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으로 그녀를 볼 때면 참 야무지고 차갑고 냉정하고 똑 부러지게 말 잘하는 차도녀로 생각했었다. 어쩌면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그런 그녀도 삶의 궤도를 몇 바퀴 돌고 자신 안으로 들어와 많이 성숙해진 듯 느껴졌다. 그녀가 이혼을 했다는 얘기 정도만 얼핏 들었던 거 같았는데, 그녀의 외로움의 방향이 안쪽이 아닌 바깥쪽을 향했고, 그 결과는 마흔 중반의 그녀를 오히려 독신으로 남겨놓았다. 내가 그녀에게 가장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했던 것이 바로 그 '외로움'이란 단어였다. 그녀에게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나 있는 주부가 외롭다고 디엠을 보내왔다는 내용에서처럼 나 또한 그러했음을. 그리고 그 진저리 나는 외로움의 출구를 바깥에서 찾았음을. 독서와 공부라는 건전한 예쁜 길을 걸어가면서도 지독한 외로움의 방향은 수시로 술과 사람과 남자로 향했다. 그 결과는 당연한 더 큰 외로움이었고, 중독으로 인한 무기력증과 자살충동, 그리고 '암'으로까지 이어지는 bad ending이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때까지...'라는 구절처럼, 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마주하니 외로움은 자취를 감추었다. 수십 년 마시던 술도 이젠 더 이상 마실 수 없다. 반백년의 삶을 내 맘대로 살았더니 하느님이 벌주시고, 더불어 상도 주셨다. 나머지 반백년은 좀 다른 삶을 살아보라고 내게 선물 같은 날들은 덤으로 주셨다. 5년의 시간이 흘러 남들이 말하는 '관해'라는 순간이 왔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게 그런 단어를 쓰지 않으셨다. 위암 담당샘도, 대장암 담당샘도. 아마 아직 안심의 단계는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5년을 견뎌냈고, 지금 이렇게 살아서 먹고, 놀고, 공부하고, 글 쓰고 있으니 기적 같다. 몇 달만 있으면 6년... 그 세월 동안 내 삶을 건강하고 바람직한 루틴들로 채웠고, 습관처럼 떠올리던 외로움은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혼자 있을 때 얻는 평온함보다 더 귀한 무언가를 줄 만한 사람이 지구에 존재할까? 어렵게 찾은 나의 평온을 나눌 자격이 있는 자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미숙함이 있고 나는 나의 미숙함과 부족함을 감당하고 알아차리며 사는 것만으로 많은 에너지가 들어, 타인의 미숙함을 내 삶에 들일 자신이 없는지도 모른다.
내 삶을 텔레비전으로 치면, 시시한 농담과 어이없는 시트콤을 너무 오랫동안 틀어두었지. 남은 삶은,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 다큐멘터리 같았으면 하는 것이다. 남은 삶은, 그저 고귀하고 완전한 무엇들에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혼자이고 때때로 외로운 것이 둘이서 때때로 싸우고 뒤돌아 잠드는 것보다 나에게 훨씬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어렵게 찾은 평온함을 대신 할 자, 나눌 자격이 있는 자가 존재할까? 아직 미혼인 그녀는 물음표로 약간의 여지를 남기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단호히 답한다. 없다. 오로지 나뿐이다. 반백년의 방황 끝에, 암이라는 고통 끝에 얻은 결론은 나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 스스로 고독해지고, 평온해지는 것뿐이다. 나의 미숙함에 다른 이의 미숙함까지 더해진 따따블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기에 우리는 너무 약하다. 내 존재를 짊어지고 가기에도 벅차다. 가족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이다. 나에게 가족은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나의 외로움, 나의 삶 자체는 나만의 고유의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 속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후에야 가족을 속박하지 않고 가족에 속박당하지 않고 모두 건강한 삶으로 자립할 수 있다. 내 남편도 내 것인 줄 알았고, 내 자식도 내 것인 줄 알았던 지난날, 나는 그들을 얼마나 속박했던가. 반백년이 지나서야 그것을 알고 내려놓았으니 지난 세월 나의 가족은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텐데, 다행히도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심히 망각의 강을 건넌듯하다.
저자는 남은 삶을 고귀하고 완전한 무엇들에 쓰고 싶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책에서 그녀가 말하는 '명상'등의 강의나 글쓰기를 말하는거 같다. 이렇듯 저자는 그 무엇을 찾은듯하니 다행이다. 나도 작년 중반까지는 계획이 있었더랬다. 그러나 학원장에게 몹시 휘둘리고 난 후 갈길을 잃었다. 그리하여 내년 12월까지는 나만의 안식년이라 생각하고 독서와 공부, 음악과 공연에 흠뻑 빠지기로 했다. 1년 반의 시간이 지난 후, 내게 어떤 문이 열릴지 기대도 되고, 혹여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해도 그 과정이 황홀하니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하며 만족할 것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고요함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삶은 절대로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고귀한 영역이 있음을 알게 되는 일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마치 낡은 장막을 하나 벗겨낸 듯, 삶의 기본 무게가 가볍고 단출해진다. 애쓰지 않아도 언제나 고요함의 모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기분이 편안해지기 위해 어딘가로 멀리 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극적인 환경에서 마음이 어지러워질지라도 내 안의 고요함과 접속할 수 있다. 특별히 시간을 내어 떠난 곳에서 그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좋은 느낌을 온전히 다 만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때때로 불가항력적으로 많은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기도 하지만, 그때에도 호흡으로 돌아와 그 안에 머무는 법을 알고 있기에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요함을 만나기까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만나고 더욱 깊게 단련하면 나의 기본모드가 고요함이 된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이전과는 다른 나를 표현할 적절한 말이 필요했는데, 바로 이것이었다. 기본모드가 고요함이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큰 노력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매일의 삶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늘 고요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암과 맞바꾼 큰 깨달음이다. 고요함과 감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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