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영상을 보면 '관계의 정리'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아마도 내가 찾아보는 동영상의 알고리즘이 나에게 그런 류의 동영상을 끌어다 주어 그러겠지만 말이다.
나의 성격이 예민하고 소심하다보니,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왜 그렇게 말할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나를 왜 그렇게 대할까?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러면 에너지 소모를 하는 나 자신에 대해 또 생각한다. 과연 그렇게 에너지 소모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인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다 보면 그런 생각에 몰입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몰입이 필요한 공부에는 정작 몰입하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일에 기운 빼고 있군.
'관계의 정리'라는 말이 오늘 나에게 '훅' 하고 들어온 이유는 내가 관계하고 있는 두개의 만남 탓이리라.
하나는 7월1일 날짜로 그만둔 학원쌤들과의 관계다. 영어가 좋아서 영문학과에 편입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를 영어학원으로 끌어들인 정쌤, 그 학원의 원장쌤, 그리고 나와 같은 동급의 이쌤. 이렇게 우리 네 사람은 오랜 시간 갑과 을의 관계로, 또 동료로, 때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로 지내왔다. '직장에서 만난 사이'이다 보니 상당한 친밀감은 없을 수밖에 없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관계를 적당하게 거리를 두게 했고,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 예의를 지키게 해 주기도 했다. 한 달에 한번 회식하며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그런 시간마저 시간이 없어 늘 아쉬움을 남겼지만 오히려 그 아쉬움이 다음 회식을 기다리게 했다. 나를 포함한 네 사람 모두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난했기에 한 번도 부딪힌 적 없이 참 잘 지내왔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퇴사 통보를 받고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미움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언젠가 학원을 그만두어도 우리 네사람의 만남은 계속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주부로서, 한 사람의 인생으로 나눌 이야기가 계속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원장쌤의 연락을 기다렸고, 한 번은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영어쌤으로 또 다른 삶을 살게 해 준 정쌤에게 고마움도 표현했고, 이쌤과는 가끔 문자도 주고받았다. 나의 이런 행위는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있지 않음을 전달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6개월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원장쌤에게서 연락이 없다. 기말 시험 기간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이 방학하는 12월 말, 그리고 연말연시가 지나고, 내년 2월까지 연락이 없다면, 나는 기다림을 내려놓을 생각이다. 그건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다.
또 다른 모임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어학원에서 만난 언니와 나와 동갑이면서 학교 동창인 친구다. 물론 그녀가 나와 동창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되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6개월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매일 만나서 함께 공부하고, 수다 떨며 많은 시간을 보낸 탓에 정말 많이 정들었고, 참 좋았던 친구들이다. 학원을 그만둔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코로나를 핑계로 안 만난 지 2년 가까이 되어가고, 단톡방은 조용하다. 내가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관계를 과연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맞는 걸까? 특히 동창인 친구는 이 관계를 내려놓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나의 '내려놓지 않음'이 짜증 나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면 관계가 정리되는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한다. 굳이 내가 먼저 손을 뻗는 것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인지, 연락하는 것이 더 정겹고 인간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려놓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적절한 행동인 것인지, 점점 이기적이 되어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물론 지금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해주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면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정리할 것이다.
자주 만나야만 친구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다면 자주 만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전화, 카톡 등 연락할 꺼리는 널리고 널렸다. 마음이 없어서 연락하지 않는 것이지,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다.
20년 넘은 친구가 있다. 몇년동안 정말 소원하게 지냈다. 요즘 들어서 갑자기 다시 연락하게 되었는데, 그동안의 공백 동안 우린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 채 지냈음을 느낀다. 같은 경기도 의정부와 성남에 살고 있는데, 그녀의 직장은 강남인데 그런 거다.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언니도 강남에 살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강남으로 가고, 그녀도 나를 만나기 위해 의정부로 오고, 중간지점에서 만나 공연도 보고, 밥도 먹는다. 마음이 없는 거지, 거리, 시간은 핑계일 뿐이다.
관계에 있어서도 미니멀이 필요하다고 한다. 냉정함이 필요한가보다. 정에 이끌려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맺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본다. 가느다란 인연의 끈이 과연 필요한지 생각한다. 찐 인연에 몰입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을 더해본다. 코로나를 핑계로 나의 인연 두 개는 내려놓아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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