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일상

천천히 가자

by 짱2 2023. 3. 23.

잘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과 체력의 한계,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는 어리바리함.(일을 시작하면 느끼는...) 이런 것들의 혼합으로 매일매일이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마음이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일을 한다고 안 될 일이 될 리도 없고, 내가 갑자기 슈퍼맨처럼 모든 일을 처리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럴 능력도 에너지도 없다. 어쩌면 그럴 능력을 내 보아도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럴 에너지는 더더구나 더욱더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끌어모아가며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이 간절히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3년 가까이 5년 다이어리를 쓰다 보니, 작년 이맘때, 내가 얼마나 '코딩'일에 진심이었는지 대해 쓰여 있음을 읽게 되었다. 늦은 시간의 줌 강의도 열심히 듣고, 시험도 열심히 공부해서 보고, 직장도 열심히 나가고, 프리젠테이션도 열심히 준비하고... 이제 나에게 취직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신이 나서 일을 했으나, 젊은 사람을 원하는 시스템에 스스로 물러나며 많은 상처를 입었었다. 그리고 그다음 기회로 생각했었던 일마저 나의 계산 착오로, 또는 순수함으로 놓치게 되면서, 나는 이제 일을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라고 까지 생각했다. '그래, 건강이나 신경 쓰자' 했다. 그러다 디지털 튜터를 하게 되었고, 사회복지사 1급 시험에 도전에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 시작하는 일...

 

돌이켜보면, 작년에 코딩을 하게 되었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면, 지금 시작하게 된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이 일을 하기 위해 이토록 돌고 돌아 왔는가 싶다. 나에게 이 일을 제안한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만큼 고맙고, 간절한 일인데, 나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이제야 찾았다. 그것은 방향!!! 방향을 찾지 못해서이다. 사방으로 뜷린 길에서, 이 길인지, 저 길인지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사방이 꽉 막힌, 내 몸 하나 들어가 서 있는 박스 안과 같은 느낌, 또는 반대로 360도 빙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느낌. 어딘가로 가면 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뭔지 몰라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래서 차라리 움직이고 싶지 않은, 체력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이 드는 그런 느낌...

 

예전의 일은 지도자가 앞으로 가면서 따라오라고 하니,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나의 성취를 기뻐하며 희망이 보였는데, 또는 못하면 다시 잘하리라 마음먹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곳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해서 일을 알려주지 않는가 싶어 스스로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욕심은 앞서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니 막막하기만 하고, 내가 이렇게 능력이 없는가 싶어 스스로 좌절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생기고, 에너지 소모도 많아 차라리 하지 말자가 되어버렸다. 이건 누구의 잘못인가?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디서 잘못되었는가이다. 첫 번째는 나의 적극적이지 못함이 문제일 것이고, 두 번째는 지도자의 잘못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우선순위를 지도자에게 두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나의 결함이 분명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나의 잘못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나의 지도자가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었을지, 나의 능력에 대한 자신의 나름의 평가 덕분이었을지, 또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일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것이다. 내가 원했던 것. 나는 이곳의 일을 잘 모른다. 이곳의 흐름, 기계들의 조작 법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학생들의 이름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오로지 영어학원 강사였던, 그리고 컴퓨터 조금 다룰 줄 안다는 것 외에, 내가 이 학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지시를 내리고, 나는 그 지시를 따라가면서 배워나가고, 그 배움에서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더 찾아가며, 그 지점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부터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했고, 어제는 더욱더 신이 나서 일을 했다. 월요일에는 내가 먼저 무얼 할지 물어보았고, 그녀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조금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어제는 적극적으로 일을 알려 주면서, 기분도 좋아 보이니, '을'인 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하루가 바쁘게 흘러가니 '보람찬 하루 일을 끝내고'라는 마음도 들고, 내일은 좀 더 일찍 출근해서 이것저것 미리 해두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게 된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시작점이 어디이든지,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 찾아가며 야무지게 해내면 될 일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흡수하려고 하면 탈이 날 수 밖에 없으니, 하나씩 차곡차곡 풀어나가자. 오래가려면 스트레스 받지 않아야 한다. 논술 쪽은 시간이 흐르면 그쪽에서 알아서 내려놓을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천천히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