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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시험 끝난 후

by 짱2 2021. 12. 5.

일요일... 성당에 갈까 했었는데... 새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코로나도 다시 확산되는 추세라, 여태 나가지도 않던 성당엘 굳이 이럴 때 나가는가 싶은 마음과 그동안 성당에 다니지 않다 보니 무척이나 게을러진 마음, 그리고 성당에 가지 않는 것이 루틴으로 굳어버린 탓에 오늘도 성당에 다녀오는 것을 그냥 마음으로부터 포기해버렸다. 매번 다음 주에는 가야지 하고는 또 그날이 되면 귀찮음이 핑계를 찾아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다음 주엔 고해성사표가 나오려나? 그러면 그것 때문에라도 다녀와야지.

 

 

어제는 기말시험이었다. 시험 끝난 후, 내가 좋아하는 언니와 함께 학교 근처의 맛집, 멋집 투어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언니의 아들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언니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계획이 틀어졌다. 시험 끝난 기념으로(물론 아직 세 과목을 더 봐야 하지만) 신나게 놀 생각이었는데. 대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언니랑 함께 가려했던 '블루보틀'이라는 카페에 일찍 가서 커피 마시며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의정부로 와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영화 두 편을 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매일 계획을 세우지만, 공부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철저하게 지켜진다. ㅎㅎ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블루보틀이라는 카페의 모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도의 카페를 보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요즘 성수쪽의 카페는 이런 창고 스타일이 유행이라니... 뭐... 그런데 커피 맛은 좋았다. 나에게는 조금 진한 느낌이라 다음에는 따뜻한 물을 살짝 더해서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도 두 편 봤다. '유체이탈자'와 '듄'. '듄'은 평이 좋아서 보게 되었는데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라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유체이탈자'는 '윤계상'이라는 예전의 아이돌 가수가 완숙한 배우로 자리 잡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잘 성장해가는 느낌을 받았고, 액션도 '듄' 보다 훨씬 좋았다. 

 

문제는 코로나로 인해 간단한 간식거리도 먹을 곳이 없다는 거다. 극장 안에서도 취식이 안되고, 학교에서도 어느 곳 하나 먹을 곳이 없었다. 휴게시설까지 모두 문을 닫아걸어놓았다. 결국 햄버거 반쪽으로 하루 반나절 이상을 보냈더니 오늘 아침 몸무게가 뚝 떨어졌다. 억지로 영점 몇 킬로그램 올려놓으면 또 이렇게 내려온다. 못 먹어서, 설사해서... 

 

오늘 새벽루틴으로 감사일기를 쓰면서, 어제 새벽 세시부터 하루 종일 바쁘고 알차게 보낸 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감사한 마음도 썼다. 건강한 사람도 힘들어할 하루의 일정이었는데, 씩씩하게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량이 부족해 어지러움증이 살짝 있었음에도 오히려 씩씩하게 걸어 다니며 잊어버리는 정신력!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예전과 똑같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열정과 힘! 도대체 나란 사람은 어디에서 이런 힘과 열정이 솟아나는 걸까? 내가 환자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망각' 때문일까?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 자기애' 때문일까? 다른 이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신경 쓰는 '체면'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의 '합'일까? 무엇이든지 나에게 긍정의 코드로 작동했음을 느낀다.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고, 어디선가 없던 힘도 솟구치니 말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자꾸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가만히 집에 있고, 가만히 누워 있고, 가만히 쉬라고 한다. 아니, 내가 똥오줌 못 가리고 기저귀 차고 있어야 하는 중증환자도 아니고, 사리판단 못하는 치매환자도 아닐진대 뭘 그리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다 너를 위해서,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참나~ 어이가 없다. 내가 환자라는 티를 내고 집에서 꼼짝 않고 누워 골골대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안심하고, 곧 나을 거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해댈 참인가? 

 

사회복지를 공부하니,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시혜를 베푼다. 그리고 자신들이 착한 일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이 부자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딱 그만큼이다.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사람들은 나를 암환자라는 틀속에 넣어두고 그 밖으로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들이 우월해지니까. 이 글을 쓰며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딱 그렇다. 홀든, 시누이들. 그리고 엄마도 있다. 엄마는 분명 나를 사랑하는 마음, 다시 아프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지만, 암환자라는 틀에 넣어두고 싶고, 내가 어린아이처럼 엄마의 품 안에 있기를 바랬다는 것도 더불어 알고 있다. 내가 다시 일어서 엄마보다 커졌을 때, 엄마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고, 나는 이런 관계가 더 좋다. 나를 애기 취급하는 엄마의 모습에 정말 화들짝 놀랐고, 끔찍했다. 그 외의 몇몇 사람들도 홀든과 시누이처럼 행동했지만, 활발히 활동하며 암을 극복해가는 내 모습에 감동하고, 박수를 보내줬다. 내가 옳았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 아닌가! 그들은 내가 그걸 해냈다는 기쁨까지 얹어서 돌려준 거다.

 

어제 하루 종일 열심히 돌아다니며 힘든 일정을 소화해 낸 나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 오늘 이렇게 글을 쓴다. 2주 후에 또 시험이 있다. 시험 끝난 후, 남편과 함께 학교 근처 맛집에서 점심 먹고, 커피 손에 들고, 겨울바다 보러 여행 갈 예정이다. 늘 가는 봉포 해변에 가서 바다가 보이는 펜션에 숙소를 정하고, 하루 종일 눈이 시리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회 한 접시 먹고 올 생각이다. 어제만큼 힘든 일정은 아닐 거다. 또 이렇게 시험 끝난 후의 보상을 누릴 생각에 2주간의 공부가 즐거울거다. 사는 게 즐겁다. 예전엔 몰랐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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