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과 죽음 사이

상반된 죽음의 모습

by 짱2 2024. 12. 17.

'집평'님의 유튜브 구독자 중에 아마도 20~30대일듯한 분이 자신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상반된 죽음에 대한 댓글을 달았고, 그것에 대해 '집평'님이 다시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이 두 분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는 죽음의 모습이지 싶다. 내용을 보면 외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서 병원치료로 고생하시는 모습에 외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죽음은 다른 모습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맞으셨고,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가족 모두 느낀 바가 있어서인지 그런 외할머니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으리라. 

 

 

 

 

외할아버지는 후두암 진단 받으시고 의사쌤이 치료하라는 대로 수술, 방사선, 항암 다 하시고, 병원에서 너무 처참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곁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지켜보시면서 할머니께서는 더 결심을 굳히셨던 듯하다. 

 

외할머니는 79세에 폐암 말기 진단받으시고 항암, 방사선 등 아무 치료 안하시고 3년 더 살면서 일상 다 누리고 가셨다고 한다. 마지막 3개월 암성통증으로 집에서 가정간호로 진통제 맞으셨고 거동 힘드셔서 기저귀 차시게 되자 곡기 끊으시고 일주일 만에 가셨다고 한다. 물도 거부하시고 마지막에 친척들 다 인사하고 집에서 가셨다고 한다. 물까지 끊으시고 마지막 일주일 거의 하루 종일 주무시면서 큰 고통 없이 가시는 거를 직접 보았다니 그분의 외손자는 참 커다란 유산을 물려받은것이다. 

 

누구에게나 닥칠 '죽음'을 우리는 무척 터부시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면 죽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재수 없다고 한다. 탄생과 죽음, 삶과 죽음은 우리 삶의 당연한 모습인데 말이다. 누구나 겪게 될 일이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다시 암이 재발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의사와 상담하면서 수술과 항암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그 효율성을 따져볼 거 같다. 들어갈 비용과 내가 견뎌내야 할 과정의 무게까지 모두 깊게 생각해야 할 거다. 그 저울의 무게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나의 선택은 달라질 테지. 만약 힘든 과정의 무게에 비해 보장된 삶의 연장이 무의미하다면 남은 내 삶을 마무리하며 지내다 '자연단식사'를 선택하리라. 그래서 지금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그 시기가 80세가 넘었다면 누구도 나를 말리지는 않겠지만 60대 또는 70대라면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너무 이르다며 아쉬움을 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연장된 삶의 모습이 나는 그리 달갑지 않다. 지금 나는 참 행복하고 지금만큼만 살면 충분하다. 이 삶이 오래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제 그만하라고 연락이 오면 따르고 싶다. 내 나이가 몇이던지 상관없이. 물론 나도 아쉬울 거 같다. 행복한 지금을 더 누리고 싶을 테니. 그래서 지금을 더 열심히 산다. 아쉽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