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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곡기 끊기가 자연사인 근거 5가지

by 짱2 2024. 9. 30.

'집에서 평화롭게'(이후는 '집평'님으로)님이 곡기를 끊고 죽는 것이 자연사인 근거에는 5가지 있다고 한다. 오늘은 이것에 대해 정리를 해 두려고 한다. 

 

 

 

 

 

1. 100% 순수한 자발적 행위다.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는 자연의 이치, 살만큼 산 뒤 죽을 때가 되어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죽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죽음.

 

2. 어떤 폭력도 개입되지 않는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여 죽음에 이르는 '자살'과는 전혀 다르다. 어떤 외부 폭력도 개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본인의 의사와 의지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3.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살만큼 산 뒤, 가야 할 때에 이르러 순수하게 본인의 의사와 의지로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흔히 안락사 또는 존엄사로 알려진 조력사는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치료를 중단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의사의 도움이 전제된다. 그 결정과정에서 법적, 윤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므로 아직은 아주 소수의 나라에서만 합법화되어 있다. 병원에서 생명 연장 장치를 부착하는 순간부터 그 누구도 중단을 결정할 수 없고 결정권은 오직 본인에게만 있다. 하지만 막상 본인은 의식이 없거나 희박한 상태이므로 어쩔 수 없이 처참한 모습으로 고통을 겪으며 죽음을 향해 이끌려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자신의 생명결정권을 의사나 타인에게 맡기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공부를 미리 충분히 하여 대비를 함으로써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왜 병원에서 죽지 않고 '집에서 평화롭게' 죽어야 하는 결정적 이유이며 단식자연사를 '자연사'라고 말하는 근거이자 이유다.

 

4. 언제든 중단과 번복이 가능하다.

본인이 죽기 전까지는 언제든 스스로 의사를 번복하고 단식을 중단할 수 있다.

 

5. 단식을 중단 번복해도 전혀 잃는 것이 없고 이익만이 남는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한 단식은 비록 중단한다고 해도 나쁜 후유증은 없고 오히려 단식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기간 동안 잘 살은 결과와 기억만이 남는다. 즉 단식을 중단 번복하는 경우 단식 결정 이전의 모습과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잃는 것이 전혀 없다. 

 

 

4번과 5번의 내용은 중단과 번복에 대한 이야기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넘어가려 한다. '죽음'을 선택했다면 중단이나 번복은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탓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죽음을 선택했다면 깊은 사색 후의 결정일 텐데, 중단 후에 또다시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나... 나는 그 과정을 또 거치고 싶지 않다. 

 

단어 자체에서 보여지듯, '조력사'라 하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누군가라는 사람도 '의사'이다. 의사가 허락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결국 내 자유의지가 없어질 수도 있는 이런 죽음은 다시 불안해진다. 내가 단식자연사를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이다. (다만 아직 깊은 공부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지금의 상태에서 가장 궁금하고 불안한 것은 고통이다. 고통이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이 부분은 더 많이 공부하면 해소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죽음이 쉽지는 않을거다. 막상 내게 닥친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리라는 확신도 서지 않는다. 지금의 마음은 그러하나 그때가 되면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릴지도 모르겠다. 아들의 대를 이어 예쁜 손주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을 거 같고, 그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의 완성된 모습도 보고 싶을지 모르겠다.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을지도. 그러하니 지금 아쉬움이 없을 삶을 살아야겠지.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부가 더 절실하다.