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인들은 내가 암환자기 되기 전의 모습부터, 암환자가 된 모습, 그리고 그 이후의 내 삶을 보았다. 나 못지않게 놀랐을 것이고, 내 앞에서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 주춤거렸을 거라고 예상되고도 남는다. 그들은 그렇게 암환자가 된 나에게 익숙해졌지만, 곧바로 암환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공부에 빠진 내 모습에 더더욱 혼란을 느낀듯했다. 공부 왜 하느냐, 건강을 챙겨라, 쉬어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건네는 그들의 걱정 어린 말들은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암환자는, 통증을 느끼는 사람은, 무조건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줄 아는 그들... 아마 나도 나 자신이 암환자가 되지 않았다면, 나처럼 공부하는 암환자를 이상한 사람 보듯 했을 거다.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 돌이켜봐도 마찬가지 마음은, 난 공부했을 거다.
지인들은 이제 이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들의 깊은 내면은 아직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려니 생각한다. 그러나 새롭게 나를 만나는 사람은 또 이야기한다. 적당히 공부하고 건강을 챙기라고. 아마도 그들은 뭔가 말을 해줘야할거 같은데, 생각나는 말이 그것뿐인가 보다. 나에게는 차라리 대단하다, 잘하고 있다. 멋지다 등의 말을 해주는 것이 더 위로가 되고 힘이 될 텐데 말이다.
But,,,,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엄마다. 나는 엄마에게 수없이 이야기 해 왔다. 공부가 좋다고. 힘들지 않다고. 매일 누워만 있을 순 없지 않으냐고. 하루 종일 운동만 할 순 없지 않으냐고. 그러나 공부하고 있는 나를 보면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저러다 다시 아프게 될 수 있다는 느낌이 엄마를 힘들게 하는 모양이다.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미쳐버릴 거 같았다. 같은 말의 반복. 지침... 네네... 하면서 넘길 수도 있는데, 선천적으로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도 잘 못하는지라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엄마에게 다시 여러 번 말했다. 그런 말 지겹다고.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알아들은 듯 한 엄마는 한동안 조심하다가 다시 제자리. 물론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를 사랑하고. 그러나 엄마와 나는 참 많이 다르고, 그런 엄마는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한다. 이것도 참 딜레마다. ㅎ
나를 가장 힘들고 짜증나게 했던 사람은 엄마와 더불어 홀든이었다. 나의 공부에 대해 '공부 좀 그만하라'며 다그치듯이 이야기했고, 나의 병원 의심증을 탓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주장이다. 난 나의 주장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혼자만 알고 있으면 되는데 나에게 강요하던가, 타이르듯이 말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내 걱정을 하는 것이라 말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날 생각했다면 그냥 내버려 뒀어야 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고집했을 뿐이고, 자기의 옮음을 주장하려 했을 뿐이다. 참으로 성숙하지 못한 두 사람이 서로의 똥이 굵다고 싸운 꼴이다. 만약 그가 어른 남자로서 좀 더 성숙했다면 그냥 나를 놔두었어야 하는 것을... 왜냐하면 난 환자고, 자기 와이프도 아니니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그를 멀리했다. 물론 우린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는 나를 만나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자주 주장하려 한다. 그러면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멀리 보내버린다. 참 구제불능이다.
문제는... 내가 열심히 살다가도 몸이 아프거나 기운이 떨어지는 날, 그들의 말이 내 안으로 훅~ 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아픈데 무슨 공부야!', '그냥 운동이나 하고, 살림이나 해!' 나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해버린다. 물론 통증이 가시고, 기운을 다시 차리면 나는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나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그런 말 따위에 내가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어차피 다시 공부 모드로 돌아온다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도록 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들, MKYU관련해서 만나는 친구들은 내게 힘을 주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멋진 삶을 보면 내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암환자라고 해서 내 꿈을 내려놓을 이유가 없음을 더더욱 깨닫게 해 준다.
나의 딜레마...
꿈꾸고, 목표를 갖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나.
없던 나를 없던 시간에 보내면 없던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명품조언에 꼭 맞는 삶을 살아가는 나.
그런 나에게 '통증'은, '기운없음(주기적인 육체적 무기력증)'은 그런 꿈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냥 쉬라고 속삭인다. 어쩌면 후자가 옳을 수도 있다. 아니 옳고 그름은 없다. 나중에 내가 알게 될, 그러나 지금은 모르는 결론이 언젠가 옳았을지, 틀렸을지, 아니면 그도저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말해주겠지. 이렇듯,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는 그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누워있고, 텔레비전이나 보고, 살겠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일이어서야 할까? 독서하면서 철학을 생각하고, 나의 미래를 꿈꿔보고, 영어 공부하면서 해외여행 가서 영어로 유창하게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나를 상상하면 안 되는 걸까? 어느 삶이 더 멋진 삶일까?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내가 암환자라고 해서 보통의 사람들보다 먼저 죽을까? 사고사도 얼마나 많은데,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면 나의 딜레마는 더이상 딜레마가 아니다. 결론은 이미 내려졌으니. 다만, 내가 통증을 느끼고, 무기력증이 찾아올 때, 그들의 말을 떠올리지 않고, 그저 그 상황만 이겨낼 수 있도록 환경을, 정신을 만들면 되는 거다. 어떻게? 건강한 삶으로, 건강한 정신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계속 그런다면 멀리하고.
엄마도 예외는 아니다. 계속 힘들어서 어쩌니... 이런 말을 한다면, 그 말때문에 엄마를 안 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할 거다. 그리고 엄마는 나와 정말 맞지 않아서, 엄마와 나의 관계는 정리가 필요하다. 엄마가 싫은 게 아니라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에,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적절한 나의 액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한번 정리하자.
오늘도 나는 역시 꿈을 이야기한다. 꿈이 없는 나는 정말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 꿈꾸자! 멋지게 꿈의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보자. 내일 죽더라도, 오늘 쓰러지더라도 나는 날개를 활짝 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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