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여행을 다녀오면서, 학원과 학원장에 대한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안쪽에, 지금의 마음은 이렇게 단단하게 다져진 듯 느껴져도, 또 다른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또 흔들릴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의심이 아니라 당연한 마음이었다. 쉽게 상처받는 '나'라는 사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수시로 변하는 원장이라는 사람을 잘 알기에... 그녀와 나는 그렇게 평행선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나는 냉정해지거나 상처를 받는 쪽이 될 수밖에 없다.
여행을 다녀온지 3일째 되는 수요일, 그녀는 나에게 네 개의 수업을 떠넘기고 병원을 다녀왔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미리 공지하지도 않은 채 두 개의 수업을 떠넘겼다. 그다음 날인 금요일은 늘 그렇듯이 5시 이후의 수업을 모두 나한테 맡기고 자기 볼일을 보러 나갔다. 3일에 걸쳐 이런 일이 있으니, 내 마음은 또 술렁였다. 이렇게 많은 부분을 나한테 맡길 정도라면 월급을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닐까? 쥐꼬리(?)만큼 월급을 주면서 자신의 일을 그 정도로 넘겨버리다니... 나를 믿고 맡길 정도라면 나에 대한 대접을 어느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이건 단지 나만의 생각일 뿐. 그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았다. 나는 다시 지난 여행에서 마음먹었던 그 마음을 다시 되살리며 나를 추슬렀다. 그녀에게 기대하지 말자.
그렇게 다시 새로운 한 주일이 시작되었고, 월요일에 잔뜩 짜증이 묻어난 그녀의 얼굴 표정과 말투에 내 마음도 짜증이 나버렸다. 그런데 그날 아침, 우연하게도 나는 법륜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상대가 던지는 쓰레기를 붙잡고 그걸 들여다보며 어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그건 그 쓰레기를 던진 사람의 몫이니 받은 쓰레기를 그냥 버려버리라고. 그래, 오늘의 짜증은 그녀의 몫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그녀가 던진 쓰레기를 멀리 던져버렸고, 오히려 학원일로 머리 아플 그녀를 동정했다. 마음 한편으론 그런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 힘들기도 하겠구나... 그런데 그 다음날인 어제, 출근을 했는데, 상담실에 깔깔거리는 그녀의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 함께 일을 시작한 수학쌤과 웃고 떠드는 소리였다. 나는 잠시 합류했다가 일을 시작할 생각으로 그들 사이에 잠시 끼어들었다가 참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나를 그녀의 boundary 안으로조차 넣고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래, 알고는 있었다. 그녀에겐 오로지 학원이 전부라는 것을. 그리고 사람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로지 학원을 살리는 것, 그리고 그녀 자신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그것 외에는 어느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래도 일말의 그녀의 인간적인 면을 부단히도 찾고 있었다. 나와의 친분, 그녀의 내면의 인성을 찾아 헤맨 나의 잘못을 크게 깨달았다. 결국 그것이 그녀와 나의 차이였고, 그 차이가 나를 아프게 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더이상 그녀에게서 그런 일말의 인간성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녀에게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아플 것도 없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일하면 될 일이다.
어제, 퇴근길, 운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녀를 진정으로 내려놓으며 이젠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자신을 얻었다. 누군가 나에게 해 준 말이 맞다. 그녀와 나는 결도 다르고, 격도 다르다. 이제 진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녀를 도와준다는 마음도 내려놓았다. 누가 누구를 도와준단 말인가.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학원에 출근하기로 했다. 앞으로 얼마나 다닐지 모르겠으나, 내 몸을 축내면서 일하지도 않을테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을 테고(나에게 조금은 이런 마음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편하게 일할 생각이다.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그 즐거움을 통해 받는 월급으로 2년 후 떠나게 될 미쿡여행을 꿈꿀 것이고, 대학원 진학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앞으로 1년쯤 후엔 원어민과의 1:1 회화도 시작할 것이다. 그런 실력이 되도록 앞으로 1년간 정말 미친듯이 공부할 생각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내 마음을 바꾸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녀에게 미움도 없다. 기대한 내 잘못임을 인정하므로. 오히려 나의 열정을 자극해 준 그녀에게 고맙다. 오히려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준 그녀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나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받는 월급으로 내 미래를 만들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의 퓨처셀프만 생각하게 되었다. 퓨처셀프를 위해 오늘도 즐겁게, 신나게, 그리고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