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친구 되기 힘들어."
어릴 때는 친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나와 맞지 않는 친구, 나를 실망시키는 친구가 있어서 하소연 했더니,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작가 '고정욱'의 책, '나에게 나다움을 주기로 했다'에 이렇게 쓰여있다.
나의 어릴 적 친구들은 이제 없다. 다섯살부터 열 살까지 신나게 뛰어놀던 춘천의 수줍음 많던, 그러나 폴짝폴짝 뛰놀던 그때의 친구들은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자연스럽게 이별했고, 초등학교부터 사귀었던 학교 때 친구들 중 남아있는 친구는 중학교 2학년 때의 친구 단 한 명만 남아있으나, 신혼 때 가까이 지내다 지금은 결이 맞지 않아 거의 만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시 어릴 때 친구는 오랜만에 연락해도 좋다. 조만간 또 만날 생각이지만 나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며 나눌 친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결국, 현재의 나에게 남은 친구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나이도 다양하고, 남녀의 구분도 없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나고 있기도 하니, 나의 사람에 대한 편견은 없음을 보여준다. 다만, 성장하는 사람,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큰 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함께 하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 사람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나이지만, 그런 사람과의 인연의 끈을 조금씩 끊어 낼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굳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친구 되기 힘들다는 말에 조금 힘이 생겼다.
그 또는 그녀가 성장하는 사람이든지, 그렇지않은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나만 성장하면 되겠지만, 그도 그렇지 않은 것이 그 또는 그녀가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면 나의 성장을 위한 노력을 응원해 주기는커녕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고, 그렇잖아도 힘들게 노력하면서 스스로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헤매고 있을 때 힘을 쏙 빼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또는 그녀가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라면,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그 또는 그의 삶 자체가 나에게 자극이 되고 힘이 되기에, 따로 말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내 삶의 박차를 가하게 된다. 즉, 윈윈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나는 위장의 반을 절제했고, 대장의 3분의 1을 절제했다. 사람은 먹어야 사는데, 매일이 먹는 것과의 싸움이다. 먹다가 덤핑으로 고생하고, 먹은것이 잘못돼 수시로 설사하고, 식후의 덤핑증상으로 저혈당 증세가 수시로 와서 길을 걷지 못할 지경이거나,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배가 아프기도 하고, 두통까지 몰려와 늘 예민하고, 신경질적이 될 때도 있다. 하루 세끼의 식사가 아니라 하루종일 먹는 생활이니, 이런 증상은 수시로 찾아와 나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고, 때로는 아주 잠시지만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내 건강에 대한 걱정은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하고, 걱정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와 무서울 때조차 있음을 말로 해 무엇하랴. 다만 스스로 생각하고 접어둘 뿐.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하기만하면 건강을 생각하라고 마치 대단히 걱정을 해주는 것처럼 입을 나불거린다(정말 이 표현밖에 쓰고 싶지 않다). 내가 그런 말 하는 것이 정말 싫다고 말하면 '다 네 생각해서, 정말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또 나불거린다. 그럴까? 그 식상한 말. 정말 내 생각을 해서 하는 말일까? 아니다. 달리 말을 할 줄 몰라서 하는 말에 불과하다. 잘하고 있다고, 건강해 보인다고, 목소리 좋다고 그냥 좋다는 말 한마디 더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들은 그런 말이 아니라 내가 암환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침대에 누워서 구토나 하고 있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더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놀라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것뿐이다.
만약 내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밤새 지치도록 놀고,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면, 그때는 건강을 생각하라고 말 해주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 그들보다 훨씬 멋지게, 신나게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에게 건강을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멋지다고 엄지척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나에게 건강을 생각하라고 한다면 도대체 나에게 뭘 하라고 하는 걸까? 하던걸 멈추라는 말인가? 공부하지 말고, 일하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책도 읽지 말고, 뭐 배우러 다니지도 말고, 침대에만 누워있으라고?
그러나 성장하는 친구들은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건강은 그들이나 나나 스스로 알아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건강을 챙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축하해주고, 성장하는 과정을 응원해 주고, 좌절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사는 것 그 자체가 엘돈핀 도는 삶인데, 그것이 나를 살려내고 있는데, 그리고 내일 죽어도 나는 그런 삶을 살 건데, 왜 자꾸 건강을 생각하라고 하는 걸까? 자기들이 뭔데? 내가 그들더러 반복해서 건강을 생각하라고 하면 그들은 좋을까?
엄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엄마니까 그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배운것이 거기까지라서 그런 거다. 엄마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 딸 정말 잘하고 있다'라면서 응원해 줄 것이다. 우리 딸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엄마가 응원한다고, 멋지다고, 그래서 우리 딸이 뭐든 할 수 있도록 엄마가 반찬도 해다 주는 거라고 그렇게 말할 거다. 그러나 나의 엄마도 성장하는 삶을 사는 분이 아니시다. 그냥 막연히 내 건강 걱정만 한다. 그 누구보다 내 건강 걱정만 한다. 사람들은 엄마니까 그런 것이고 그래서 이해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을 5년 동안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젠 지겹다 못해 화가 난다. 나도 안다. 내 성격도 어지간히 못됐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엄마의 '반복 걱정'이 정말 듣기 싫다. 가장 기운 빠진다. 그러지 말라고 부탁을 해도 엄마에게 들려오는 말은 걱정, 걱정, 걱정.... 걱정이라는 말을 계속하면 걱정할 일이 자꾸 생기니 그만하라고 해도 또 걱정, 걱정, 걱정... 에효~~ 엄마의 걱정이라는 말에 질려서 다른 사람의 걱정타령을 들으면 더 화가 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난 성장하는 사람이 좋다.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좋다. 나의 성장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성장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다. 성장하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과는 인연을 멀리 할 생각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에 좋다는 결론을 내린 결과다. 미안하지만 엄마도 조금 멀리하는 중이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 효도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나의 기운을 빠지게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의 건강에 좋다는 결론. 물론, 엄마에겐 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계속 잘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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