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얼마 전부터 남편과 가을 단풍여행을 계획했고, 우리는 가리왕산 해맞이 케이블카 탑승을 미리 예매했었다. 그런데 하루 전날인 금요일, 주체 측으로부터 새벽 6시 케이블카 탑승이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날씨 탓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무척 아쉬웠지만, 새벽 6시가 아닌 아침 10시 탑승을 목표로 집에서 출발했다. 새벽 6시에 케이블카를 타려면 집에서 새벽 2시에 출발했어야 했는데, 탑승 시간이 늦어졌으니 오히려 새벽 6시에 출발하게 되어 여유로운 출발이었다. 물론 일출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가리왕산에 도착할 때까지 온 세상이 안개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리왕산의 중턱까지 오를 때까지만 해도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희뿌연 세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부터 '맑음'이라는 말이 딱 맞는 날씨로 변신을 했다. '맑음'의 세상 아래는 아직도 구름으로 덮여있었고, 그 위의 세상은 마치 '천상계'처럼 푸른 하늘과 단풍으로 물든 산이 신비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했다. 그렇게 시작한 어제의 가을여행은 온통 마음에 드는 과정이 이어졌다. 아마도 가을 단풍이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물들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정선의 5일장도 별것 없었음에도 즐겁게 둘러보았고, 아우라지 차박지도 다음의 우리의 차박지로 선정하며 즐거워했고, 저녁식사였던 태성실비식당의 소고기 연탄구이도 정말 맛있었다. 태백 시내에 가면 분명 깨끗한 잠자리가 있으리라 믿으며 미리 정하지 않은 숙소도 적당한 가격의 깨끗한 곳으로 찾아, 지금 이렇게 편안히 쉬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여행은 여행이라는 의미보다는 힐링이다.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보내는 그 시간의 즐거움이 여행이라는 본질보다 더 크다. 여행 그 자체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과의 교감, 의사소통, 마음 나눔... 이런 것들이 내게 주는 따뜻함, 기분 좋음, 만족감, 행복감, 살아있음 등의 감정이 내 여행의 목적이고 의미이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어디를 갔었고, 무엇을 보았고, 얼마나 럭셔리한 여행을 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맑음과 흐림의 날씨도 여행의 목적지 변경, 여행의 출발 그 자체게 영행을 주지만 사실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함께 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사람과의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도 참 좋았다. 일출을 볼 수 없었고, 정선5일장에서의 점심이 맛이 없었음에도, 나머지 모든 여행의 과정이 순탄했고, 만족스러웠고, 남편과 교감하며 나눈 대화들이 충분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번주는 내내 또다시 학원일로 마음이 조금 불편했었다.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월급을 30만 원 줄임으로써 원장의 '지랄'과도 같은 잔소리는 이제 전혀 없다. 덕분에 나는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 마음의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일에 대한 역량은 점점 커져가고, 나의 일처리가 빨라지고, 일의 능률이 오를수록 만족도가 높아진 원장은 더 많은 일을 내게 요구하고, 더 많아진 일 덕분에 또 더 바빠진 내가 이제는 그 월급이 내 일에 비해 적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고, 원장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이번주 내내 내 안을 맴돌던 화두였다.
이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내 안의 불만은 점점 커져갈 테고, 그럴수록 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질 테고, 그러면 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터인데,,, 내가 나를 잘 아니, 이것을 풀어내야 할 숙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여행을 하기 전날 밤, 그러니까 금요일 밤에 이 마음이 한없이 커져서 잠조차 오지 않았다. 이불을 들썩이며,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모든 문제는 내 마음에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이 그 문을 열지 않으니 문제였다. 그러다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내 마음을 추슬렀다.
첫째, 예전의 학원에서 벌던 시간당 급여의 금액이 지금의 학원에서 받는 금액보다 실질적으로 높지 않다는 것. 차를 구입하고, 그것을 유지하려니 한 달에 5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이 부분을 학원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겠으나 실질적으로 내게 들어오는 수입을 생각하면 어이없이 적은 시간당 알바생이 되어버린다. 이 부분이 가장 참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원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내게 주는 금액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어떻게 차값을 빼고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차는 나에게 힐링의 부분이기도 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차값을 빼고 생각해 내가 알바생의 월급이라 해도 나를 이해시킬 적당한 답이 떠올랐다. '예전보다 너는 나이가 들어 정년 퇴임 할 나이야. 게다가 암환자가 되어 체력도 좋지 않은 사람이야. 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 거지. 너의 능력에 맞는 월급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 오히려 남들은 잘릴 나이에 취직이 되어 매달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니 얼마나 다행이야. 게다가 험한 일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말로 전달만 하는 일이고, 영업도 아니고, 얼마나 편한 일이니. 예쁜 아이들과 티키타카 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그리고 너의 능력은 지금부터 키워가면 되는 거야. 지금 네가 준비하고 있는 것, 앞으로 2년 동안 하기로 하고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열심히 채워가면 되는거야. 지금 네 마음을 화나게 해서 너를 오히려 불타게 하고 있으니 오히려 너에게 추진력을 불태워지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지. 그때가 되면, 네 실력이 커진 그때가 되면, 원장도 너를 붙잡으려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네가 오히려 그곳을 나와 너만의 일을 시작할수도 있잖아.' 그렇게 나는 나의 마음을 다졌다.
둘째, 집에 있다고 운동을 더 할것 같지도 않고, 식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거 같지도 않고, 공부를 더 많이 할거 같지도 않다. 오히려 심심한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뭐 할거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또 어떤 다른 것을 찾아 두리번거릴 것이 뻔하다. 또 사람들 만나면서 돈을 더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내가 절대로 원하는 삶이 아니기에 집에서 괴로워하며 지낼 것이 분명하다. 가끔 머리가 아픈 것을 빼면 일 자체는 즐거우니, 일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다.
셋째, 그야말로 '놀면 뭐 하니'다. 이것은 두 번째와 같은 것 같지만 별개의 또 다른 답인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는 것이 그 시발점이고, 그래서 내가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일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 학원에 아이들 영어 가르치는 봉사 하러 나왔고, 그 대가로 적은 금액이지만 얼마간의 봉사료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자는 마음이다. 사실 내가 나이 들면 바로 이것을 하고 싶었던 것이니, 지금 바로 그것을 한다고 생각하자는 것. 그런데 단순히 봉사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이 봉사로 인해 나는 나의 영어공부 열정을 더 불태울 수 있으니 오히려 더 감사할 일.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내 마음은 많이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가끔씩 원장이 얄밉기도 하다. 그리고 만약 원장이 생각이 있다면 당연히 월급을 올려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그저 내 생각이라면 나는 또 실망하고 화가 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또 이런 이유들과 또 다른 이유들을 떠올리며 잘 견뎌낼 거라 믿는다. 그리고 계속 내 실력을 키워갈 것이다. 이래서 나는 내가 멋지고 좋다. 사색하고, 토닥토닥하고, 오히려 더 큰 목표룰 찾아내고, 행복해할 줄 아는 마음의 내가 멋지고 좋다.
여행오기 전날부터 여행하고 난 오늘 일요일까지, 즐거운 여행길동안 나는 내 마음도 알차게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늘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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