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장수하려면 스스로가 정한 높고 숭고한 목표를 향해 그 길로 매진하면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시형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건전한 목표가 설정되면 뇌뿐 아니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유전자까지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건전한 목표라면 자신 있다. 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인생의 목적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이건 무슨 이야기지? 인생의 목적은 철학적인 숙제여서 누구도 정의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 아닌 목표란다. 조금 큰 이상적이고 원대한 목표여도 좋다고 하더니 갑자기 개인의 만족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저차원이 아니란다. 인류 사회의 복지를 위한 건전한 목표여야 한다고?? 헐~~ 이시형 박사의 목표는 인류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돕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자신의 한 몸을 바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나는 인생의 목표를 세우기 어렵겠는걸 ㅠ 자신이야 유명인이고, 의학계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니 이토록 원대한 목표를 정했겠지만,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개인의 만족, 행복을 추구하는 목표가 아닌, 저차원이 아닌 인류사회 복지를 위한 건전한 목표를 정하라고?? 말이 되는가? 흠~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처럼 큰 목표는 아닐지라도 뭔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목표를 정하라는 말일 거야! 작은 환경운동가! 봉사!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나의 목표는 아니다. 이런 목표를 향해 내 삶을 살아내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 아직까지 한 번도 이런 삶을 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억지로 짜내듯이 사회를 위한 그 무엇을 목표로 삼기엔 무리다.
저자는 살아있는 이상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다그친다. 거창한 인생의 목적이나 철학적 사색의 결론이 아니라 삶의 궁극적 의미를 생각하노라면 절로 해답이 나온다고 한다. 글쎄~~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면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봉사'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이 만족도가 높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고 한다. 이시형 박사는 50세 전후에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고 하니, 나는 60세 전후에 깨달음을 얻을까?
아직 60이 되지 않았으니, 저자가 말하는 숭고한 목표까지는 아닐지라도 내 인생의 나를 위한 조촐한 목표는 뭘지 고민해 본다. 이렇게 범위를 좁혀 들어왔음에도 나는 결국 그것을 찾지 못한다. 너무 장기간이라 그런가? 그렇다면 중단기의 목표로 설정해 볼까?
2023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지인이었던 지금 이 학원의 원장이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감사한 마음으로 꽉 잡았다.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영어실력을 끌어올리자고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접어두었던 EBS 교육강좌를 듣기 시작했고, 영어회화 강의도 돈을 들여 구입해 듣기 시작했다. 이때의 내 목표는 3년간 죽도록(?) 공부해서, 어떤 수능문제를 만나도 자신감 있게 풀 수 있고, 고3학생까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 그리고 초등생 회화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원어민과 유창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 그리하여 3년 후엔 작은 학원이나 하다못해 공부방이라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초등부터 고등까지 모두 섭렵하며 맞벌이 부부들이 자신의 자녀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보육의 의미와 교육의 목적까지 두루 갖춘 그런 공부방 정도까지 꿈꾸었다. 그런데 학원일은 쉬운 듯하다가도 불쑥 불안감이 엄습해 올 정도로 무거웠다. 원장과의 갈등도 시작되었고, 수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낸 후에 결국 그만두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암경험자인 나에게 스트레스는 절대적으로 멀리해야 하기에 이토록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된다면 내가 영어공부를 해야 할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원장은 나를 붙잡았다. 함께 오래 일하고 싶단다. 그리하여 나의 이런 목표는 다시 가닥을 잡았다.
그. 러. 나... 원장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사람이다. 그녀의 변덕, 불같은 성격이 언제 또 나를 다시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이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때에 그 일은 벌어질 거라는 것.
이 글을 쓰며 내가 생각한 3년 후의 내 목표가 숭고한 목표일까? 보육의 의미를 함께 가져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그런데 내가 과연 그런 일을 시작할 수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나르시시트인 원장에게 휘둘리다가는 나의 자존감은 무너지고, 나의 자신감은 박살 날 거 같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지난 토요일에 원장에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는데, 이런 나의 마음이 그녀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지가 또 마음에 걸린다. 그녀는 자신이 자잘한 일에 일희일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나보다 더 일희일비하고 뒤끝 작렬이다. 나르시시트임이 거의 확실해진 그녀에게 토요일에 내가 했던 말은 만족스러웠던 거 같다. 자신이 우위를 점령했다고 느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잘한 거일 수 있다. 내가 우위를 점령했다면 그녀의 표독스러움이 나를 더욱 괴롭혔을 테고, 내 마음도 불편했을 거다. 그런데 그녀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한 것이 결코 잘한 거라는 마음이 들진 않는다. 내 자존감의 문제인 건지 모르겠으나 그녀를 더욱 잘난척하게 만든 거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왜 내 인생의 목표가 그녀 때문에 흔들리는 거지? 아마도 그녀의 학원에 있으면서 생긴 목표이기 때문인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에게 휘둘려야 할까? 그녀 때문에 내 인생의 목표가 휘둘리도록 내버려 둬야 할까? NO!!!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다. 내가 생각한 3년이라는 시간 중 6개월이 흘렀고, 이제 2년 반이 남았다. 이 시간보다 덜 시간이 걸릴 수도,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으나 그 기간 동안 나는 그녀와 상관없이 내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월급도 모아서 내가 생각한 목표를 이루겠다. 10대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먹고, 쉬고, 공부할 수 있는 편안한 공부방을 만들겠다. 영어와 더불어 국어공부까지 봐줄 수 있는 실력을 만들어볼 테다.
이 글의 시작점은 이시형 박사의 숭고한 목표를 내게는 너무 멀고도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마무리 짓는 글의 마지막에서는 나의 목표가 결코 숭고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음을 인식하게 되었네~ ㅎㅎ 그리고 그 목표를 좀 더 확고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원장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목표만 생각하며 keep going 할 거다. 절대 self 퇴장은 없다.
면역이 암을 이긴다. 이시형 박사의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워낙 많은 암 관련 책을 읽은지라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다만 에필로그에 있는 '건강하고 장수하려면 스스로가 정한 높고 숭고한 목표를 향해 그 길로 매진하면 된다'는 이 말이 내 가슴에 '턱' 걸렸다. 나에게 인생의 목표, 그것도 숭고한 목표가 있는지... 60에나 찾을까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정한 그런 목표가 있었으니... 물론 이 목표가 이루어질지, 그리고 이 목표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목표일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무엇인지. 지금까지의 내 삶이 그러했으니... 나는 이 목표를 강력하게 끌어당길 것이고, 할머니가 된 나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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