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에 한 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날이다. 오늘은 검사하고, 다음 주엔 결과 들으러 이틀에 나눠 가야 한다. 담당교수가 두 분이기 때문이다. 대장암 교수, 위암 교수. 평소엔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병원에 가는 날이 다가오면 새삼스레 깨닫게 되고, 유난히 배가 많이 아픈 날에도 암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처럼 검사를 위해 식사를 하지 않고 병원 갈 시간을 기다릴 때는 더욱 그렇다.
암환자.
암 제거를 위해 위의 반을, 대장의 3분의 1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고, 6개월에 걸친 항암을 했다. 몸무게는 15킬로그램이나 빠졌었고, 현재도 예전의 몸무게보다 8킬로그램 덜 나간다. 원래 마른 체형이었는데, 지금은 겨우 40킬로그램이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니, 더 먹고 싶어도 수저를 내려놓아야 하고, 달달하고 맛있는 케이크라도 먹게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설사를 한다. 아프고, 불편하고, 괴롭고, 짜증이 나지만, 3년 동안 겪은 숱한 고통 속에서 단단해졌다. 사람은 살게 마련인가 보다. 적당히 아프면 감사하고, 통증이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생활로 돌아간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어찌 살꺼나.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살고 있지만,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은 분명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정한다. 아등바등하다가도 암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허탈해진다.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내려놓아진다. 돈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도.
직장에 나가지 않으니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다. 밤 10시엔 잠이 들고, 4시쯤 눈이 떠진다. 5시까지 7시간 정도 잠자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18시간이 나의 시간인데, 식사 준비하고, 식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등등의 집안일과 세면 등등의 잡다한 일을 하느라 6시간을 소비하니 12시간이 남는다. 새벽 루틴 2시간, 운동 1시간, 공부 7시간, 디지털 공부 2시간, 이렇게 남은 12시간을 쓴다. 빡빡한 스케줄이다. 운동 1시간을 빼면 11시간이 공부시간이다. 물론 매주 화요일은 캘리그래피 강의 들으러 나가야 하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약속도 있고, 주말은 공부하지 않으니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시간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이렇게 시간을 늘어놓은 이유는 열심히 살다가도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애쓰면서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마음 편하게 내려놓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는데, 왜 사서 고생일까? 암환자가. 정작 남편도 미래를 생각하며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나는 돈을 더 벌어야 할 것 같고, 공부를 해서 이 공부를 돈과 연결한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빡빡한 스케줄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여유 있게 운동하고, 산책하고, 사람들 만나면서 지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같은 결론을 내린다.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니, 이 일이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찾아서 또 열심히 하고 있을 거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하던 것들 그대로 하되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일로, 돈으로 연결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음먹은 그대로 14개월 동안 꾸준히 해보자. 뭔가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행복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는가! 난 지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길 위에 있으니, 암환자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묶어두지 말고, 처음 맘 그대로 가보자. 결과가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갈지는 그 결과에 맡기고, 나는 현재의 과정에 충실하자. 14개월 후, 참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참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다만 스트레스는 받지 말자. 즐겁게 공부하고, 재미있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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