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니체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책 쫌 읽는다고 말할 자격이 없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물론 밖에서 그렇다고 떠벌이고 다닌 적도 없지만, 나름 고상한 척했던 나의 자존감에 살짝 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전을 읽겠다고 마음먹고, 몇 권을 뒤적이다가, 어려워서 포기하고, 읽은 후에도 무슨 내용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 나의 무지함이여~ 부끄러울 따름이다.
학원을 그만두면서 다시한번 고전 읽기에 도전해보리라 마음먹었지만, 다른 읽을거리와 공부할 것들에 쌓여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9살 많은 남자사람친구가 올해부터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독후감을 조금씩 풀어놓으니 나 때문에 독서를 시작한 그에게서 오히려 나는 또 다른 자극을 받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사이토 다카시'라면 내가 좋아하는 책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저자가 아니던가. 물론 나는 그의 책 중에 이 한 권만 마음에 든다. 다른 책들을 읽으며 너무 쉽게 풀어쓴 때문인지 어딘가 2%도 아닌 20% 부족한 느낌이 들어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니체의 책을 그답게 풀어썼다면, 어쩌면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중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인간이란 뛰어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뛰어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그 유명한 '초인'이 등장한다. 내가 인간인데 무엇을 뛰어넘으라는 것인가! 과연 초인이 무엇인데?
굳이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며, 이제는 인간의 세계가 되었으니 지금까지 하찮은 존재였던 자신을 초월해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고 묻습니다.
'인간을 뛰어넘는다'라고 하면 상당히 장벽이 높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가볍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비포 앤 애프터 before & after'처럼 무언가를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포 앤 애프터'를 의식해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해 보길 바랍니다. 그러면 비로소 '초인'으로 가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
역시! 사이토 다카시였다!! 나의 궁금증을 그가 해결해준다. 그는 하나의 예를 들어준다.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기로 하고 먼저 '죄와 벌'을 읽고, 그다음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라고 한다. 이렇게 자신이 하지 않았던 것을 뛰어넘어 보라고 한다. 그리고 만약 너는 "너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라고 답하라고 한다. 비포 앤 애프터, 그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정말 이해하기 쉽고 또 그렇게 변화해 나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죽었다는 의미도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로 인해 인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인간을 위축시키고 도전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절대적인 존재는 없고, 우리는 주눅 들지 말고 자신의 생각 그대로 자유롭게 살라는 메시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니체는 요즘 흔히 말하는 자존감을 높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는 나오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니 타인을 사랑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세계를 통째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존감에서 시작해 확장되는 법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면 불안한 마음이 들거나 자존감을 상실할 틈이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라! 그리고 지금 최선을 다하라!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면 자신의 인생을 형성하는 한순간 한순간을 전부 긍정하게 됩니다. 바로 니체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존감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긍정감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극히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고통이 많은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또는 앞으로 다가올 다사다난한 인생을 긍정하는 일입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영원히 되풀이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겁(영원) 회귀'라고 부르며, 그 안에서 자유롭게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이 삶을 산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또 한번 힘내보자!"라며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것. 이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매일 같은 삶의 반복속에서 때로는 무기력해지고 이렇게 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물론 잘 만들어진 나의 멋진 루틴이 이런 마음을 견뎌내고 매일의 그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내면 깊숙한 그곳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난 왜 살까? 매일 먹고, 싸는 단순한 행위가 그저 고통일진대, 이 고통을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견뎌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살아남아 또 무엇을 얻는가?' 알 수 없는 그 답은 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감사일기를 쓰며 '오늘도 복되고 소중한 하루를 제게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쓰면서도, 그리고 정말 감사하면서도 반복되는 통증에 왜 사는지 모르는 날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루를 주신 덕분에 또 하루를 살아낸다고 감사하며 살아내는 나에게 인생은 그런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니체는 말하고 있는가 보다. 그 안에서 자유롭게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이 초인이라면, 난 어쩌면 초인과 인간의 중간쯤 어디에 있는 모양인지... 매일 힘내고 진취적으로 살아내려 애쓰는 내가 초인이 되고자 안간힘을 쓰며 사는 이상적 인간은 아닌지...
고귀한 영혼은 무언가를 무상으로 얻으려 하지 않는다. 하물며 생을 무상으로 얻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생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바 그것을 우리가 생에 다하도록 하자.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흐트러지려는 나에게 니체는 쐐기를 박는다. 거저 얻는 것은 없다고. 얄짤없다고. 무상으로 얻으려는 어림없는 생각은 하지도 말라한다. 그렇게 고통은 나에게 고귀한 영혼을 선물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나 보다. 주님은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셨나 보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한 대로 생이 내게 약속하는 바 그것을 위해 이 생에 최선을 다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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