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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독학력1 - 고요엘 -

by 짱2 2024. 8. 29.

'독학력'이라는 제목이 나를 확~ 이끌었다. 

 

 

 

 

나에게 독학은 '나의 힘'이라고 그야말로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어릴 적 불우한 환경이라는 말은 나에게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가난했으나 굶주릴 정도는 아니었고, 폭력적인 아빠가 존재했으나 자식에게까지 손찌검을 하지는 않았고, 신체적 결함을 가졌으나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물론 겉으로 봤을 때이고 벗겨놓으면 눈에 확 띄는 장애이고 그로 인한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장애등급 6급인)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보낼 만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엄청 공부를 잘했으면 도둑질을 해서라도 대학을 보내주셨을 부모님이고, 나야말로 부모님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단식투쟁을 해서라도 등록금을 원했을 테고, 스스로 몸을 팔아서라도(?) 대학을 갔을 터였다. 물론 나의 신체적 결함이 그런 지경까지 이르지 않을 수 있는 장점(?)으로 힘을 발휘했다. 어쨌든 스스로 생각하기에 비참한 우리 집의 상황에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독서하고, 꾸준히 일기를 썼던 문학소녀의 기질은 6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인문학으로의 열정을 식지 않게 하고 있다. 내 삶의 60년 가까운 세월은 누군가에게 떠밀려하는 공부로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들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에 나는 스스로 공부를 내려놓았고, 남들은 하지 않는 시기에 스스로 공부의 열정을 불사르며 공부했다. 그렇게 나의 가방끈(국문학사, 영문학사, 아동학사, 사회복지학사까지 네 개의 학위를 취득했다.)은 길어졌으니 나도 참 어지간히 고집불통이다. 

 

지금까지 내가 공부한 것들은 이루 헤아릴수 조차 없다. 요리, 제과, 컴퓨터 관련 공부, 펜드로잉, 일러스트, 캘리그래피, 네일아트, 미용, 피부관리, 비즈공예를 비롯한 각종 공예까지, 내가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또는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어떤 공부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 하고 싶으면 시작하고, 한 번 시작하면 그 끝을 본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책 '나는 포기를 모른다'처럼 나 또한 포기를 모른다. 아마도 지난 세월의 '독학의 힘'이 나에게 이런 자생능력을 키워줬으리라. 그러하니 '독학력'이라는 책의 제목이 나를 이끌었음을 인정한다. 게다가 소제목이 '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힘'이라고 하니, chat gpt를 배우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나의 이목을 끌 수밖에... 

 

그런데... 막상 이 책은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들의 나열이었다.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는 시간이 된 것으로,  내가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된 것으로 만족한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우리가 더 똑똑해지지 않고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내가 자발적으로 주체가 되어 기억하고 감정을 느끼고 자각하는 공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부는 우리가 찾는 자료를 우리 스스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순간부터이다.

 

인공지능은 나날히 발전하고, 나는 점점 나이 들어가고, 몸이 쇠약해지고 있다. 앞으로 내가 이 사회에서 돈이 되는 그 무엇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던 나는 작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에 걸친 몹시도 견디기 힘들었던 직장생활 후의 후유증까지 더해져서 '무직'을 디폴트로 정했다. 더 이상 무리해서 일을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적절한 일감을 제공해 주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까지 사양하진 않겠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공부의 열정을 식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10월부터 시작하는 chat gpt 강의까지 들을 생각이다. 앞으로 1년 후에 죽을지 아니면 100세까지 40년 넘게 더 살다가 죽을지 알 수 없으나 만약 100세까지 산다면 인공지능을 모르면서 살아갈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공부해야 하고, 그 공부의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고 싶다. 그것이 돈으로 이어지는 직업이 될지,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이 될지에 상관없이.

 

참 다행스러웠다고 느끼는 것이, 책을 읽고 필사를 한지는 몇 년 되지 않지만, 그 느낌을 글로 적거나 지인들에게 말로 전하며 되새김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읽은 모든 책들을 그렇게 하지 못했고, 일한다는 핑계로 많은 책을 읽지 못했으니 그 부분은 후회스럽지만, 늘 일기를 쓰며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나름의 독후감을 썼던 어린 나에게 감사한다. 이런 글쓰기의 삶은 내가 자발적인 주체가 되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게 했고, 그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더 큰 열정, 더 많은 욕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하나의 성공을 부르고 또 다른 성공을 이끌어내며 내 삶의 많은 부분을 희망으로 변화시켰다. 

 

 

 

나는 독학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공부의 목적을 명확화하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지식을 주도적으로 습득하는 성실의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저자의 독학력에 대한 정의가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내가 딱! 그렇게 독학의 길을 걸어왔다. 영어를 좋아했던 나는 영어공부라는 방향을 설정하고, 영어공부라는 목표를 정했다. 나의 경제적, 시간적 상황을 판단한 후, 방송통신대의 영문학과 편입을 결정했고, 미친 듯이 공부에 몰입했다. 영문과 졸업 후 회화 실력이 부족하다 느꼈고, 바로 학원에 등록했으나 나의 회화는 지속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 학원 등록이 나에게 가져다준 또 다른 행운의 여신 때문이었다. 영어학원 선생님으로 취업이 된 것이다. 만약 그때 취업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회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모든 열정을 불살랐을 것이고 그 결과는 또 다른 행운의 여신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온 행운의 여신은 '영어강사'였고, 나는 대만족이었다. 영어강사라는 타이틀이 정말 좋았고, 자랑스러웠으며 그로 인해 돈까지 벌 수 있어서 나의 삶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부족한 영어회화 실력은 지금에서야 다시 시작이다. 

 

나의 독학의 힘은 그저 인터넷 검색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은 말 그대로 검색의 차원에 머물뿐, 나는 그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고 그것을 내 것으로 뽑아낸다. 내가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분류하고 인식할 뿐이다. 내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어낸 지식은 산 지식이 되어 나의 기본적 바탕을 깔아준다. 난 그걸 밟고 일어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그 무엇을 또 찾는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의 반대는 '행운'에만 의지한다는 것이다.

 

내가 20년 전에 무엇을 공부했었는지 보다는 최근 3년에 무엇을 공부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15년 전, 나는 영어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으로 그야말로 영문학을 공부했고, 그것이 나를 영어강사의 길로 이끌었다. 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 부족한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했고, 인공지능의 시대에 발 맞추어 또 그와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회화와 관련된 그리고 인공지능과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서점에서 구입하고, 인터넷을 뒤적인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그 자료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중이다. 찾아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중이다.

 

물론 정말 많이 힘들다.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까지는 아직 내것이 아니다. 그다음부터가 피 터지는 고통의 시간이고 지루하고 고된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이 들어 머리는 빨리 회전하지 않고, 환자이니 체력도 따라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책 제목을 내가 먼저 가져왔어야 했나? ㅎㅎ 

 

사람들은 항상 공부하는 나를 비아냥거린다. 또는 부러워한다. 나를 생각해주는 것처럼 내 건강을 걱정하며 무리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말한다. '대단하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결코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지 않는다. 내가 무모하다고 생각하고, 괜한 짓을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주변의 사람들이 편하지 않다. 유튜브를 통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는 편이 훨씬 좋다. 

 

물론 알고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고 말하는 저자도 있었듯이 나도 무조건 열심히 사는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쉬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쉰다. 남편과 차박을 비롯한 여행을 한 달에 두세 번씩 다니고, 영화도 일주일에 한두 편은 보고, 공연도 한 달에 서너 편은 본다. 매일 산책하고, 매일 요가하고, 매일 맛있는 음식 만들어 먹는다. 도대체 나보고 더 이상 뭘 쉬라고 하는가!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공부하는데. 자신의 삶에 안주해 그 안에서 버둥거리며 투덜거리는 그들의 삶이 내게 간섭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건드리는 것이 싫다. 그래서 이젠 그들에게 내 삶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 나보다 더 멋지게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그런데 막상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 안에서 질투가 용솟음친다. 아직 부족한 거다. 

 

 

 

항상 원점에서 본인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5월에 일을 그만두면서 말 그대로 원점에서 돌아보았다. 더 많이 공부하기 위해 낡은 의자를 버리고 편한 새 의자를 구입했고, 운동을 위해 여성용 접이식 자전거도 샀다. 그리고 치매 예방을 위해, 가장 못했던 나의 치부였던 과목인 수학 공부를 중학교 기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피아노치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 피아노 구입을 원했으나 아직이다. 무엇이든지 시작하기 전과 그 과정에 들어선 다음은 괴리가 있다. 중간중간 원점으로 돌아가 나를 돌아본다.  아! 나는 아직 영어에 목마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수학도 아니고 아직 피아노도 아니다. 하던 것, 그리고 부족한 것, 그것은 영어회화였다. 그리고 다시 최근 3년의 공부라... 나는 최소한 2년여의 공부를 결심하고 그야말로 '닥치고 공부'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 가시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지금 너무 고통스러워도 무조건 닥치고 공부하기로 했다. 무조건 내년 12월까지 지금 선택한 열 가지의 과정을 그대로 가보자고 결심했다. 아마도 중간중간 나는 또 원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방향의 전환은 있을 거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이것이 나의 '독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