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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나의 퍼펙트 데이즈

by 짱2 2024. 7. 30.

지난주 금요일,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남편이 바로 퇴근하는 날은 나의 모든 일정을 남편에게 맞추겠노라고 생각했다. 하나뿐인 아들은 장가가고, 이제 '남편과 나' 오직 둘만 살고 있는 집인데,  퇴근해서 집으로 온 남편이 혼자 있는 시간은 되도록 만들지 말자 했다. 하지만 만약에 남편이 늦는다고 하면, 그날에 맞추어서 나도 약속을 잡는다던지,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갈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지난주 금요일, 남편에게 약속이 있었고, 나는 영화에 굶주린 사람처럼 두 편을 예매해서 보았다. 그중에 하나가 '퍼펙트 데이즈'.

 

 

 

배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내가 아직도 감동깊게 본 일본영화 '쉘위댄스'의 남자 주인공 '야쿠쇼 코지'. 이 배우의 영화라면 무조건 믿고 본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평가도 좋으니 꼭 보리라 마음먹고 있던 차에 가까운 상영관에서 개봉했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갔다.

(참 다행스럽게도 가까운 노원 롯데시네마의 '아르떼'관에서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그 건물 바로 맞은편에 이런 영화들만 상영하는 '더숲시네마'가 있다.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려면 광화문의 '씨네큐브'로 갔었는데,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 이런 장소가 두 곳이나 있으니 참 기쁘다. 게다가 나는 복지할인이 되어 5천 원, 6천 원에 관람이 가능하다. 이러니 내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않은가!!!)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사알짝 들었고, 막상 영화가 끝난 후엔 감독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 깊이 이해되지 않았다. 조금은 멍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며 지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스스로 조금씩 깨우쳐지는 바가 있었고, 주말을 지나 어제까지(남편과 산책하며 또 이야기를 했다) 쭉~ 생각이 이어지면서 가닥이 잡혔다. 

 

7월 한달을 오로지 독서와 공부로 보냈다(물론 공연과 영화 몇 개를 보았고, 주말엔 남편과 외식도 했다. 아들 내외를 만나 생파도 했다). 독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는데, 공부는 잠과의 싸움이었고, 이렇게 하는 공부가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인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 공부를 해서 뭐 하지? 그냥 술렁술렁 편하게 영어회화나 좀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단어 외우고, 독해, 리딩, 리스닝, 스피킹까지 뭐하려고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거지?  이제 다시 영어쌤이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나를 갈아 넣을 필요가 있는 걸까? 게다가 나는 암경험자 아닌가! 매일의 단순함과 지루함과 괴로움이 얽혀서 혼란스러웠다. 취미로 캘리그래피 쓰고, 음악 듣고, 영화나 공연 보러 다니고, 책 읽고, 남편과 여행 다니고... 좀 더 편하고 달콤한 것들이 나를 유혹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이미 하고 있는데, 그쪽으로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했다.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런 삶의 반복이다.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이렇게 살아서 뭐가 달라지는걸까? 1년 후, 2년 후, 10 년후도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고 있으면? 이게 내가 추구하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일까? 공부를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지만 '반복'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런데 영화속 주인공은 한결같은 매일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하찮게 보이는 화장실 청소를 완벽하게 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젊은 동료 청소원은 대충 청소한다. 그렇구나!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동생이 다녀간 후 울고 있는 그에게 아픈 과거가 있음이 틀림없다(영화에선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고 오늘을 무겁게 살거나 또 가볍게 살지 않는다. 그저 오늘을 완벽하게 살아낸다.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그의 잠(꿈)은 관객도 알지 못하는 또 주인공도 알지 못하는 보일 듯 말듯한 혼란과도 같은 그 무엇이 있다. 아마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의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안고 있는 과거의 아픔이거나 내가 꿈꾸는 내일의 희망일 수도 있겠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며 나무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이 다르고, 오늘의 햇살과 내일의 햇살은 다르다. 같은 일상이지만 또 조금씩 다른 날들이다. 매일 작지만 다른 에피소드는 계속 일어난다. 

 

주인공은 이야기한다. 변화가 있다고. 똑같지 않다고. 그 옆의 남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하자고. 그건 각자의 몫인거다. 변화를 느끼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삶도 결코 똑같지 않다는 것을. 지금 이렇게 하는 공부가, 지금 이렇게 애쓰며 사는 것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음을,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음을, 어제의 나보다 오늘 조금 더 발전했고,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좀 더 나아졌음을... 그랬기에 지루함과 괴로움을 물리치며 내년 12월 31일까지 무조건 무식하게 공부하자고 마음먹었겠지. 난 이미 이런 성공의 경험을 했었으니까. 꼭 무엇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시간을 들여 했던것들이 쌓이고 쌓여 내 것으로 승화된 어떤 것을 난 봤으니까. 그렇게 여러 개의 학사학위를 취득했고, 그렇게 영어쌤이 되었으니까.

 

암경험자인 나 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몇몇은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지인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암전이가 된 지인은 자살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떨쳐낼 수 없기에 차마 말리지도 못했다(죽음이 쉽지 않기에, 또 그녀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그런데 공지영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 어린 딸을 잃은 부모가 쓴 묘비명을 읽으며 울컥했다. ' 주님께서 주신 아기, 주님께서 도로 거둬 가시니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 아! 맞다. 내 목숨이 내것이 아닌데, 마치 내 것 인양 착각했구나.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이 귀한 생명을 나 스스로 끊어낼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매일을 퍼펙트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완벽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항암을 하면서도 책상앞에 앉아 책을 읽었고 공부를 했다.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그만 좀 공부하라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침대에 누워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이게 인간인 거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는 말을 하고, 그런 말이 듣기 싫다고 하면 걱정하는 말인데 왜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또 비난했다. 물론 그들은 그럴만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암환자가 되면 아프다가 죽어야 하고, 암을 극복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 약초 캐서 먹어야 했다.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퍼펙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걸 했다. 살림해 주러 오겠다는 엄마도 오시지 마라 하고 내가 직접 살림했다. 항암이 끝나자마자 바로 직장으로 복귀했고, 매일을 퍼펙트하게 살아냈다. 매일 책 읽고, 공부했다. 난 그래서 살아난 거다. 

 

그땐 5년의 암정복이라는 과제가 있었다. 그땐 영어쌤이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지금은 5년이 지났고, 영어쌤이라는 타이틀을 잃었다. 그냥 가정주부로 돌아온 내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공부가 의미 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영어공부, 수학공부, 음악공부, 사색과 명상을 위한 독서, 지식을 위한 독서를 한다. chat gpt도 공부할 생각이다. 그러다 나의 체력적인 한계, 졸음, 비몰입등의 적과 만나면 한없이 흔들린다. 왜 힘들게 살까? 그냥 내려놓을까? 너무 많이 하나? 몇 개만 버릴까? 등등... 물론 이렇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몇 개는 내려놓아질 거고, 또 새로운 몇 개는 주워 담겠지만, 빈둥거리는 나를 상상할 수는 없다. 이게 나인 거다. 

 

'내일 하늘이 무너져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나'라는 사람. 하늘이 주신 이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매일 완벽한 삶을 살아낼거고, 1년 반 후의 내 모습에 희망을 갖고, 또 내게 주어지는 어떤 소명과도 같은 일을 만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해낼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퍼펙트하게 살아낼 거다. 오늘 잠시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하루인지, 내일 주어지는 그 하루는 보석과도 같다는 것을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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