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카페 베스트 10, 파주 카페 베스트 10 등등 이쁘고 갬성 자극하는 카페에 대한 정보가 엄청 넘쳐난다. 카페뿐이랴. 겨울에 꼭 가봐야 할 장소, 단풍이 가장 예쁜 곳, 서울에서 안 가보면 후회할 장소 등등 정보는 넘치고 또 넘친다. 이런 정보에 치여 주말이면 어딘가로 향하게 만들고, 맛집을 찾아 순례를 하게 되고, 집에 처박혀 공부를 하거나 TV를 보는 날은 뭔가 뒤쳐진 느낌이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느낌이 들곤 한다. 맛집, 멋집,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장소에 다녀오고,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행복한 척하는 삶, 어쩌면 본인도 행복하다 착각하며 사는 삶.
10살 많은 언니, 두 살 어린 동생과 함께하는 모임이 있다. 두 살 어린 동생이 항상 차를 타고 다니고, 카페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10살 많은 언니는 사정상 여행을 잘 다니지 못한다. 운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히려 운전을 좋아하고 베스트 드라이버인 두 살 어린 동생은 10살 많은 언니가 콧바람이라도 쏘였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두세 달에 한번 만나는 우리 모임은 만나는 날이 드라이브하는 날이고, 맛집, 멋집을 찾아가는 날이다. 세 사람이 회비를 내고, 그 돈으로 예쁜 카페에 가서 향기로운 커피에 취하고, 예쁘고 달콤한 케잌을 혀끝에 녹여가며 먹으면서, 수다를 떨면, 이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하다.
나보다 네 살 많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니가 있다. 그 언니와는 서울에 있는 맛집, 멋집을 찾아다닌다. 좋은 공연도 보러 다닌다. 오래전부터 해온 모임이라, 둘만의 모임이지만, 우리나라의 유명한 뮤지컬, 공연 등 안 본 게 없을 정도다. 또 대모님과도 같은 의도의 모임을 얼마 전에 시작했다. 대모님이 사는 게 뭐 별거 있느냐며, 나에게 제안을 했고, 나는 이미 같은 모임이 하나 있음에도 조금 덜 다닐 생각으로 오케이 해버렸다.
몇 년 동안 좋은 곳, 맛집, 멋집 찾아다녔음에도 늘 새로운 장소는 또 올라오고, 여전히 가보지 못한 곳도 많다. 마치 풀어야 할 숙제처럼 이번 주말에 가야지, 다음 주말에 가야지 마음먹는다.
내가 가본 곳, 먹은 음식은 사진으로 찍어 카톡 대문을 돌아가며 바꿔댄다. '나 이렇게 멋진 곳, 매일 찾아다닌다' 자랑하며, 살아있음을 내색한다. 누군가 내 사진에 부러워하기를 바라고,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다음 주말에 계획된 우리 세 식구 겨울여행이 있어, 지난 2주간은 남편과 함께 양평의 카페를 다녀왔다. 내가 양평을 선택한 것은 북한강이 보이기 때문이다. 산과 들도 좋지만, 강을 마주한 카페에 앉아 있으면 황홀한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두 번의 카페 나들이가 시시했다. 물론 남편이 한몫했다. 빵을 함께 고르지도 못하고, 혼자 떡하니 앉아서 내가 골라다 주는 빵을 맛없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난 이미 흥미를 잃었다. 앞에 언급한 세명의 모임은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환호성, 감탄으로 무장을 한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업되고, 분위기에 취해 커피도 맛있고, 빵도 맛있고, 그 장소는 정말 멋진 장소,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된다. 그런데 시큰둥한 남편을 보노라니 커피도 별로고, 빵도 별로고, 돈까지 아까워진다.
이 두 번의 남편과의 카페 나들이 중간에 바로 그 세명의 모임에서도 파주의 유명한 카페에 가게 되었다. 왜 그렇지? 왜 또 시시한 거지? 아무것도 아닌 장소에 덩그마니 놓인 건물 하나. 빵은 왜 이렇게 비쌀까?
얼마 전, 다산 생태공원 근처에 멋진 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지인에게 하고 있었는데, 그 지인이 카페에 갈 필요 없다고, 그저 의자 하나 가지고 가서 다산 생태공원에 앉아 있다 오면 정말 좋다고 하는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 또한 그런 장소가 있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 축령산 휴양림. 나는 입장료도 면제, 주차비도 면제라 남편의 입장료 1천 원만 내면, 하루 종일 나무 그늘 아래에 편하게 자리 잡고 누워, 준비해 간 음식 먹으며 놀다 올 수 있다. 돈도 들지 않고, 공기도 좋은 곳. 카페에 들어가 있는 것보다 훨씬 신선하고, 건강하고, 돈도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사람들이 만든 상업적인 틀에 갇혀버린 건 아닌지. 꼭 유명한 곳에 가야만 하고, 프사 사진에 올일 사진이 필요하고,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지..
남편과 저녁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동안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사실 다 별거 아니지 않아? 누구와 함께 있느냐,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내느냐의 문제이지, 그곳이 해외인지, 명소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한 거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행복한 거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그저 좋을 뿐인 거지. 내가 있는 공간,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고, 내 진정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상업적인 공간에 같이 들어가 북적이며 비싼 음식 먹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그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음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에서 만나게 되는 음식은 암환자인 나에게 결코 좋은 음식이 아니다. 친구들 만나 먹게 되는 외식음식으로도 충분한데, 남편과도 또 주말마다 나가 그런 음식을 찾는다면 내 건강은 어떻게 할 건가?
올해의 계획 중 하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는 것도 있다. 작년 내내, 사람들과 만나 의미 없는 말을 나누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었다. 어릴 때는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와 꼭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오히려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 하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큰 모임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었고, 나 또한 그런 모임도 가졌었다. 시간이 흘러, 요즘은 다시 사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는데, 사람들은 나와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엔 이젠 뭔가 부족하다. 내가 그들보다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해두고 싶다. 그런데 대화가 안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식상하고,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나는 감동받고 싶고, 나의 심연을 흔들어줄 멘토가 필요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 곁에 두 명 정도가 있지만, 자주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자주 만난다면 나는 또 그들에게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이런 나에게 감동을 주고, 나의 심연을 흔들어주는 것이 있다. 바로 책이다. 맛집, 멋집에서, 또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것도 아닌 인테리어인데, 내 형편에 맞지도 않는 비싼 돈을 들여가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얘기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려 에너지를 소비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감동시키고, 나의 심연을 흔들어 깨워 진정한 나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책을 읽는 것을 택하려 한다.
새해 계획을 하며 사람 만나는 것을 자제하고, 나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나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책 100권을 읽고, 남편과 진정한 의미의 여행을 만들어가자는 다짐을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이런 계획에 조금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큰 틀은 변하지 않고, 유지할 생각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즐길 수 있는 것,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아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올해는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3년간 암경험자로 살아오면서 많이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아직 체력 부족으로 힘든 날도 있지만, 이 정도면 감사한 마음 가득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씩 깨닫고, 하나씩 해나가는 중이다. 그중에 깨닫게 된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을 갖자는 것. 올 한 해 그런 삶을 살아보자. 2022년 마지막 날, 변화한 내 모습에 기대가 된다. 난 늘 내가 기대된다. 그래서 내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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