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아주 가끔은 이 숨을 스스로 끊을 수만 있다면 끊어내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배의 통증, 설사, 그리고 함께 밀려오는 무기력감... 반복이 주는 무감각이 반란을 일으키기라도 하듯, 더 이상 무감각은 안된다는 듯이 무척이나 예민해진 내 몸과 맘... 죽을 때까지 이렇게 아파야 하는가 싶고, 그토록이나 꿈을 꾸는 삶을 추구하는 내가 미래엔들 무엇이 있을까 싶어져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낼 만큼 강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절대 그럴 수도 없는 사람이면서 말이다.
갑자기 강미가 생각난다. 중학생 때부터 자신의 목숨을 끊어내려 부단히도 애쓰던 그녀는 결국 40대에 모진 목숨을 끊어내고야 말았다. 슬펐지만 생각보다 많이 슬프지 않았음은 그녀가 늘 죽음과 가깝다고 생각했던 탓도 있으리라. 그녀는 항상 약을 먹었고, 누군가에게 발견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가 다시 살아났고,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은 술이 부른 용기였으며, 약이 아닌 자신의 목을 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렇게라도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모질게도 살고 싶었던 마음을 죽음과 바꾼 그녀의 강한 모짊에 나는 단지 욕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도 사는 것이 어찌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분명 그건 술이 부른 용기였으리라. 저승에 가서 술이 깬 후에 그녀는 분명 후회했으리라.
친구의 죽음을 '어리석음'이라 명명하면서도 왜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아주 가끔이지만 꺼내들까? 내 안의 그 무엇이 나를 '죽음'과 연관 짓게 하는 걸까? 아마도 '통증'이 두려웠으리라. 지금도 주기적으로 통증을 느끼는데, 60이 되고, 70이 되고, 80이 되면 노화에 얹어진 그 통증이 얼마나 힘들까? 미리부터 겁나서 그런 것이리라.
그러다 생각을 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해서 무엇하나? 십대때, 서른 살, 상상이나 되었던가? 차라리 죽겠다고 했던 그 나이가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얼마나 찬란하고 멋진 나이인지 알게 되었듯이, 80이 아니라 90, 100세가 되어도 멋진 나이일 수 있음인데, 가보지 않은 길은 설레는 길일진대 알지도 못할 고통을 미리 끌어다가 죽음과 연관 지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어리석고 흉측한 일인가!
봄날의 햇빛 따스한 도로 위를 나의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이 휘날리면서 달리는 내 차위로 쏟아져 내리던 그날,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행복에 겨웠고, 초록이 짙어지는 초여름의 햇살 뜨거운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출근하면서 또 얼마나 행복했던가! 덤으로 돈까지 받는다니 축복이구나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 가득했었는데, 밴댕이 속알딱지 만한 내 마음에, 원장의 월급 계산법이, 원장의 자기 옹호적인 발언이 무척이나 거슬렸었다. 그러다 축복과도 같은 그날들의 행복감과 오버랩되면서, 한 달의 계산 차이쯤에, 그깟 자기 옹호적인 발언 한번 한 것에 마음을 다치고,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짓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이 들고, 건강하지 않은 나에게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하자던 그 마음은 어디로 내다 버리고, 그깟 서로 엇갈린 한 달의 월급 계산법 때문에 서운한 마음을 키우다니... 나에게 못되게 굴고, 악담을 수시로 날리는 것도 아니고, 내 눈치 보면서 겨우 한마디 한 것을 뭐 그리 대단한 마음 상함이라고 아름다운 날들이고, 원장도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아름다운 한 사람인 거고, 자기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고, 가족들 건사하면서 살아내고 있는 것이고, 학원운영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사람인 것을, 내 잣대로 판단하고, 단죄하다니.... 내가 무엇이관데...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이고, 살아있음 그 자체가 축복인 거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미래를 꿈꾸며 매일을 살아내는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지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 입에 넣으며 그 풍미에 감탄하고, 예쁜 옷 입으며 나의 잘남을 뽐내고, 편안한 침대에 몸 누이면서 쉴 곳이 있음에 감사한다. 행복에 겨워 그 고마움을 망각하고, 가진 것이 너무 많아 그 귀함을 잊으니 참으로 인간이란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지금의 서운함이 오히려 나를 더 성장하게 할 수도 있음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자. 일이 되어감은 나의 몫이 아니라 하느님의 결과물일 뿐. 나를 위해 준비한 큰 것이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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