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여느 짝수해와 다름없이 건강검진을 했다. 날짜에서 보여지듯, 미루고 미루다 그 해가 가기 전에 부랴부랴 예약하고 검사를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떤 이유로든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성향 탓과 함께, 매일 술을 마시던 나의 일상이 검사를 위해 술을 조금이라도 자제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수반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귀찮았던 건강검진을 마치고 일상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는데, 건강검진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결과지를 받아보시기 전에 병원에 오셔서 선생님을 만나보셔야겠다고. 그렇게 나의 '암'은 시작되었다. 정확하게는 그 이전, 몇 년 전부터 암이 시작되었겠지. 그렇게 내가 '암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건강검진센터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했고, 2019년 1월 말, 암 수술을 하고 설 명절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렇게 나는 '죽음'을 가까이 맞이했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수용단계가 있단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나는 이 단계를 단 며칠만에 아주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죽음이 뭔지 몰라서였을까? 죽음을 수용하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두려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부하지 않았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죗값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50년의 삶(내 나이가 만으로 딱 50세였다)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누군가는 100세를 사는 세상이 너무 짧지 않으냐고 어이없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만하면 됐다 싶었다. 50년 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고,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나뿐인 아들도 성인이 되어 탄탄한 직장에 취직하고, 분가해 잘 살아가고 있으니 충분한 삶은 아니었지만 거기까지만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죽음은 한 걸음씩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암에 관한 영상과 책, 건강에 관한 영상과 책, 죽음에 관련한 책들을 읽으며, 예전과는 다른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 하루하루 살다보니 어느덧 5년이 지나 흔히 말하는 '관해'라는 시기가 왔는데, 병원에서는 좋아졌다고만 하지 '관해'라는 단어는 꺼내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그 말을 듣는다고 '다 나았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였지만.
나의 암은 하나도 아닌 두 개다. 위암과 대장암. 위암은 초기였고, 대장암은 말기에 가까운 3기였다. 초기라는 위암도 2분의 1을 잘라냈고, 대장은 3분의 1을 잘랐다. 소화가 되느냐고? 나도 그게 신기했다. 처음에 병원에서 내 장기 두 곳을 잘라낸다고 하기에 먹고살 수 있는 거냐고 했다. 난 매일 혈관에 영양제를 투여하며 살다가 죽는 거, 잘하면 액체의 무언가를 흘려보내 근근이 살다가 죽는 거... 이런 것들을 상상했는데, 아주 천천히, 아니 적당히 천천히 시간이 걸렸을 뿐, 먹을 수 있었고 소화도 되었다. 다만 불행스럽게도 소량의 음식만 먹을수 있는데, 무슨 일이든 양면성이 있듯이, 일반인들도 건강을 위해서는 소량으로 섭취하라고 하니, 나는 저절로 건강식을 하는 셈이다. 물론, 조금 먹으니 살도 많이 빠지고, 몸무게도 초등생 수준이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ㅎㅎ
이렇게 5년이 지나 6년 차로 접어들었고, 위암 담당선생님은 자신에겐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대장암 담당선생님은 좀 더 두고 보자고 하셨다. 그렇지. 그러니까 관해라는 말을 안 해준 거지.
6년 전, 죽음과 가까워졌던 나, 지금은 그 죽음이 얼마큼 멀리 가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늘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 덕분에 그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복되다.
매일 '죽음'이라는 글자를 떠올린다. 물론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도 있고, 죽음의 공포로 섬뜩할 때도 있다. 막연하다가 가까이 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그 '죽음'.
암경험자들 모임이 있었다. 그곳의 몇몇도 소천했고, 내가 좋아하던 암경험자 유튜버들도 여럿 소천했다. 그들의 죽음은 어이없고 황망했고, 나 또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죽음을 준비했다. 여기서 준비라는 것은 마음의 준비, 주변의 준비까지, 그리고 '죽음의 준비'를 위한 준비까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선 그저 목숨이 끊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 직전의 절차, 죽음 이후의 절차까지 포괄하기에 함께 하고, 남겨진 이의 몫이 크다. 나는 그들의 몫을 크게 벌여놓고 싶지 않다. 내 죽음이 그들에게 무겁지 않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오래전부터 연명치료는 싫다고 했다. 콧줄도 연결하지 말라 했다. 그런데 걱정이 있었다. 통증은 어떻게 하고, 내가 정신줄을 놓으면 어떻게 하나... 치매라도 걸리면... 물론 치매가 되면 그땐 내 의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겠다. 그러나 내 의지가 있는 한, 번거롭지 않고, 아프지 않고, 돈 안 들고, 잘 죽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다 생각했던 것이 예전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랬던 거처럼 집에서 편안히 돌아가셨던 것, 바로 그것이 떠올랐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식사를 못하시고,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다는 것. 아! 바로 그거다! 나도 그렇게 죽어야 한다. 그런데 막연했다. 죽겠다는 마음이 들면 바로 누워서 밥을 안 먹기 시작하면 되는 건가? 물은? 누가 지켜봐 줄 건데? 물론 자식이 있지만 내가 죽기만을 바라며 지켜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 세상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오늘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에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유튜브를 하고 있었다. 그분은 나보다 14살이나 많은데, '단식자연사'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계셨다. 나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이 희소식!! 함께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노후에 대한 두려움, 암으로 인한 좀 더 빠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스르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나의 자유의지로 내가 해야 할 것들이 용솟음쳤다. 그의 영상 몇 개를 연속적으로 보면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이곳에 카테고리 하나를 더 만들었다. '삶과 죽음사이'.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이렇게 나의 새로운 카테고리의 첫 글을 시작하며, 앞으로 이와 관련된 나의 공부와 생각들을 풀어갈 생각이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편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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