인연입니다. 스쳐가는 인연은 '무심코' 스쳐가게 내버려 두십시오. 아무런 뜻이나 생각조차 없이 내버려 두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단련하십시오. 진정한 인연이 왔을 때 거기에 투자하십시오.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진실이 빛이 납니다.

 

너무 멋진 말이다. 스쳐가는 인연은 무심코 스쳐가게 내버려 둘 수 있도록 단련하라. 진정한 인연이 왔을 때 거기에 투자하라. 진심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난 단련해야 한다. 그리고 내 진실이 통할 사람을 만날 때까지 아껴두자. 아직은 만나지 못했음이 아쉬울뿐이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방이 배신했다고 나쁜 놈이라고 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 스쳐가는 인연에게 함부로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입니다. 아무런 결실을 맺을 수 없는 헛된 노력을 한 것입니다. 인연을 잘못 알아보고 스쳐가는 인연도 안타까워서 붙잡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모든 이른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서 일어납니다. 모든 일의 원인은 나한테 있습니다. 내가 과거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있는 겁니다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그렇습니다. 아무한테나 진실하지 마십시오. 외로운 나머지 자신을 싼값에 팔아넘기지 마십시오.

 

그동안 나는 나를 싼값에 팔아넘겼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못한 부분이고, 내가 암에 걸린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에게나 진실하느라 시간을 낭비했고, 돈을 낭비했고, 에너지를 낭비했다. 아무것에나 진실하느라 또 시간을 낭비했고, 돈을 낭비했고, 에너지를 낭비했고, 몸까지 낭비했다. 나의 외로움이 사람인 줄 알고, 사람에게 나를 싼값에 팔아넘겼고, 술과 같은 몸에 좋지 않은 물질에 또 싼값에 나를 팔아넘겼다. 그리곤 암환자가 되었다. 왜 나의 가치를 몰라봤을까? 나까짓게 뭐라고 하는 생각만이 나를 가득 채우게 내버려 두었을까? 그토록 자존감 높은 척하면서 결국 자신을 시궁창으로 몰아넣는 짓만 골라했었을까? 남편의 사랑이, 가족이 사랑이 넘침에도 왜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해봤자 소용없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거니까. 모두 경험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남았으니. 추억이라는 소중함도 남겼으니. 그러나 이제는 절대 나를 싼값에 팔아넘기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속된 말로 '나는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