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경험해 온, 온몸으로 느껴온 감각 같은 것일까? 나에게만 느껴지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느끼겠지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 그런 동물적인 감각 같은 것이 있다. 사계절을 느끼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특히 여름이 내게 그렇다. 봄은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해지는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온 산과 들이 연초록의 물기와 색을 머금으며 꽃들을 피워내니 누구나 봄소식을 느끼게 된다. 가을도 마찬가지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한결 시원해진 바람과 하나씩, 둘씩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에, 조금씩 붉어지는 나뭇잎의 색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겨울이야 뭐 말할 것도 없다.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한기가 들고, 불쑥 눈을 내린다. 그렇게 우리는 계절을 온몸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낀다. 그런데 내게 여름은 그저 더워진다는 느낌으로는 여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엔 부족하다. 이미 봄마저도 더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더워졌기 때문이겠다. 나에게 여름은 정말 동물적 감각 바로 그것이다. 코끝에 느껴지는 냄새, 온몸이 알아채는 기운, 소리...
6월을 지나 7월도 말일로 접어들어가는 오늘에서야 나는 비로소 여름이라는 것을 느낀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 더운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퇴약볕이 내려쬐는 넓은 대로변의 불타는 듯한 열기는 상상만 해도 지치게 했고, 하얀 피부를 지키려는 나의 열망은 작열하는 태양이 밉기까지 했다. 불편한 발을 가진 탓에 물놀이를 할 수 없는 처지인 내게 여름철 즐거운 물놀이는 나의 아픔을 일깨워주는 악당이고, 샌들은 커녕 꽁꽁 싸매듯 신고 또 신은 양말 등등으로 나의 여름은 더위와의 싸움이다. 신발은 정말 전쟁과도 같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나의 발은 보호대상이 되기에 나의 스트레스는 하늘을 찌르고, 늘 공기와 차단된 내 발은 여름이면 습진이 생긴다. 화장한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이 싫고, 유독 등으로 땀이 흘러내리는 체질이라 고운 옷차림에 등 쪽으로 젖어있는 추한 모습이 될까 신경을 쓴다. 이런 지경이니 내게 여름은 지금도 유쾌한 계절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조화일까? 암경험자가 된 이후 뜨거운 여름의 불같은 화끈거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양산으로 잠시 얼굴을 가리면 되고, 조금 땀이 흘러도 냉방이 잘 된 장소로 곧 이동할거니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비가 오면 장화를 신으면 되고, 장화가 준비되지 않으면 잠시 머물렀다가 가면 되었다. 그렇게 여름과 친해지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훅~ 하고 내 코끝을, 내 온몸을 스치는 여름의 향기가 미치도록 행복하게 다가왔다.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내 몸이 고마웠고, 이런 감각을 느끼며 살아가는 내 삶이 감사했다.
지금도 소화가 안되거나 배가 아파지면 죽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괴로운데, 더 나이들고 늙으면 고통은 더 심해질 테고,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목숨을 내가 끊어낼 수만 있다면 그렇게 내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과연 그럴까? 내 몸의 통증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연해지고, 사계절의 느낌이 이토록 좋은데, 특히 이 뜨거운 여름의 향기가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만큼 고귀한데, 가끔씩 느끼는 그 고통때문에 귀한 내 목숨을 끊어내고 싶을까? 나이가 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힘들기만 한 삶일까? 유범상 사회복지학과 교수님 말처럼 선배시민으로 이 사회에 의미 있는 어른이 되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나이먹음'이 그저 '늙음'이 아니라 '성숙'이고 '완숙'이라면, 사람들로 둘러싸인 교류의 사회적 관계가 아닐지라도, 혼자서 진정한 고독을 느끼며 자신만의 심연으로 빠져들어 진정한 수련의 과정을 거쳐 승화의 경지에 이르는 삶을 추구하는 과정만이라도 살아낸다면, 나의 노후의 나머지 삶이 충분히 충만함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죽음 따위는 잊고 해야 할 일, 공부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찬 삶을 살기에도 바쁘지 않을까? 고단한 몸 일으키며 오늘도 죽지 못해 사는 하루가 아니라, 비록 몸은 무거워도 오늘 하루가 또 내게 주어졌으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의 심연으로 들어가 나를 인식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작은 실천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 삶은 의미 있지 않을까?
오늘, 작은 여름의 향기 한 줄기에 내 마음은 온 세상을 다 가진듯 충만해졌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고, 삶의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인식했다. 그래서 또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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