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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100 인생 그림책

by 짱2 2019. 7. 29.

 

6,7.8월 세 번에 걸쳐 서울역에 있는 희망센터에서 독서토론회가 있다.

항암으로 인해 쇠약해진 몸으로 서울역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가 될 것을 알면서도 참석하겠다고 신청을 했고, 다행히 접수가 완료되어 지난 6월 1차 '한 글자 사전'이라는 책을 함께 토론했고, 이번 7월엔 '100 인생 그림책'이다.

토론을 주체하시는 선생님께서 과제를 내주셨다. '살면서 배운것은 무엇인가?'

글쎄~ 뭘 배웠다고 해야 되나? 많이 배운것도배운 것도 같고, 아직 덜 배운 것도 같고.

 

이 책은 0세부터 99세까지 그림과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한시간이면 충분히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깊이 사색을 한다면 끝도 없겠지만....

 

살면서 뭘 배웠나.... 생각하며 뒤적이다 아래 그림과 글에서 번쩍 글감이 떠올랐다.

그래 맛이란것이 단순히 혀가 느끼는 맛도 있겠지만, 살아오는 동안 쓰고, 단맛의 인생을 느껴왔음을 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래의 글을 적어보았다.

 

4살이 아닌 50년을 사는 동안, 달고, 시고, 쓰고, 짜고, 매운맛을 보았다. 이 다섯 가지는 오로지 혀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맛이란 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코로 느끼는 향기가 함께 해야 진정한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2년 전쯤 호되게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한 달을 앓는 동안, 코가 제 기능을 상실했다. 고기를 먹는데 껌을 씹는 느낌뿐, 커피를 마셔도 그냥 물일 뿐... 아무런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먹는 음식이 아까웠다. 특히 비싼 음식을 먹으면 그 맛을 느끼지 못하니, 음식의 값이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열흘을 냄새 맡지 못하며 지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재미없는 날들이었다. 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죽고 사는 것까지 뒤흔들 정도가 되었었다.

맛이란, 단순히 오미(五味)’의 그것만이 아니라, 숯불 향, 버터 향과 같은 향기로운 냄새가 더해져 맛의 풍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살아오면서 달고, 시고, 짜고, 쓰고, 매운맛을 보았다. 좋지 않은 맛을 본 적도 많다. 그러나 그만큼 정말 맛나고 향기로운 순간도 많았다. 정말 아름답고 예뻤던 시간들, 놓치고 싶지 않고, 잊기 싫은 그런 시간들. 그런 시간들은 나의 아들이 태어난 큰일 같은 것도 있지만, 아주 소소하고 작은 일들인 경우가 훨씬 많다. 내 아이의 만족한 미소, 편안히 잠든 남편의 얼굴, 물기를 머금은 베란다의 화초, 나를 어루만지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 비 내리는 오후, 반가운 친구의 안부 전화......

 

앞으로 살아가면서 향기롭지 않은 꼬리꼬리 한 냄새가, 불쾌한 냄새가 나는 맛의 날들도 오겠지만, 암이라는 놈을 알게 된 지금은 그런 날들을 잘 견뎌낼 수 있게 힘을 주었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모든 날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것을 안다. 50년의 인생 동안 배웠으므로.

 

살아오는 동안 한두 가지 맛만 알았더라면, 얼마나 단조롭고 무의미한 삶이었을까? 인생의 모든 맛을 맛보며 살아온 지금, 난 충분히 성숙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를 가진 여인으로 성장했다. 수줍고 소심하던 조그만 꼬마 아이가 이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자존감 넘치는 여인으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왔던 것이다. 세상을 통해 많은 맛을 느끼면서......

 

그렇게 50년을 살아온 아름다운 내 삶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아름답게 만들어갈 나의 삶이 암이라는 것으로 무너져 내리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더욱더 삶을 사랑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면서 살아가리라 믿는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