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에게 암환자가 집에서 쉬지 뭘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혀를 찰 때,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을 사람이고, 꿈이 없는 나는 이미 죽은 거와 다름없다고 열변을 토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건강이 우선이라며 내 몸부터 챙기라고 걱정을 한다. 난 그 걱정이 정말 너무나 싫다. 내가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면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왜 그러냐며 또 이해를 하지 못한다.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두고 말장난하는 느낌이다. 나를 생각한다는데, 내 건강을 걱정한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내 걱정을 하는 사람이 싫다고 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나의 외숙모는 본인이 어딘가 아플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못지않게 일하며 돈을 벌고 있다. 연봉이 1억이니 쉽게 일을 내려놓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녀가 버는 돈으로 자식들과 친동생까지 부양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나의 외삼촌, 즉 남편까지 부양한다. 집 청소 등은 외삼촌이 해주는 것 같지만, 매일 반찬을 만드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어딘가 몸이 안 좋다는 결과가 나올까 두려워 그녀는 건강검진도 안 한다고 했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이겠지만, 가족을 챙기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난 그런 그녀가 충분히 이해된다. 왜냐하면 나도 그와 비슷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외숙모의 꿈은 아마도 가족이 행복한거,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사는 것 일거다. 이런 부분에선 나의 꿈도 그녀와 다르지 않을 것이나 나에겐 늘 발전하는 나를 보고 싶은 꿈이 있다. 어제보다 성장한 나, 오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나를 꿈꾼다. 암경험자라는 이유로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웅크리고 있고 싶지 않다. 난 늘 꿈꾸고 도전하고 발전해왔다.
그런데 오늘 내 걱정을 해준다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아주 적절한 말을 들었다.
"삶의 의미는 큰게 아니다. 삶의 의미는 루틴을 지키는 거다. 일상의 프레임, 디폴트, 그 루틴을 살아내는 게 삶의 의미다. 가족과 밥 먹고, 일하고, 잠자고, 사랑하는 일"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매일 꿈꾸고 도전하고 발전하는것은 나의 루틴이다. 내 삶의 의미다. 새벽에 눈뜨고, 이불을 정리하고, 공부하고,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하고, 일을 하는 것. 이게 내 루틴이고, 일상이고, 내 삶의 의미인데, 건강이 먼저라며 쉬라고 하니, 그 '쉼'을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쉼'일까? 그들의 루틴에서 '쉼'은 TV를 보고, 큰 대자로 누워 잠을 자고, 멍 때리는 것이 '쉼'일 테지만, 나의 루틴에서 '쉼'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공부를 하는 것이 '쉼'이다. 만약 그들이 암환자라면, 그들은 TV를 보고, 큰 대자로 누워 잠을 자고, 멍때리다가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공부를 하다가 죽음을 맞이할거다. 누가 더 멋진가! 당연히 후자가 더 멋지지 않은가! 멋짐의 정도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다가 죽으면 되는 거고, 나는 나의 삶을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걱정한다는 핑계로 내 삶의 방식을 선을 넘어 들어와 간섭할 이유는 없다. 한마디로 건방진 거고, 내가 암경험자라는 이유로 내 앞에서 잘난척하는 것일 뿐이다.
오늘 명쾌한 진리, 루틴의 또다른 의미를 깨달으며 그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생긴 것에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내가 왜 이토록 열심히 살려고 하는지에 대한 해석도 가능해져서 참 기쁘다. 나는 그저 일상의 삶을, 루틴을 살아내고 싶은 사람인 거다. 욕심도 아니고, 암환자가 하기에 벅찬 과함도 아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삶이 이것을 뒷받침하지 않는가! 나는 암환자라고 그 자리에 멈추지 않았다. 예전과 똑같이, 아니 예전보다 더 열심히 나아갔다. 열심히 나아갈 수 있었던것은 내가 암환자라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열망이 아니라 술을 끊었기 때문에 더 많이 확보된 시간의 도움이다.
가끔은 어지럽다. 기운이 없다. 그러나 암수술을 한 후유증이니, 내가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흔들릴 이유가 없다.
앞으로 내 건강을 걱정하며 쉬엄쉬엄 하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나의 루틴을 살 뿐이라고 말해줄 테다. 내 루틴의 '쉼'은 독서와 음악, 사색, 공부라고. 그리고 내 루틴의 즐거움은 '일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일용할 양식을 살 돈'이라고.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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