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이 9일 남았다. 지난주에 6과목을 한꺼번에 봤다는 한 학우의 말을 듣고, 나도 한 번에 끝내버릴껄... 하는 약간의 후회가 있었다. 세 과목씩 2주에 걸쳐서 보면, 각각의 세 과목을 2주 동안 열공해서 볼 수 있는 장점을 노린 것인데, 한 달에 걸친 긴 공부의 시간이 조금은 버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학원에 갈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도 하루에 몰아서 시험을 끝내고, 남편과 휑하니 여행을 떠날껄...
아니다. 또 그 6과목을 한꺼번에 본다고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또 열공하고 있을 터이다. 내 성격상.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먼저 '밀리의 서재'에서 찾아본다. '밀리'에 없으면 그다음에는 내가 잘 가는 의정부 정보도서관에서 찾아본다. 도서관에도 없으면 메모지에 적어두고 가끔씩 도서관 사이트에 방문에 그 책이 입고됐는지 찾아본다. 대체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서관에 들어오고, 어떤 책들은 기어코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으면 인터넷 서점을 통해 직접 구입해서 읽는다. 가끔은 읽고 싶은 책이 도서관에 있기는 한데, 예약이 2명, 3명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예약대기를 해둔다. 잊어버리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자로 소식을 전해온다. 예약한 책 대출하라고.
그렇게 찾아온 책이, 시험공부하느라 바쁜 요즘에야 나에게 전달된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이었다. 왜 하필 공부할 때 나에게 건네진건지, 그것도 내 뒤로 예약한 사람이 있어서 대출 연장이 되지 않아 딱 2주의 시간만 주어졌다. 어쨌든지 시간 안에 공부와 병행하며 바삐 읽자고 마음먹었는데, 세상에나~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롭고, 가슴을 쫀쫀하게 하는지,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시험공부만 아니면 하루, 이틀에 걸쳐 뚝딱 읽어버리고 싶었는데, 공부를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예전에는 공부하다가 졸리면 자거나, 집안일을 해서 잠을 깨우곤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크고, 책이 재미있던지, 공부하다가 졸리면 바로 '완전한 행복'을 읽었다. 책을 보다가 지루하거나 졸리면 책과는 동떨어진 다른 행위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또다시 책을 본다는 것이 좀 특이한 일이기는 한데, 어이없게도 졸음이 달아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환기'도 되는 느낌이었다.
또 어이없게도 소녀시절, 한때 '소설가'를 꿈꾸었던 자칭 '문학소녀'였던 내가 이토록 흥미롭게 소설을 읽은 게 언제였던가 싶었다. '존 그리샴'의 '팰리칸 브리프'였나? 아님 조금 최근으로 와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였던가?
2주라는 시간 안에 다 읽고 도서관에 돌려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읽어버리고 반납했다. 정말 흥미로워서 빨리 끝을 보고 싶었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스포를 하고 싶지 않아 책 뒷부분을 먼저 읽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싶은걸 정말 억지로 참았다), 시험 보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시험공부에 몰입해야 하기에, 책을 빨리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덕분에 엉덩이가 무거운, 엉덩이만 무거운(책상 앞에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기는 한데, 공부의 몰입도는 전혀 없는) 나에게, 공부와 재미를 번갈아 느끼며 공부의 몰입도를 조금 더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공부, 공부, 공부가 아니라, 공부, 재미있는 책 읽기, 공부, 재미있는 책 읽기의 순으로 나의 머리를 환기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 거다. 내 경우는 공부하다가 다른 일을 하고 다시 책상 앞으로 오면 공부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아~ 어쩌란 거냐~ ㅠ
스스로 위안을 하자면 내가 '암환자'이기 때문에 체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체력 싸움이다. 그런데 공부할 때 체력이 가장 약해진다. '활동'은 어쨌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움직이게 된다. 내가 밖에서 활동을 하는데, 체력이 떨어진다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잘 수도 없지 않은가!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그러나 공부할 때는 주로 집이고, 체력이 떨어져 공부의 능률이 오르지 않으면 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약해진 체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고, 그런 나를 '쉼'으로 내려놓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공부가 뭐 죽고 살 일이라고' 하면서.
공부와 독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의 방법이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걱정의 말들을 늘어놓는다. 머리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 '머리 씀'이 암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가보다. 공부와 독서가 '휴식'인지, '암 유발자'인지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내게 행복을 준다면 '휴식'에 '방점'을 찍으련다.
기말시험이 9일 남았다. 9일 동안 공부하느라 머리가 지끈 거리기도 하겠지만,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는 것, 해야 할 공부가 있다는 것,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 그리고 공부가 즐겁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